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용과 주근깨 공주 - 서사가 담긴 페스티벌 [영화]

더 좋은 이야기를 담기에도 충분했을 소재, 연출, OST
글 입력 2021.09.2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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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용과 주근깨 공주>의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제74회 칸 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호평을 받기도 한 작품인데, 일본에서는 지난 7월 16일에 개봉하여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작 탈환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런 <용과 주근깨 공주>의 국내 얼리어답터라니!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는 예고편과 현지 관객들의 후기를 슥슥 훑어보며 괜스레 떨리는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엥?’ 예고편은 정말 기대되는데, 후기는 왠지 그만큼 후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연출했던 감독의 애니메이션, 꼭 갤럭시 버즈처럼 생긴 무선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매개로 펼쳐지는 메타버스, 화려한 여주인공의 아바타까지. 내가 봤던 예고편을 당신도 보았다면 분명 비슷한 기대를 했을 텐데 말이다.

 

+) 아직 못본 사람들을 위한 <용과 주근깨 공주> 예고편

 

 

 

 

정말 설레지 않는가? 애니메이션이기에 한껏 표현될 수 있는 메타버스! 그리고 관람 결과, <용과 주근깨 공주>는 감독의 전작을 떠오르게 하는 반가운 그림체와 뛰어난 시각적 연출이 스크린을 번갈아 넘나들어, 정겨움과 화려함을 동시에 눈에 담을 수 있는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또한 애니메이션 삽입곡이라 생각되지 않는 대중성과 매력으로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넘어서는 OST는 영화의 화려한 장면들에 여운을 남기는 힘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스토리가 너무 아쉽다는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중간마다 실마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토리와 스토리가 아닌 것을 중심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의 장단점에, <용과 주근깨 공주>는 대중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뭐랄까, 준비한 그릇은 김치 백포기도 와일드하게 담글 수 있을 만큼 커다랗고 튼튼한데, 정작 싱싱한 배추가 몇 포기 없어 많이 못 담그게 된 느낌?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그릇’과 ‘배추’를 중심으로 영화에서 발견한 특징들을 조금 과감히 언급해보겠다.

 

 

 

1. 뛰어난 소재, 굉장한 시각적 연출과 OST


 

우선은 그 커다랗고 튼튼한 그릇 이야기부터. 다음은 <용과 주근깨 공주>의 시놉시스다.


 

"U는 또 하나의 현실, As는 또 한 명의 당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마음이 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

 

 

첫째, <용과 주근깨 공주>는 소재부터가 나이스했다. 영화 속 'U'라는 곳은 그냥 가상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요즘 핫하게 노래하고 있는 '그' 메타버스에 더 가까운 가상세계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른 게 아니라 주인공 '스즈'가 착용하는 무선 이어폰과 메타버스 아바타 계정 정보를 보여주는 스마트폰에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것들 말이다. 만약 가상세계로 이동하는 매개수단이 단순한 꿈이라든가 차원의 문 같은 것이었다면, 사실은 이 영화도 '이세계'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체와 OST가 뛰어나다는 것을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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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소재로 인해 <용과 주근깨 공주> 속 캐릭터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여지고,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꼽혀 있게 되었는데, 의외로 이것이 굉장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던 것들이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이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뿐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 영화=폴더폰'이라는 공식을 무의식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U' 속의 'As'라는 아바타가 생성되는 메커니즘 설정도 꽤 흥미로웠다. 'U'에서는 유저의 생체정보는 물론 내재된 능력이나 가능성, 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특성 등이 아바타의 초기 외형을 결정짓는 데 반영될 뿐만 아니라 더욱 증폭되어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U'에서는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트라우마 때문에 좋아하던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던 주인공 '스즈' 역시, 'U'에서는 '벨'이 되어 마음껏 노래한다.

 




 

둘째, 연출과 '벨'의 노래가 조화되는 순간들은 정말 압권이었다. 여태 들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삽입곡들 중 내 머릿속을 가장 오래 맴돌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회전목마' 정도였는데, 위에 첨부한 OST는 영화의 시각적 연출과 기막히게 어우러져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다시 보고 싶어 몇 번을 찾아봐야만 했던 곡이다. 그만큼 임팩트가 강하고,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구절과 대중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스피커를 잔뜩 달고 있는 거대한 고래와 '벨'이 흩날리는 꽃잎들로 장식되는 위곡은, 어릴 적 놀이공원 페스티벌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설렘과, 새로운 세상에서 온 존재들에 대한 신비감, 그리고 웅장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용과 주근깨 공주>는 꼭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뮤지컬 영화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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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는 현실 세계와 'U'를 묘하게 다른 작화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림체 자체는 동일하나, 아무래도 채색과 명암을 주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U'에서의 아바타들, 그중에서도 특히 '벨'은 2D라고 하기에도 뭐 하고, 완벽한 3D라고 보기에도 묘한 느낌을 더 강하게 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법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애니메이션은 2D일 때 그 매력과 표현 가능 범위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왔고, 3D는 정말 고퀄리티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상은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면이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아마 3D가 주는 멀미감을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것 역시 콘텐츠에 집중하기 어려운 불쾌함을 꽤 강하게 준다.)

 

그리고 사실 'U'의 세계는 화려하지만 냉정히 메타버스라고 하기에는 기대보다 단조롭게 구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를 '어쩌면 상상으로 무엇이든 만들거나 없애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세계이기에 단조롭게 표현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바로 이런 작화 기법이었다. 결론적으로, 2D와 3D의 장점을 모두 머금고 그려진 'U'의 세계는 극대화된 신비감을 앞세워, 관객으로 하여금 그곳을 더 알아보고,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긍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2. 깔끔하지 못한 서사와 오마주, 힘이 부족한 전개와 입체성


 

다음은 제대로 김치가 되지 못한 배추 이야기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시놉시스 그대로, 엄마를 잃고 노래하지 못하게 된 '스즈'가 'U'의 세계에서 아바타를 통해 그것을 극복해나가고, '용'이라 불리는 존재를 만나 함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U'의 세계라는 특이점은 있지만, 메인 스토리 자체는 사실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편. 그래도 처음에는 같은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그려나가는 데 집중한 영화겠거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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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람하는 동안에는 아쉬운 마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사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다소 부드럽지 못했고, 어떻게든 겨우 이야기의 모든 실마리가 드러난 다음에도 캐릭터들의 마음을 별로 헤아릴 수 없는 점이 미세하게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헤아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은, 내가 이해를 못해서든 영화가 드러내지 않아서든 그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례로, '스즈'는 엄마를 잃은 후 아빠와 거리를 둔다. 그런데 엄마를 왜 잃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도 전에, 자꾸만 아빠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꾸준히 보인다. 와중에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메인 스토리를 종종 치고 들어오는데, 그게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즈'가 아빠에게 쌀쌀맞게 구는 이유를 헤아릴 정신이 없다. 그러니 그저 '왜 저러지? 아빠 불쌍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를 잃게 되었던 이유가 밝혀지고 나서도 아빠와 거리를 두는 이유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분명 어떤 원인이나 감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유추만 할 수 있을 뿐 끝까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느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생략된(것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공백이 너무 크게 다가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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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스즈'의 트라우마와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연결고리가 구체적이지 않았다. '함께 노래하기를 좋아하던 엄마를 잃은 슬픔에, 이후로는 노래만 하려 하면 헛구역질이 나더라'라는 설정은 다소 비약적인 느낌이다. 엄마와의 사별을 겪은 자신이 밝고 경쾌하게 노래하는 것은 너무 이질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커서는 노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라든가. 그런 이야기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주인공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으로써 주된 서사를 이끌어 나가려 했던 작품은 정작 다른 사연과 에피소드에도 비중을 아끼지 못해 본의 아니게 주인공과 트라우마를 홀대해버리고, 결국에는 좋은 힘을 얻지 못한 듯했다.

 

여기에는 조금만 관람하다 보면 드러나는 <미녀와 야수> 오마주가 오히려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메인 서사는 물론 부수적인 에피소드들마저도 깔끔하고 명쾌하게 떨어지질 못하니 다른 시도들을 발견해도 '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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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스토리상에서 아쉬운 점들을 많이 찾아야 할 만큼 <용과 주근깨 공주>가 대충 만들어진 작품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감독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다른 제작진들 역시 장르/분야 별 최고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고, 실로 상영이 끝난 후 내 눈과 귀의 만족도는 정말 최고치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했다기보다는, 서사가 있는 하나의 화려한 페스티벌을 관람한 기분? 게다가 영화가 '스즈'와 '벨,' 그리고 '용'을 통해 어떤 대주제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다른 인물들을 옆에 두어 어떤 소주제들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메타버스'라는 소재를 활용해 독특하게 관통시키고자 했던 시도는 분명히 신선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드러난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아무래도 감독은 이야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설명적인 부분들이 차지하는 러닝타임을 대폭 줄이고, 관객이 웃거나 울거나 경이로워 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다양하게 담는 데 더욱 집중하며 일종의 '가성비'를 추구하려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의 짧은 러닝타임으로는 모두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비록 아쉬운 면이 극명히 드러나도,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는 임팩트 강한 연출과 비주얼만큼은 한 번쯤 다시 경험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니 이미 당신의 일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심오하고 복잡하다면, <아바타>나 <고양이의 보은>이 선사하는 신비함을 조금 더 우리의 현실과 가까운 제2의 세계에서 경험하고 싶다면, 놀이공원에서 지긋이 페스티벌을 구경할 시간이 없었던 요즘이라면, 9월 29일 개봉일에 맞춰 한 번은 여유로운 시간을 내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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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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