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래가 가는 곳

글 입력 2021.10.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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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내게 마치 전설 속 동물과 같았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누군가는 봤다고 전해지는 그런 존재.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다.

 

평소에는 프롤로그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최근 들어 프롤로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 속에는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 <고래가 가는 곳>의 프롤로그는 저자의 자원봉사 활동으로부터 시작된다. 해변으로 떠밀려 온 혹등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에 참여하며 느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어린 혹등고래를 보며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내려간 프로롤그는 그 어떤 책의 프롤로그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다로 돌려보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더 깊숙한 해변의 안쪽으로 밀려들어온 고래는 방수와 체온 유지를 도와주는 유용한 역할을 하지만, 바다 밖에서는 뜨거운 열기를 가두는 지독한 역할을 하는 블러버에 둘러싸여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지만, 그 괴로움을 빠르게 끝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쉬운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괴로워하는 동물을 보고 있으면, 안락사가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어차피 치료가 어렵고 손쓸 수 없으니, 현재의 고통이라도 최대한 빠르게 끝내주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선택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거대한 몸집의 고래는 죽음 이후 소멸의 과정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래 낙하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았던 하나의 생명체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구상에는 부패해가는 고래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다양한 기생 생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심해에 가라앉은 고래는 '해저의 봄'이라고 표현하였다. 경이롭게도, 고래의 죽음 또 다른 생명의 태동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극물을 통한 안락사는 너무 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단지 고래에 감정을 이입한 인간의 입장에서, 지금의 죄책감을 덜어버리고 싶어 내리는 가장 무책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결말에 100%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럴듯하지만, 다시 고래에게로 그 초점을 옮기는 순간 이는 역시 괴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고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시간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또한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고래와 똑같은 포유류인 인간의 안락사는 아직도 수많은 논쟁을 낳고 있는 이슈임에도, 우리와 다른 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래의 안락사는 이토록 빠르게 결정되는 것일까? 고래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더 고심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자연에 귀속되어 있는 고래를 치료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감히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는 어려운 문제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서 반박 없이 공감했던 부분은 자연을 사랑해서 했다는 행위가 곧 자연을 위한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존재가 희귀할수록 그 존재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유명 동물원에서 특별 행사로 진행했던 '아기 맹수 만져보기' 체험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사육사들이 아기 사자, 아기 호랑이 등을 안고 지나가면 손을 뻗어 등을 한 번 쓱 만져보는 것이 체험의 전부였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 또한 그 행사에 참여했던 어린이 중 한 명이었는데, 그때의 촉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직접 맹수를 만져봤다는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의 자랑스러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입장을 바꿔서, 아기 맹수들의 입장에서 그 행사를 규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타이틀을 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트레스 쌓기 챌린지'!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불안정한 사육사의 팔 위에서 자신의 등을 고스란히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을까? 맹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특별함에 광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대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자신의 본능을 애써 다스려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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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아끼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야만적 성급함에 잘 사로잡히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애정을 쏟고자 한다. 어떤 동물이 희귀하면 그것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욱 그 동물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p. 205)'

 

나는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떤 이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는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는데, 문장이 과거 아기 맹수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져보고자 짧은 팔을 계속해서 뻗어댔던 나의 모습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의 행위에는 스트레스를 주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행위는 해가 되었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나는 아기 맹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준 셈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종종 자연을 위한 애정이 오히려 자연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생태계, 나아가 환경 이슈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작은 행위 역시, 이것이 불러일으킬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래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책 <고래가 가는 길>이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었을까? 결국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우리 곁에 고래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고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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