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것 - 벌거벗은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21.09.07 13: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벌거벗은미술관_입체띠지.jpg

 

 

<벌거벗은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이다. 고등학교 때 저자의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접하고 미술사에 재미를 느꼈던 데다, 그가 출연한 예능 <신기한 미술나라>를 열심히 챙겨보았던 만큼, 책 표지를 넘기기 전부터 기대를 가득 안고 펼쳤다.

 

책은 미술 에세이라는 말과 어울리게 이때까지 읽었던 미술책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었다. 미술을 역사의 흐름대로 나열하거나, 혹은 공통점이 있는 작품이나 작가를 소개하는 식이 아니라 저자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미술관에는 없는 미술 이야기'를 전달한다.

 

 

1200px-Venus_de_Milo_Louvre_Ma399.jpg
<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130~100년

 

 

대개 우리는 그리스 조각을 떠올릴 때, 매끈하고 하얀 조각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 이 조각이 눈밭처럼 새하얀 색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매우 화려하고 통통 튀는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면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이 순백색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일차적으로 시간이 흐르며 화려한 채색이 지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들은 그리스 조각이 채색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이후에 '조각 = 순백색 대리석 조각'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인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18세기에 이르면, 매끈하고 새하얀 이 조각을 깨끗하고 질병 없는 백인의 신체로 미화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한다. 그저 막연히 '이상적인 미'라고 생각해왔던 고전 미술에 이러한 후문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아마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오랜 시간 뒤에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75077_55310_276.jpg
유에민쥔, <잔디에서 구르다>, 2009

 

 

두 번째 파트는 '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들은 늘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듣고 보니 그렇지 않은가. 우는 모습, 화난 모습, 고통스러운 모습은 다 있는데 왜 미술 작품들에서 활짝 웃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까?


저자는 고전기 그리스에서 로마 시기 사이에 만들어진 초상 조각들이 잘 웃지 않는 이유는 미술이 철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균형이 존재하는 세계인 '이데아'에 웃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후 중세 시대에는 웃음을 숨기려는 쪽과 함께 웃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며 옹호하는 쪽이 또한 서서히 생겨나며, 인물 조각들의 표정에 생명력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현대에는 미술품들이 마음 놓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을까? 과거보다 엄숙한 느낌은 훨씬 줄었으나, 여전히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듯하다. 현대 예술가들은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에 주목한다.


즉 단순히 어떤 인물이 웃고 있다고 해서 그가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책에 나오는 예시처럼 조커의 웃음이나, 유에민쥔의 화폭에 수 놓인 호탕한 웃음이 행복을 뜻하는 게 결코 아닌 것처럼 말이다.

 


___Atout_France__Franck_Charel.JPG
루브르 박물관 전경

 

 

최근 친구가 보내 준 인터넷 짤 하나를 보고 웃펐던 적이 있다. 대충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나라에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장물을 돌려주는 것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프랑스는 과거 여러 나라에서 약탈해온 미술품들이 무척 많은 편이다.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문화재 반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돌려받은 후에 그가 보존/전시될 자리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프랑스 측의 적극적인 태도가 가장 중요하나 사실 흔쾌히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처럼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는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낯부끄러운 행위로 하여금 박물관의 권위가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더이상 그 공간이 마냥 멋있고, 신비로운 곳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Decameron01.jpg
1492년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데카메론>의 삽화

 

 

네 번째 파트는 '미술과 팬데믹'으로 수많은 사람을 두렵게 했던 전염병들이 미술에 끼친 영향을 살피며, 오늘날 우리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중세 문학을 대표하는 <데카메론>이 '자가격리가 낳은 문학'이라는 사실이다. 눈만 마주쳐도 옮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전염력과 더불어 치사율까지 높았던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드문 곳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흑사병을 피해 시골로 피난 간 청년 열 명이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풀었던 이야기보따리를 묶어낸 책이 바로 <데카메론>이다. 자가격리의 무료함을 자극적인 이야기로 극복하려던 탓에 한때 교황청의 금서로 지정되기도 한 <데카메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미술의 역사를 명작들로 이어진 위대한 역사라고 알고 있지만, 조금만 냉철하게 살펴보면 미술의 역사는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71p.

 

 

여전히 미술은 우리에게 마냥 쉽게 느껴지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하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다. 즉 인간이 만들어내는 미술 또한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자리에 전시되어 있는 것 같은 저 작품도 나와 같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미술이 한층 살갑게 다가오지 않을까?

 

 

[유소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458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2.01.27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