[Opinion] 추억이 많은 날씨 [사람]

이런 저런 상념
글 입력 2021.10.18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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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너무 춥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도, 화장실 문의 쇠 손잡이를 잡아도 정전기가 일어난다. 정전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비교적 계절이 부드럽게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들어서는 계절이 날카롭게 잘려 나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과 가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감각이라도 있었다.

 

이제는 ‘점점 더워/추워진다’라는 변화의 느낌도 없다. 눈 떠보니 다음날 바로 영하 날씨란다. 곧 있으면 환절기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사는 기쁨이 한국에서 사는 몇 가지 장점 중의 하나이건만, 장점 하나가 없어진 것만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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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계절의 영향을 받고, 사람의 마음은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마음속의 기상 상태와 특별히 연동되는 날들이 있다. 어떤 날씨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또 어떤 날씨는 사람을 독립적으로 만든다.


소중한 사람이든 오래전에 연이 끊긴 사람이든(물론 소중한 사람과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기억에 남는 누군가를 처음 만난 날씨를 기억하는가?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내 생각에 사람은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만난 첫날씨/첫계절도 그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 짧은 옷을 걸치고 만났는지 긴 옷으로 감싸고 만났는지, 함께 낙엽 위를 걸었는지 풀밭에 앉았는지가 두 사람 이야기의 시작점으로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따라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나 꼭 계약을 성사하고자 하는 상대 등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넥타이를 매고 어떤 재킷을 걸칠까 고민하며 옷장을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한 주간의 일기예보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중 가장 적절한 날씨의 하루를 골라 약속을 잡는 것이다.

 

나를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대를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상당한 창의력과 약간의 응용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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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플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적절한 날씨’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으니 매번 자신이 어떤 캐릭터로 비치고 있는지, 상대방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만남의 성격은 어떠한지 등을 고려해 그때그때 어울리는 날씨를 고르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따라서 위 조건들을 X값으로 넣었을 때 적절한 날씨의 하루인 Y값이 나오는 일종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다. 어플에서는 사용자의 취향에 따른 항목별 값 조절도 가능하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지만 자리가 부담스러운 경우엔 ‘미필적 고의’ 항목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 된다.

 

오전에는 쨍하다가 오후에는 태풍이 치는 식으로 다이나믹하게 날씨가 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약속을 파할 가능성이 큰 날로 일정을 잡아줄 것이다. “날씨가 이런데 뭘 어쩌겠어?”라며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는 기능은 덤이다.

 

사용자 리뷰와 그동안 누적된 데이터 소스에 기반해 써브웨이 샌드위치의 추천 조합처럼 몇 가지 추천 일정도 제공 가능하지만, 현재 이 기능은 개발 중에 있어 유료 결제 후 베타버전에서 이용 가능하다.

 

얼마전 건널목을 걷다가 친구가 좀 전에 길 가던 옆 사람에게서 엿들은 말을 해주었다. 오늘같이 추운 날씨가 추억이 많은 날씨라 하셨단다. 실제로 나는 그날 추억을 많이 쌓았다. 마스크 때문에 새어 나오는 입김을 볼 수 없는게 아쉽다.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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