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작별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1.09.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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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그가 전작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의 봄을 더듬어 소환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는 제주라는 섬에 살았던 이들과 살아 있는 이들의 영혼을 불러일으킨다.

  

수십 년 전 제주의 겨울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정치적 신념이나 국가 수호, 군사적 명분을 내세웠던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눈이 멀었다. 서로를 겨누는 양쪽 진영 사이에서 목소리조차 내지 않고 저항하지 못했던 작은 이들만이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제주를 넘어 경산, 대구까지도. 그렇게 살인과 암매장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책을 읽는 내내 쉽게 숨을 쉬지 못했다. 마치 내가 마실 수 있는 공기의 총량이 정해진 듯이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을 의식해야만 했다. 감히 이해할 수 없는 폭의 고통이 영혼을 후벼 파는 듯했다. 이 모든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되는’, 혹은 ‘지울 수 없는 역사’ 따위의, 거창하고도 낡은 언어로 형용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고 무슨 단어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작별하지않는다_표1.jpg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와 그의 친구 ‘인선’의 관계에서 비롯한 사건을 주로 다룬다. 서울에서 소설을 쓰는 일을 하는 ‘경하’는, 불의의 사고로 손을 다쳐 육지로 오게 된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그녀의 집이 있는 제주로 향하게 된다.

 

그즈음부터 현실과 비현실, 혹은 삶이나 죽음을 가늠할 수 없는 존재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들은 차곡히 모여져 수면 아래에 잠들었던 기억을 끌어 올린다.

 

나는 활자에 담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독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 이는 어느 글을 읽으나 마찬가지다. 작가가 전하는 바를 오롯이 이해하려면 초장부터 종장까지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하’와 ‘인선’이 기억을 낚아내는 과정을 담담히 지켜보는 것은 참 힘들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사무쳐서 문장 하나를 여러 번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기억이기를 빈다고 말했는데, 이 기억을 어찌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나 싶었다. 작가는 글을 통해 계속해서 선연한 고통을 들추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말이다. 예컨대 소설에서 목재를 다듬다 손가락 마디가 잘려 봉합 수술을 받은 ‘인선’의 언어를 빌려보자면.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57p.

   

 

나에게도 손가락이 잘려나갔던 경험이 있다. 한 번은 엄지였고, 다른 한 번은 중지였다. 두 번 모두 요리를 배운다는 목적으로 칼에 손을 얹어 음식 재료를 손질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응급실에서 간단한 봉합 수술을 거치면 나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상처였기에 ‘인선’이 겪은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 당황스러움이란, 내 손의 상태를 실감하고부터 아픔을 느끼기까지 꽤 긴 시간 간격이 있어서 느낀 감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으며 ‘인선’이 묘사하는 고통의 이미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칼에 베여 떨어져 나간 그것이 나의 살점인지도 모를 만큼 급박한 순간을 지나, 마침내 나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는 체감했다. 그보다 더 방대했던 두려움이 제주라는 섬 곳곳에 박혀있었음을.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들의 영혼까지.

 

나는 되물었다. 고통을 곱씹는 것이 어찌 사랑인가요. 제주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를 여읜 후 혼자 나무를 다듬으며 목수로 살아가는 ‘인선’의 고통이. 자신의 부모가 겪은 수난의 역사를 기어이 되짚으며 나아가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려는 그녀의 노력이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무엇이 아닌가요.

   

수많은 통나무를 모아 말려서, 하나씩 먹을 입혀 깊은 어둠을 칠해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려는 ‘인선’의 마음이 ‘경하’를 만나 마침내 하나로 모이는 것. 소설의 끝맺음까지 읽어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고통을 품 안에 받아냄으로써 결국에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꼭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있음을.

 

때로는 고통으로 남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을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단한 노동을 기어이 해내는 이들에게 마음 깊은 격려를 보낸다. 나 또한 이 한 편의 소설로 기억되는 사랑의 모양을 기억하겠다.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것이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작별하지 않는다>

 

 


이남기 프레스.jpg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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