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로 살기 [사람]

글 입력 2021.10.1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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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하나만 움직이면 모든 게 가능해지는 쉬운 디지털 세상에서 왜 우리는 쉽지 않은 아날로그를 버리지 못할까?


 

첫째. 아날로그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아날로그의 방법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둘째. 아날로그의 감성이 나의 감정을 잘 전달해 줘서

셋째. 디지털을 이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의 경우는 두 번째이다. 아날로그의 감성이 나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해 준다.

 

인터넷 혹은 휴대폰으로 오가는 말보다 손 편지가 더 따뜻하고 일기를 휴대폰의 메모장 혹은 일기 앱을 다운로드해서 디지털에 저장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고른 일기장에 나의 그날의 감정이 담긴 손글씨로 적는 게 나중에 봤을 때 더 감정 전달이 잘 된다.

 

난 일기를 쓰기 싫은 날은 글씨체를 휘갈겨 적고 기분이 좋은 날은 글씨를 굉장히 예쁘게 적는다. 그래서 후에 일기를 보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때 난 엄청난 불구덩이 속에 있었구나.. ' 이런 감정들이 온전히 전해진다.


내가 더군다나 일기 애플리케이션을 쓰지 않는 이유는 나는 은근 '홧김에'가 많기 때문이다. 엄청 재미있는 드라마를 발견해서 그 드라마를 보다가도 갑자기 그 드라마에 실증이 나버려 끝까지 본 드라마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휴대폰 게임을 즐겁게 하더라도 갑자기 게임에 흥미가 떨어져 삭제하고 만다. 그래서 지난 발자국들을 내가 홧김에 지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여기에서 디지털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지우면 복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이중 경로를 통해 나의 메일로 보내 여러 군데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해킹을 당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하다. 그렇지만 일기장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종이를 찢는 게 아니라 종이를 아주 잘게 찢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기에는 오직 나만 볼 수 있고 나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적어놓기 때문이다. 잘게 찢는 과정에서 '이건 안돼! 나의 소중한 과거들이라고!' 후회하면서 중간에 멈출 수 있다. 이건 아날로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디지털에서 정보를 지우는 과정 중에 '취소'를 누르면 그 정보는 반만 사라질까 아니면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을까? 진행된 것은 이미 사라진다고 한다...이건 어쩌면 아날로그랑 비슷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는 찢어진 종이를 테이프로 붙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일기를 수기로 적는 사소한 이유는 후에 유물로 발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포 사피엔스 황수지의 일기장 3294년 발견.

 

하지만 나의 일기는 유물로 발견될 확률이 적다. 종이는 2~5개월 내에 썩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종이를 분쇄하지 않고 그냥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또 검색해보니 애벌레는 종이를 먹기도 한다고 한다. 나의 일기장은 유물로 발견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어 일기를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겠다.미래의 후손들에겐 디지털 자료가 더 역사 연구에 유용할까, 아날로그 자료가 더 역사 연구에 유용할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비대면이 익숙해졌다. 비대면은 멀리서도 쉽게 통화할 수 있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일의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편하다. 어딜 가도 있는 키오스크, 오직 제품을 받을 때만 마주하는 사람들. 마트에 가도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는 지금. 직장을 다니지 않고 방학을 보내는 중인 내가 하루 평균 만나는 사람은 세 명 내외이다. 모르는 사람과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요즘이다. 카페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면 깜짝 놀란다.

 

벌써부터 나 이 사회에서 혼자가 익숙해진 것일 수도. 이 글을 쓰면서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더 물어보고 조금이라도 직원과 대화를 나눠보는 게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how are you? 같은 스몰토크말이다.

 

일전, 배달 어플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꽤 많은 비중의 사람들이 배달을 할 때 전화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을 배달 어플의 장점으로 꼽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 전화할 때나 음식 배달을 시킬 때 떨려서 메모장에 말을 적어놓고 한 적이 많다. 그래도 내가 과거에 많이 전화했던 친구네 집 전화번호랑 휴대전화 번호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요즘은 그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정말 극히 드문 일이다.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화가 익숙하지 않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전화 공포증(콜 포비아)을 겪고 있다. 나는 세상이 이제 콜 포비아에서 휴먼 포비아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나도 동시에 차가워지고 있으며 방금 시킨 아메리카노는 따뜻하다.사회와 나를 난로 앞에 두어 아메리카노와 같이 따뜻하게 했으면 좋겠다.

 

디지털 세상 편리하면서도 무섭다. 전산화된 나의 정보를 지움으로써 국가에 기록된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정말 쉬운 일 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내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 익숙해지지 않고 사람 냄새를 가까이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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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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