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입문서의 조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 - 오늘부터 클래식 [도서]
-
자의와 타의를 반반씩 한 이유로, 최근 클래식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색하고 막막한 과정에 앞서, 나는 다른 무언가에 빠지게 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내가 밴드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따라 들어간 동아리가 밴드 동아리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술관을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시험 끝난 날 내가 먹던 우유에 흥미로운 전시 광고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이렇게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애정을 길러내겠다는 나의 다짐은 허구에 가깝고, 또 다른 우연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에서, 내가 지금껏 경험한 규칙들을 그대로 적용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클래식을 이해하고 그 감동과 유머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렇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클래식의 감동이 밀려들어 오는 경험을, 정말 기다리고만 있어도 좋은 걸까?
무엇보다 클래식의 세계는, 나에게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 해 주변의 눈치만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하지 못해 금방이라도 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금세 지치다 못해 가장 익숙한 내 방으로 돌아가 유튜브나 보고 컵라면이나 호로록거리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역시나,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클래식 입문서 몇 권을 뒤적거려 보았다. 입문서란 비슷한 콘셉트를 가지고도, 각 책이 선택하는 전략들은 모두 달랐다. 어떤 책은 냅다 곡들을 던져주고, 일단 함께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떤 책은 클래식에 대한 상식, 역사, 음악가들에 대한 정보를 준비하기도 한다.
조금 부지런할 용의만 있다면, 어떤 책이든 읽어가며 듣는 귀를 넓혀가면 된다. 그러니 어떠한 책도 불량한 선생님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좋은 입문서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무엇에 빠지게 되는 순간과 비슷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은 지루한 수업 시간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클래식’은 그런 점에서, 입문서로서 아주 재미있는 전략을 선택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클래식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아주 많은 순간을 담았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요즘의 콘서트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2장에서는 이름만은 누구에게도 익숙한 유명한 작곡가들의 일화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3장에서는 작가가 직접 만난 오늘날의 음악가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았고, 4장에서는 나와 같은 초심자들이 클래식에 대해 가질 법한 의문들을 다루었다.
1장과 4장은 처음 클래식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 보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오늘날의 공연장에서, 아니면 혹은 유튜브에서 음악을 들을 때, 무엇을 생각해보면 좋을지 여러 힌트를 던져준다. 또 연주가 이루어지는 곳 안에서의 작은 규칙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 것들을 알면 클래식에 대한 인상도 풍부해지고, 텅 빈 생각으로 공연을 바라보아야 하는 난감함도 줄어들 것이다. 적어도 공연장 안에서 좀 더 멀쩡해 보이는 관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1장을 다 읽을 때까지도 나의 긴장감은 풀리지 않았다.
2장은 익숙한 이름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책에서는 이들을 좀 편안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는 이들의 위대함과 음악적 업적에 대해 배우느라,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마치 책에서 약력만 읽고 덮은 작가나, 면접에서 1분 자기소개만 듣고 만난 사람처럼 어색했다. 여기에서는 대단하지만 지루한 부분은 좀 덜어내고,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삶의 이야기 중심으로 다루었다. 결국 음악도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니까,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 이런 음악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엄청난 교양이나 형식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음악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들렸다.
의외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부분은 3장이었다. 나와 같은 시대 음악가의 이야기는 클래식이 가진 고정관념과 다르게 생기 넘치고 유쾌했다.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던 손열음과 조성진의 이야기였다. 경쟁이 가득한 사회에서 1등과 2등이 느끼는 마음을 솔직히 담았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 음악에서, 특히 콩쿠르에서 순위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완벽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경쟁, 반드시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는 결과를 받아 들어야 하는 건,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비슷할 것이다. 나에게는 때로 더 없는 불평거리가 되는 경쟁을 묵묵히 받아들인 사람들의 연주라니, 이전보다 귀 기울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각각 찾아봤는데, 특히 콩쿠르 영상은 책으로 확인한 절박함과 긴장이 상상되어 더 흥미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 절박함으로 각자가 준비한 연주가 그렇게 다르다는 것도. 피아노 연주는 다 똑같을 거로 생각했는데, 양손으로 내는 소리의 균형, 연주의 표현, 연주의 속도감과 소리까지 다 다르게 느껴졌다.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3장에는 그렇게 귀 기울이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서 나도 이해하고 공감하기 더 쉬웠던 게 아닐까 싶었다. 더 듣고 싶고 귀 기울이고 싶은 이야기들 덕분에, 오늘날의 음악가들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입문서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해보기도 했다. 그건 그만큼 생생하고, 쉽게 공감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책에서 본 음악가의 공연을 보게 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책에서도 여러 번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클래식은 일종의 규칙이 필요한 분야이다. 예를 들면, 악장과 악장 사이에서는 손뼉을 치지 않는 규칙이 있는데, 이것을 어떤 사람이 모르고 막 손뼉을 쳤다면 다른 관객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혹은 곡의 흐름을 보면 아주 고요하고 섬세한 감상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기침을 하여 소리를 낸다면, 연주와 감상의 분위기를 망치게 된다.
그래서 잠자코 심각한 표정으로 음악만을 듣고 있자면, 음악가들은 때로 자신들만 아는 유머를 던져 나를 곤란하게 한다. 제대로 심각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애매한 관객이 되고 만다. 그런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많이 경험하고 무엇보다 섬세해야 할 것 같다. 콘서트홀 안의 작은 신호 하나에도 반응하기 위해서다.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섬세함을 가지기 위해선, 일단 열심히 귀 기울여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런 자세를 가지게 도움을 주는 건 이야기였다.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들었던, 당시에는 지루했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왜 이 음악을 찬찬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답이 되어주는 이야기.
책에는 곳곳에 지금 읽는 이야기와 연관된 영상을 볼 수 있는 QR코드가 들어가 있다. 나는 영상을 보거나, 음악처럼 틀어 두면서 책을 읽었다. 공연장에 가기 전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내 상상에만 맡겨야 하는 버거운 시대를 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클래식에서 애정을 찾아내야 할지 고민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책이다.
[박경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