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언어의 높이뛰기 - 섬세하게 말 하기 [도서]

글 입력 2021.09.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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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 그 먼 옛날 키케로는 말을 너무 잘한 나머지 혀가 달아나다 못해 목숨까지 달아날 뻔했던 사람이다. 옛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까지 한다. 천 냥이라는 돈이 지금의 화폐 가치로 얼마쯤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은 돈이 아님은 분명하다. 말로 금전적인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자본으로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그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을 때 ‘아~’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지금 네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있으면 이를 이에 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만약 ‘어~’라고 대답하면 나는 지금 네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별로 듣고 싶지도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적당히 대꾸 정도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이제 눈 앞에서 날 기다리는 건 주먹질이거나 욕지거리거나, 혹은 상대방과의 손절 등 아주 좋지 못한 결과들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는 이토록 중요하다.

 

 

 

말; 흩날리는 칼날



언어는 사회성을 갖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 쓰이는 단어의 의미는 그 사회 구성원 전원이 합의한 의미로만 사용된다는 게 바로 사회성이다. 나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나에게도, 서울의 김 씨에게도, 대구의 박 씨에게도,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모두 나무로 같다. 나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돌을 가리키고 어떤 사람에게는 물을 가리키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언어 체계가 무너져 소통할 수 없으니 그 언어를 쓰는 사회 자체가 붕괴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약속’보다 ‘상호작용’이다. 언어의 사회성이 보여주는 것은 언어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소비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소통을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가 언어로 소통할 때 여러 갈등이 빚어진다. 어떤 단어의 의미는 정해져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거나 혹은 그런 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상황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번 오해가 만들어지면 이를 풀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민낯’은 곱씹을수록 불편해지는 표현이다?

 

흔히 사회 문제의 숨겨진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또는 숨겨진 추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권력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는 표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습이 사실은 화장을 통해 꾸며진 것이고,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화장을 지우고 드러난 실체는 화장을 통해 가려졌던 것과는 달리 결함이 가득하고 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낯’을 바라보는 시선도, 민낯을 가리는 ‘화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민낯’과 ‘화장’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성별은 주로 ‘성인 여성’임을 알게 된다. ‘민낯’이라는 표현은 누구의 관점이 반영되었던 표현일까?

 

<두 번째 강의. 민낯이 불편한 말이 된 이유>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인 ‘민낯’을 누군가는 이 사회가 품고 있던 질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균으로 여긴다. 민낯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짧은 한 단어에 이 사회가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보여왔던 차별과 화장이라는 행위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을 담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다. 그 차이를 인지하고 바꿔나가는 태도를 지향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맞이하는 미래는 판이하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비롯한 주변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충분히 생각하고 단어의 의미를 곱씹으라고 설파한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조차도 이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꾸미다’와 ‘가꾸다’는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꾸며진 사람’과 ‘가꾸는 사람’은 느낌이 다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뱉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만한다. 이미 뱉어진 말은 제멋대로 흩날리며 내가 의도하지 않던 것들마저 날카롭게 베어낸다.

 

 

 

말; 예쁘게 보다 섬세하게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대부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비단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고 답하는 이가 많다. 그 예쁘게 하는 말은 아마 듣거나 읽는 사람의 감정을 살살 간지럽히는 문장의 연속으로, 모든 단어가 각자의 올바른 의미를 품고서 섬세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말이다. 언어가 자신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 예쁜 말 혹은 문장이 되어 사람들에게 그 모습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언어에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도 어떤 화법을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마 모른 상태로 지낼 것 같다. 나에게는 오직 섬세하게 말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의미가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의 배열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단어를 읽어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절하게 조합할 줄 알기에 그 말이 예뻐 보일 뿐이다. 결국, 그 사람은 말을 섬세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을 잘해서 나쁜 것은 없다. 입만 살아있는 건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다르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언어라는 것이 어떤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때와 장소, 그리고 듣는 사람에 맞춰 적절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이 단어는 왜 이런 표현에 쓰이는지 궁금해져 그 의미를 배워간다면 누구나 섬세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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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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