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재 출판인이 쓰고, 미래 출판인이 읽다. - 책 만드는 일 [도서/문학]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글 입력 2021.09.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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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이 불황이라는 말이 오래되었다. 웹으로, 동영상으로 끝없이 독자가 이탈하고 있다. 한편 화제의 콘텐츠는 반드시 책으로 나오고, 화제의 인물은 마침내 책으로 입장을 밝힌다. 인쇄 매체의 영광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있는 출판계.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일할까?"


 

<책 만드는 일>은 2021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매했다. 관람객이 아닌 서포터즈로 참여했는데, 쉬는 시간에는 출판사 부스들을 기웃거렸다. 꼭 특정한 책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요즘 무슨 책을 읽나, 한번 구경해보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한 출판사 부스가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슨 출판사인가 하는 궁금증에 그 부스로 돌진했다. 바로 '민음사' 였다. 익히 보고 들어 아는 책들도, 모르는 책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책 만드는 일>이라는 책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꼭 책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담긴 제목도, 감성을 자극하는 은유적인 표현이 들어간 제목도 아니었다. 제목에 책 내용을 그대로 드러냈다.

 

<책 만드는 일>은 민음사가 창립 55주년을 기념하여 출판인 10명의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가격 3,000원에 작고 얇은 책이라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읽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듯이, 작은 책이라고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다. 겉은 미약했으나, 내용은 창대했다.

 

책을 읽으며 민음사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편집자, 번역가, 마케터, 디자이너 10명의 출판업계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저 책을 만들고 많이 팔기 위해 홍보하기보다 펴내고 싶은 책의 주제를 선정하고, 독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그들의 피땀과 눈물이 보였다.

 

어디서 출판 현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 민음사의 연대기와도 같은 <책 만드는 일>을 통해, 민음사가 걸어온 지난날과 책에 녹아있는 출판인들의 노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

 

이 글에서는 책에 담긴 출판인 10명의 이야기 중, '고전을 영업하는 비결 - 민음사 『인생일력』 제작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난주에 고전소설 '이생규장전'을 재해석한 글을 기고했다. '고전소설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전소설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고 글을 시작했다. 현대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고전소설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싶어 머리를 싸매며 한문장 한문장 써 내려갔다.


 

"세계문학전집의 고전문학들은 친숙하게 만들기가 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인문팀에서 만드는 손가락 세 마디가 넘는 두께의 역사책이나 맹자왈 공자왈 하는 동양 고전들을 마주하면 여전히 어떻게 팔아야 할지,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인생일력』을 제작한 조아람 마케터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것 같다. 햄릿, 폭풍의 언덕,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 세계고전문학은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으며,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 고전을 완독했다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책과 글이 좋아 출판인이 되고 싶은 나조차도 동양고전문학을 일상에서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이 동양고전문학을 잘 읽지 않더라도 그에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쓴 글이 '그들의 죽음은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였다.


 

"모르겠다고 마냥 손 놓고 있기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만들어 보자는 사심으로 기획한 것이 바로 『인생일력』이다. 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뉴트로 열풍의 관점에서 봐도 이보다 겉과 속이 레트로한 상품은 없었다. 『인생일력』은 민음사의 고루한 이미지에도 찰떡같이 맞아 '고루함X고루함=힙함'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고, 평소 동양고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젊은 독자들이 매년 1만 명씩이나 고전 문장을 소비하도록 만들었다."

 

 

조아람 마케터도 글 속에서 "민음사의 『인생일력』은 이런 보통의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낯선 것을 일상에서 접하면 익숙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 "오늘 며칠이지?" 하며 달력을 들여다보고, 집을 감성적으로 꾸밀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기도 한다. '낯선 것을 친숙하게 만들기' 아이디어는 달력이라는 일상품에 365개의 동양 고전 문장이 접목된 상품으로 탄생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아람 마케터는 '진짜 고전 읽는 사람 되기'에 대해 알려준다. '고전을 영업하는 비결'의 소제목인데, 이 부분을 읽으며 이미 출판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출판인을 꿈꾸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아람 마케터는 쏟아지는 책들을 다 읽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잘알'들 사이에서 일하며 내가 더 이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지 못해 낮아진 자존감을 느꼈다고 한다. 초조함을 느끼게 되자 책을 양(量)으로 승부를 보는 일명 '양치기' 독서를 하게 되었고, 결국 이는 본인이 해내야 하는 업무에 대한 피로와 회의로 돌아왔다고 고백했다.

 

나 또한 출판이나 책과 관련된 대외활동을 하면서 '책처돌이'인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그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책을 적게 읽었나?', '나는 출판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가?' 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었다. 조아람 마케터는 오래 지속된 이러한 권태에 대한 처방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소개했다.

 

 

"그간 내가 고전에서 뽑아낸 인스턴트식 유용함을 활용해 마케팅을 했다면, 이 책은 평생 가는 이로움을 고전 읽기 훈련으로 얻는 법을 알려준다."

 

 

『독서의 즐거움』은 책의 방대한 장르를 아우르며, 고전으로 독학하는 법을 알려준다. 사람들이 동양 고전을 친숙하게 접하도록 노력한 것이 조아람 마케터의 역할이었다면, 이 책은 사람들이 인생을 풍요롭게 꾸려나갈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인생을 바꾸는 구절을 순식간에 발견해 당장 내일 다른 사람이 되고 그런 것이 아니다. 각 장르의 역사부터 그 장르를 읽는 방법까지 소개해,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 구절을 찾게 한다. 책을 읽는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인생은 서서히 바뀌어 나간다.

 

조아람 마케터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상품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은, 책의 본질을 인지하고 있어야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래 출판인으로서 내가 함양해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본질을 '진짜' 잘 꿰뚫어 보는 사람이 '진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


*

 

<책 만드는 일>을 독자의 시선보다 출판인에 조금 더 가까워진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또 내가 출판인이 된다면 출간하고 싶은 책과 돈이 되는 책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책 만드는 일>은 책이 만드는 과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독자에게는 하나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출판인들의 수많은 손길을 거쳐 간다는 것을, 예비 출판인에게는 책에 대한 현 출판인들의 다채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책의 부제가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이다. 나는 출판인들의 움직임이 곡선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아하게 휘어지는 곡선이 아니라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예측불허 곡선 말이다. 위의 소개말에 나와 있듯이, 출판계는 인쇄 매체의 영광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과도기에서 내가 되고 싶은 출판 편집자나 마케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에 '김수영의 편집자들'을 기고한 박혜진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편집은 영원의 다리를 놓는 일이고, 편집자는 불멸의 메신저라고. 출판인이 기획한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편집자는 계속해서 그 연결을 담당하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같은 매개체가 된다. 결국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출판계에서 지금 편집자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 연결의 다리를 계속해서 놓는 것이다. 그 다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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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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