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회가 있어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 - 인간실격 [도서]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글 입력 2021.09.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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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느끼는 작가가 결핍한 등장인물을 서사에 녹여, 결핍을 느끼는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갈래. 그 때문에 소설에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는 꽤 동떨어진 인물이 등장하고, 동떨어진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가끔은 특색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삶에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듯, 어느 정도 현실과의 괴리를 전제로 한 소설에서도 때로는 읽는 사람이 납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이벤트가 묘사되기도 한다. 내게는 바로 이 <인간실격>이 그랬다.

 

 

 

인간을 향한 공포, 그리고 은둔



 

사실 저는 혼자서 전차를 타면 차장이 무섭고, 가부키 극장에 가고 싶어도 붉은 카펫이 깔린 현관 계단 양쪽에 죽 늘어서 있는 안내양들이 무섭고, 레스토랑에서는 등 뒤에 조용히 서서 접시가 비기를 기다리는 웨이터가 무섭고, 특히나 돈을 치를 때 아아, 그 어색한 손놀림.

 

 

누구나 관계에 크게 데이곤 하지만, 난생처음 타인으로부터 받는 충격은 성장통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에는 깊고 큰 생채기를 내곤 한다. 나도 나이 스물에 들어간, 공동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동아리에서 ‘성실하지 않다’ 심지어 ‘도덕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이런 말을 당사자 앞에서 당당히 하고야 마는 용기에 그저 어이없어하고 넘겼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엔 배짱이 부족했고, 상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내게 고스란히 충격을 남겼다. 끝없이 되뇌어봤다. 정말 나는 도덕성이 결여되었는가? 나는 ‘인간의 자격이 없는가?’


아무리 자문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질문을 던지느라, ‘나 정도면 괜찮지’라는 자존감은 어느새 고갈되고 밖에 나가기가 몹시 두려워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눈에 들어와도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숨어지냈다. 먹지도 않고, 바깥과는 철저히 유리된 채 말이다. 그렇게 1년을 써 버리고 ‘히키코모리’의 삶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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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흥이 깨지면서 분위기가 일변하는 것이 질식할 만큼 끔찍해서, 나중에 저한테 불이익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의 ‘필사적인 서비스’, 그것이 비록 잘못되고 시원찮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서비스 정신에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덧붙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습성 또한 세상의 소위 ‘정직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 잠깐 숨어 지냈던 나와는 달리 삶 전반을 방황했던 요조라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보는 타인의 모습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자명하지만, 요조는 특히 이 점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더불어 어린 나이에 집안의 하인과 하녀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 그 공포는 배가된다.


요조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하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관계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요조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쓰고 익살스러운 가면극을 연기하는 배우의 삶을 산다.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고독을 필사적으로 누르려는 몸부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친구가 그를 따르고 좋아한다. 요조는 마치 오리와도 같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살을 가르는 듯 보이지만, 떠 있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악착같은 발버둥을 치는.

 

 

저는 학교에서 존경을 받을 뻔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에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라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인간을 속여서 ‘존경받는다.’ 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도 그 사람한테서 듣고 차차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들의 노여움이며 복수는 정말이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상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습니다.


 

요조의 연기는 요조를 위해서라도 친구들에게 ‘트루먼 쇼’여야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너의 행동이 연기가 아니었냐는 어느 한 친구의 말은, 겨우 가면 뒤로 숨겼던 자신이 발가벗겨지듯 드러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크나큰 공포를 가져다준다.


급작스럽게 엄습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 여자, 좌익 사상에 빠져든다. 이 모든 것은 요조가 진심으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였을 뿐이다. 특히 반항적 성격을 띠는 좌익 사상에 대해서는 절대 그 사상이 좋아서 빠진 것이 아니라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엔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파멸뿐



요조에게 극복 불가능할 것 같던 어려움을 깰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조에게 술, 여자 등 온갖 향락을 가르쳐 준 미대생 호리키를 통해 ‘세상 = 인간’이라는 사고를 하며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또한, 요조에게 술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순진한 여성과 결혼하며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호리키와 설전을 벌이고, 아내가 단골로 드나들던 손님에게 덮쳐지자 다시금 공포가 엄습한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유부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동반 자살을 기도한 적 있는 요조에게 다시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의 고통이 찾아온다.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고, 가족과 지인에 의해 미치광이 취급받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자신을 ‘인간실격’이라고 규정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을 전제로 병원에서 풀려났지만, 폐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이라는 것이 요조가 깨달은 유일한 세상의 진리였다.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을 성추행하는 노파와 함께, 자포자기한 채로 삶을 흘려보낸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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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에는 요조를 가까이서 지켜본 마담이 등장한다. 마담은 종적을 알 수 없는 요조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보통은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요조는, 벌이 죄의 반대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한 적이 없는데도 형벌로 점철된 삶을 살며 고통스러워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의도를 마음속에 가지는, 거의 모든 인간을 두려워한 것이 컸다.


‘인간의 이중성’을 소재로 다룬 몇몇 소설을 오피니언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인간실격’과 다른 작품을 비교해보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는 허위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로지 나 자신만이라도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진실의 순교자 뫼르소가 등장한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거의 모든 사람의 가식을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순수한 여동생의 모습에 다시 기존 체제에 편입되기로 한 주인공 홀든이 등장한다.


상술한 두 소설과 달리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주도적으로 무슨 행동을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세상의 질서에 쉽게 적응하지도 못하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인물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 일변도인 소설. 반전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나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순진무구하게 믿으려고 했으나 상처 속에서 헤매고 더불어 운도 따라주지 않는 그의 모습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써 내려간 성공 스토리보다 훨씬 현실성이 있는 것 같다.


문득, 내 동생의 메신저 상태 메시지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으로 수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것이 떠오른다. 동생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며, 가족 구성원 전부가 동생을 몰아붙이고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어쩌면 상태 메시지를 오랫동안 걸어 놓으며 ‘나는 요조와 같은 상태’라는 말을 가족 중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순간, 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번 명절 때 동생과 이 소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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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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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대현님. 컬쳐리스트 서지유입니다.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문장 문장들 한 켠에 묵직함이 올려졌고, ‘인간을 순진무구하게 믿으려고 하였으나 상처 속에서 헤매’며 살았던 요조의 삶에 궁금함이 생겼고, 많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요조를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러다 ‘그런 관심마저도 요조에게 가식적이게 보이진 않는지, 전혀 괜찮은 방법이 아닐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냥 손 놓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편이 더 낫나’하는 생각으로요.

      신뢰감으로 일으킬 수 있는 요조를, 좌절된 기회들로 그 신뢰감을 완전히 앗아간 상황이 참 싫어지네요.

      저도 누군가에게 홀든의 여동생처럼, 의지와 기회의 물꼬를 틀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지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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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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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인상깊게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은 세상을 향해 계속 손을 내미는 시도를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스러져버리고 맙니다.

      '사회 부적응자'에게 우리는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인간이 가진 이중성을 일찌감치 깨달아버린 요조와 같은 사람에게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도움을 섣불리 줬다가 오히려 더 악화가 되는 것은 아닐지요.

      사람을 바꾼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벽을 실감합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피비는 강력한 무기인 천진난만함으로 홀든을 움직였지만, 이제 저는 이것도 사라진 나이라 씁쓸하기만 하네요 ^^;;

      다음 댓글 피드백 모임에서 재미있게 서로의 글을 보이는 소중한 기회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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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ul
    • 안녕하세요. 에디터 강득라입니다.

      글을 읽고 한 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서요.
      대현님 글 덕분에 인간과 인생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글을 읽어내려갈수록 요조를 향한 안쓰러운 제 마음이 깊어져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현님의 글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책을 읽으면 얼마나 더 할까요.

      저는 그래도 반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결국에는 요조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예상과 달리 여전히 방황하는 채로 삶을 보내는 요조를 대현님의 글을 통해 보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만약 요조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어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며 아쉬움을 애써 달래봤습니다.

      생각해보면, 대현님의 말씀처럼 '인간실격'의 결말은 정말 현실적이네요.
      주변을 돌아보고, 뉴스를 보면 방황을 했더라도 극복하거나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지만,
      요조처럼 평생을 방황만 하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후자쪽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감소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제 주변사람들,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방황의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며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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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19: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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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ul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실패는 네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다'라며, 반대로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갔습니다. 백 대 일의 경쟁률이라면, 1명의 성공은 99명의 실패를 딛고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다들 성공해본 적만 있는가, 다들 성공은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요즘 사람들이 모든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 부재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 본인 탓이 아니지만, 외부 요인을 찾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힘들고 지치니까요.

      변변치 않은 글에 깊은 감명 받아주셔서 감사드리며, 저 역시 득라 님의 댓글을 머금으며 사색했던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댓글 피드백 모임에서 재미있게 서로의 글을 보이는 소중한 기회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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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현채입니다.

      인간실격을 인상 깊게 읽었고 글도 기고했었던 터라, 대현님의 글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글의 첫 문장이 <인간실격>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핍을 느끼는 작가가 결핍한 등장인물을 서사에 녹여, 결핍을 느끼는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갈래'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의 실제 생애가 많은 부분 닮아 있다는 점,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요조의 일부분에서 저 자신이 투영되어 보였던 점. 저의 아주 부정적인 면만으로 인간이 구성된다면 요조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답을 찾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못한 채 일생을 비극으로 살아간 요조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저 요조의 생애를 지켜보고 느끼며, 사람은 누구나 정도를 달리하여 외로움과 혼란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데에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잘 정리된 대현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실격에 대한 감상을 꺼내 나누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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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21: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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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십자가는 지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십자가의 무게를 가벼워서 감당할 수 있겠다고 느끼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십자가에 압사하기 일보 직전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요조는 결국 압사당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조의 이후 이야기는 소설에 드러나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요조가 지기에 세상의 짐은 너무나 무겁다는 것.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정도도 못 버텨서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라는 식의 말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실격>에서 나락까지 떨어지는 주인공을 보여준 것은, 비현실적인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울적함과 궤를 같이 하며 공감을 유도합니다.

      어쩌면 작가의 인생이 주인공의 인생하고 너무나 닮아 있어서 사실성을 부여해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아트인사이트에서 다양한 글로 서로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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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안녕하세요. 에디터 백나경입니다.

      일본어 특유의 문체를 싫어해서 일본 소설류는 잘 읽지 않았으나, '인간실격'이라는 도서의 제목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어떤 분위기의 글인지 알아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글쓴이의 예시에 한 소설을 덧붙이고 싶어졌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책입니다.

      물론 '스토너'의 주인공은 인간실격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대학의 교수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책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싶어진 이유는, '반전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나 꾀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글쓴이의 서술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느끼기로는 '인간실격'은 '흘러가는' 유형의 소설인 것 같습니다. 극적인 반전 없이, 시종일관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는 소설이요.

      '스토너'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글을 보면 인간실격이 훨씬 더 마라맛일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러한 유형의 글을 좋아하신다면 '스토너'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인간실격을 한 번 시간 내어 읽어보아야겠네요. 타인의 우울을 경험하는 데에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까요!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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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21: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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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주인공 요조가 결국 극복하고 '새사람'이 되었더라면 이 소설은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류의 줄거리는 우리가 '바라는' 줄거리일 뿐이지요.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과 '이방인'도 주인공이 현실 문제를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아예 주인공을 '실격'시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이야기는 읽는 순간에는 감동받을지 몰라도 오래도록 남아 있지는 못하죠. 그런 의미에서 '인간실격'은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계속 생각나게 하는 소설입니다. 나경 님께서 추천해주신 '스토너'라는 책은... 사실 처음 들어봤습니다...ㅎ 언제가 될 진 모르겠습니다만, 우연히 이 책을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으로 꼭 읽어보겠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제게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느냐 물음을 받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다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그것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기회란 그렇게 자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만 인간은 성공 한 번의 기억으로, 실패 백 번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경 님의 앞날에는 무궁한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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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 대현님 안녕하세요. 컬쳐리스트 김재훈입니다.

      과거 저 또한 인간실격을 읽은 적 있는데요, 요조의 도피적이면서 동시에 자조적인 태도가 저에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여태까지 본 소설과는 격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우울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자리했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죠.

      저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간실격이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 소설인 동시에 그의 운명 또한 요조와 비슷했다는 점에서 참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평생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고, 젊은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그가 했을 고뇌가 뼈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씁쓸함과 꺼림직함,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던 인간실격이었기에 이렇게 기억이 오래 남지 않나 싶습니다.

      대현님은 과거 자신을 고립시킨 경험이 있다 하셨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버티기 힘들 정도로  절 괴롭혔죠. 지금이라고 바뀌었나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전 과거 극복했다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더라고요. 단지 그런 마음이 내면 속 깊이 숨어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잠도 잘 못잡니다. 잠을 자도 시원하게 잔 것 같지가 않고요. 대현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걸 극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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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2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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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뭐... 저도 극복은 아니고,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단 잠을 못 주무신다니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잠은 푹 잤는데,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못하는 증상이 있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과는 계속 조우하게 되더라고요.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을 압니다. 어떻게 피하고 싶은 것을 즐긴답니까? 대신, 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그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는 순간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깨끗이 잊자고 다짐했습니다. 아니, 다짐할 필요도 없이 재미있는 것을 하면 잊혀지더라고요.

      제게 돌파구를 제공해준 것은 라디오였습니다. 지금은 자전거 타기, 예능프로 보기,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아트인사이트에 글 올리기 등 제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관심이 나중에 식을 수도 있지만, 절대 싫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영역을 늘려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싫어하는 것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이 배어나오는 글을 읽고 댓글 달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외람된 말씀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버티기 정 힘들 정도가 되면 저의 아무 글에다 댓글 남겨주세요. 떡볶이 한 그릇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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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
    • 안녕하세요. 안지영입니다.

       이전에도 <인간 실격>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또 다른 시선으로 쓰인 것을 보니 더 반갑습니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무게 때문에 많은 추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언급해주신 것처럼 결핍을 느끼는 작가와 결핍한 등장인물, 결핍을 느끼는 독자의 관계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많은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에서 작가, 본인이 투영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요조의 삶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어떤 모습을 담아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대현님의 글 속에서 <인간 실격>은 인간의 삶, 관계에 대한 물음과 동시에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이중성보다 가깝게 다가오는 제 자신에 대한 이중성이 참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앞으로도 그 여정이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향유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p.s 추천해주신 대로 인간 실격과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교하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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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22: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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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제가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이중성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연락을 받기가 싫어질 정도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우울함이 오더라고요. (예상하시겠지만, '인간실격' 때문입니다 ^^)

      그런데 저 역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을 싫어할수록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어쩌면 제가 가진 이중성이 타인의 그것보다도 더 농도가 짙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싫어하는 어떤 사람의 면모를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또한 중요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현타'도 왔지만, '인간실격'은 제 자신도 많이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부족함이 넘치는 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영 님에게도 '인간실격'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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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노상원 입니다. 반갑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글을 쓸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은 줄거리 설명을 어떻게 얼마나 할 것인가 입니다. 시간순으로 해야할지, 서술순으로 해야할지, 화자의 체험을 따라가야할지, 줄거리는 최대한으로 간결하게 요약해야 할지 등등. 저는 아직 <인간실격>을 읽지 않았음에도 대현님이 내용과 감상을 친절히 풀어주신 덕에 글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우리가 연기하게 되는 역할들은 대부분 우리가 선택한다기 보다는 주어지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요조의 가면 역시 요조의 타고난 성정이 제자리를 찾지못해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것이겠죠.

      그렇다면 이 소설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저절로 생깁니다. 작가야말로 직업적으로 가면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따라서 다자이 오사무 그 자신은 요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지, 자신의 모습을 얼마만큼 투영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어서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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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2021.10.02 22: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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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제가 줄거리 설명을 잘 했다니... 우선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줄거리를 잘 소개할 수 있을지 연구를 거듭하도록 하겠습니다 ^^

      상원 님의 댓글을 보고,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를 연관지어 설명했었더라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인간실격'의 요조의 삶은 작가의 그것과 퍽 닮아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도 연인과 동반자살을 기도하다가 살아났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같은 방법으로 사망하긴 했지만요.

      소설의 앞부분에 묘사되는 사진 속 '요조', 즉 웃고는 있는데 흉측하게 생긴 미소도 사실 작가를 찍은 사진과 매우 흡사합니다. 소설인 줄 알았던 요조의 삶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작가가 그대로 살고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참 큽니다.

      아마 책장을 덮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원 님께서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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