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퀴어리즘 [도서]

퀴어로서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10명의 아티스트, 그리고 10개의 방식
글 입력 2021.09.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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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리즘: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를 집어삼킨 10명의 퀴어 화가들>이라는 책 제목만 보고 홀린 듯 집어 들었다. 바쁜 와중에도 꼭 읽어야 했다. ‘드디어 누군가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았구나’... 이렇게 반가운 걸 보니 의식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이런 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제목부터 살펴보면 ‘낯선, 괴상한, 이상한’이라는 뜻의 ‘퀴어(queer)’는 동성애를 경멸하고 비하하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1980년대 이후 동성애 운동가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수용된 단어로, 이 책의 저자는 성 소수자들의 미술 사조를 ‘퀴어리즘(queerism)’이라고 명명한다.

 

세계적인 경매 회사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 기록을 살펴보던 저자는 “최고가 화가들 중 상당수가 여성성을 지녔거나 동성애적 기질을 가졌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잭슨 폴록, 앤디 워홀, 키스 해링을 포함한 10명의 퀴어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이 책에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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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리엔테이션’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어릴 적 많이들 읽었던 <인어공주>의 저자 안데르센, '명화'하면 떠오르는 <모나리자>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국에서 유난히 흥행이 잘 됐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 수많은 신봉자를 양산한 ‘애플’의 CEO 팀 쿡 등 유명인들의 이름을 줄줄이 언급한 작가는 어쩌면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린다.

 

이들은 모두 ‘퀴어’라고.

 

뒤이은 그의 질문은 독자의 뒤통수를 치며 서문의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당신은 아직도 퀴어 포비아입니까?”

 

저자가 저들이 모두 퀴어라고 설명했을 때, 독자들의 표정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그 순간 그 한마디가 저들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을까? 그저 익명의 ‘동성애자’로 정의 내려 버렸을까?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저들이 창조해 낸 훌륭한 글, 음악, 미술, 브랜드가 부정당했을까?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10명의 퀴어 예술가들, 경매 최고가 순위에 드는 이 ‘성공한’ 예술가들은 동성애적 기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예술마저 부정당할 수 있는 걸까?

 

남이 우리를 정의하려 들 때면 “네가 나를 그렇게 잘 알아?”라고 속으로든 겉으로든 외치기 마련이다. 우리는 남에 의해 정의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어 한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잡아두고 싶어 괜히 성격유형 테스트 결과에 집착하고,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SNS에 몰입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도 그랬다. 그들 중 일부는 동성애 기질로 인해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코드’를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넣었다. ‘동성애자’라는 타이틀로 남들에게 규정됐지만 그들 스스로를 정의하는 큰 부분 역시 퀴어였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 중 퀴어 요소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가가 있는 반면 암호처럼 은밀하게 숨겨놓은 작가가 있듯 본인의 정체성을 제시 혹은 암시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모두 퀴어였고, 그게 그들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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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03, 나무판에 유화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성애 풍기 문란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었고 운 좋게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평생 동성애 취향을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인물의 중성적인 외모, 동성애적 코드에서 숨길 수 없는 혹은 숨기고 싶지 않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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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Crucifixion), 1944, 보드에 파스텔과 유채

 

 

프란시스 베이컨은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끝내 버림받게 되는 비극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치유의 도구로써 그림을 택했고 공포, 죽음, 인간의 추악함, 가학적 변태성, 심연의 불안 등을 화폭에 담아냈다고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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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전시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 참고로 이 그림은 1019억에 낙찰되었다.

 

 

“생존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호크니는 공개적인 동성애자였으며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예술가다. 저자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그의 작품의 핵심인 ‘동성애 코드’에서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호크니 그림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그림이 작가 자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이기 때문인데, 그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그의 동성애 성향이다.

 

“그의 예술적 발자취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서사시적 과정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었고, 호크니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예술의 원천적 힘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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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 1972, 캔버스에 아크릴

(아래)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1966, 캔버스에 아크릴

 

 

호크니 그림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수영장> 시리즈. 많은 이들의 ‘페이보릿’인 수영장 그림들을 보며 혹시 ‘수영장’이라는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수영장이 “벌거벗은 남자의 육체를 당당하게 관찰할 수 있는 장소”라 말한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보는’ 사람, 여성은 ‘보여지는’ 사람이었다. 남자 화가가 그린 여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알몸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남자의 누드는? 저자의 해석이 정말 호크니의 의도와 같다면 화가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남자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곳으로 수영장을 택한 것이다.

 

이런 해석을 듣고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지, 좋아했던 그림인데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가슴이 찌릿했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한 뼘 깊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진짜 호크니를 본 것 같았다.

 

이 책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은 이랬다: "그들은 퀴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작품을 남긴 것일까, 아니면 퀴어이기 때문에 대단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동성애는 그들의 삶과 예술 자체였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예술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고, 유일무이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되었고, 끝내 인정받고 사랑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도 ‘특이(queer)’했고, 그런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정상적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고, 그 결과로 특이한 예술을 창조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회의 인식에서 오는 불안함, ‘잘못’이라 여기는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인한 죄책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 그런 사회를 향한 불만과 분노, 나만 다르다는 외로움과 나와 같은 이에게 느끼는 더 큰 동질감. 생각해보면 이런 감정들은 사실 헤테로인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타자화’를 멈추게 한다. ‘경매 최고가’, ‘가장 사랑받는’, ‘위대한 천재’ 등의 수식어를 거머쥔 이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예술가들. 그러나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우리 중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까?

 

‘퀴어’라 하면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 즉, 익명의 ‘타인’을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가수, 그리고 나의 친구, 친척, 가족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타자화’에서 비롯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린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가 퀴어라는 이유로 그의 그림이 갑자기 다른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아하던 그들의 모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퀴어'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닫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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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을 어렵지 않고 재밌게 풀어나가면서 ‘퀴어’를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예술’과 ‘퀴어’를 엮은,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책으로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서 예술가들의 삶을 새롭게 알게 되는 건 물론 퀴어에 대한 인식도 바뀔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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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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