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관을 벌거벗기다 - 벌거벗은 미술관

<벌거벗은 미술관> 속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술관 이야기
글 입력 2021.09.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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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벌거벗은 미술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면서 표지를 넘겼다. 처음 떠올린 것은 누드화 및 조각들로 가득 찬 회랑이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더러는 근대에까지 이어져 온 아름다운 몸에 대한 묘사들. 인간 육체를 찬미하고 이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시기에 대한 안내서일 수도 있겠다며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아주 빗나간 예상은 아니었다. 고전미술에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책의 주요 골자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일독을 완료한 후 표지를 다시 바라보니, 제목이 가진 다채로운 함의가 그제야 보였다. <벌거벗은 미술관>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의,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의, 수동형이 아닌 참여형의 이야기다. 작가는 벌거벗은 그림들이 걸린 미술관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옷자락 속에 숨겨진 미술관의 이야기를 함께 파헤쳐보자고—벌거벗겨보자고 제안한다.

 

작가의 권유를 받고 그의 안내에 참여하면서, 독자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늘 속의 이야기들을 발굴하게 된다. 우아함과 교양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드러나는 미술의 진짜 얼굴, 그야말로 영욕의 인류사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조명 밖에 자리했던 이야기들은 마침내 종이 위에 쓰이고, 반전처럼 다가와 독자를 놀라게 한다.

 


 

1장 고전은 없다: 신화화된 미의 기준


 

책의 첫 장에서는 오랫동안 미의 기준으로 정립된 고전미술, 그리고 누드상의 기원을 추적한다. ‘우리가 아는 고전미술은 짝퉁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장을 던진 후, 독자는 고전이 신화화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게 된다.

 

작가는 동서양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건설된 서양의 문명적 캐논(canon)이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까지도 뿌리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학습된 미의 등급화와 그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지점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열린 시각과 자세를 갖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2장 문명의 표정: 다양한 미소들



2장에서 작가는 웃음과 미술의 관계를 조명한 연구가 드물다는 것을 지적, 작품 속에 드러난 웃는 표정을 시대별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웃는 표정들을 찾아 떠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당대의 문화를 대표할 만한 표정, 즉 문명의 표정과 각 문명 특유의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온화한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에서부터 중세의 생기 넘치는 미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모나리자의 미소, 바로크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과 개성 넘치는 역동적 포스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부드럽고 발랄한 미소와는 다른, 무겁고 진지한 특징을 띠는 표정들 또한 존재한다. 작가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무표정성, 슬픔과 애도로 가득 찬 중세의 또 다른 얼굴, 강인한 이미지를 주기 위한 신경질적인 심각한 르네상스의 표정, 17세기 자화상들 속의 참회와 성찰, 절대왕정 시대의 위엄 넘치는 표정, 18세기 볼테로의 미소와 다양한 풍자화, 현대의 가면 같은 미소까지 찬찬히 짚어준다. 시대별 표정과 역사적 흐름을 사이의 연결고리를 분석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3장 반전의 박물관: 박물관의 격동적인 역사


 

3장은 박물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역사를 따라가며 박물관의 발전을 살펴보게 된다. 소위 박물관 붐이 일어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주도의 미술품 약탈을 배경으로 한다. 공공 박물관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이 가지는 의미—권력층에서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모한 박물관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주어진 문화 향유 기회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우리는 휴식과 전시의 공간이던 박물관이 가지는 묵직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어 작가는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졌던 루브르와는 다르게 점진적 변화과정을 거쳐온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의 역사를 비교한다. 한스 슬론, 윌리엄 해밀턴, 소사이어티 오브 딜레탕티와 토머스 브루스에 이르는 다양한 컬렉션 수집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가 박물관의 확장에 끼친 영향, 그리고 글로벌 시대를 맞아 박물관이 도모하고 있는 혁신적 변모까지 낱낱이 풀어낸다.

 

 

 

4장 미술관 팬데믹: 전염병이 바꾼 미술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현재, 과거 긴 시간 동안 인류를 암흑 속에 몰아넣은 흑사병, 그리고 2차세계대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에서는 데자뷔처럼 겹치는 과거의 전염병과 그 전염병이 문화예술에 끼친 다양한 영향력을 모아 제시한다. 『데카메론』, 「스트로치 제대화」, 유서를 남기는 문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시작, 병원 제대화의 출현, 그리고 에곤 실레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 속에서도 끈질기게 빛난 예술혼과 생명력에 대해, 또한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새로운 갈림길에서 현 인류는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에필로그에 이르러 작가는 미술 속에 드러난 인간과 인간이 감상하는 미술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들의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을 상기해보며, 인류의 역사 또한 실패와 미완성으로 쌓여왔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완벽이란 없음을 재고할 때, 우리는 열린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낮은 허들을 가슴에 품은 채 미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제공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미술이 품은 숨겨진 단면을 만나보자.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가 넓혀줄 시야를 통해 미술과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만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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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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