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뻔하디 뻔한 '하이틴 영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9.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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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감정을 그리워하곤 한다. 틴 무비는 아마 그 정점에 있는 장르일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학교 풋볼팀 주장이나 소꿉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춤을 추고, 별것도 아닌 일로 세상이 무너질 듯 싸우다가 울면서 화해하는 그런 영화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더라도 나는 사물함 앞에서 입을 맞추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아웃 포커싱된 배경에서 가방을 정리하는 흐릿한 학생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그건 배경을 한국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내게 영화처럼 멋지고 아슬아슬한 청소년기가 주어질 기회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겁이 너무 많았고, 그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가장 큰 일탈은 야간 자율학습 중간에 나가서 삼각김밥을 사 먹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내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뻔한 말은 하기 싫지만, 그들과 하루 13시간씩 학교에 붙어 앉아 아이돌 노래를 불렀던 내 청소년기를 나는 다른 누구의 기억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프롬이나 하우스 파티 같은 요소를 빼고서라도 대부분의 틴 무비는 온전히 주인공들의 외모와 내면의 매력으로 개연성을 얻는 판타지에 가깝고, 사실 그렇기에 더 재미있는 것이다. 소나기나 첫눈이 내리는 학교를 배경으로 같은 학년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확률, 모두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선배에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받을 확률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떠올려보니 공개 고백은 왕왕 있었던 이벤트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경험이 모두에게 흔하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다들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고, 미성년자 신분으로 멍청한 짓도 한두 번쯤 저지를 기회를 놓친 이들이-나를 포함하여-꽤 많았던 모양이다. ‘하이틴’이 장르가 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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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어덜트 장르 전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지만, 그 모호한 판타지는 최근 들어서 2000년대, 그리고 90년대로의 향수와 함께 꽤 강한 유행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물론 <클루리스>나 <퀸카로 살아남는 법> 같은 영화들 속의 패션과 이미지야 늘 상징적이었고, 그만큼 자주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유행이 될 만큼 미디어에서 자주 참조되고 있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내 경험으로 돌아와서, 나는 늘 영 어덜트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로맨스든 SF든, 수준이 높든 유치하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웃음이 날 정도로 뻔한 설정과 클리셰로 점철된 어떤 이야기들은 바로 그 요소들 때문에 매력을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청소년들의 치기 어린 갈등과 성장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세세히 뜯어보면 그들의 인생사는 나 자신의 인생과는 몹시 거리가 먼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시기의 고민들이란 서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마련이라 나는 그것들을 꽤 열렬히 챙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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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들이 영 어덜트 장르를 어떻게 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2000년대의 틴 무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플롯의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내가 그 무렵 가졌던 판타지가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 같기는 하다. 그 영화들은 상황이 어찌 됐든 만들어졌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틴 무비가 인기를 끄는 것을 넘어서서 독특한 감성과 미학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 코로나가 2년이라는 시간을 망쳐 놓았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로나는 모두의 2년을 공평하게 망쳐 놓았다. 누가 더 어렵고 덜 어려운지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만약 내가 지금 막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나 고등학생이었다면, 나는 눈물 나게 아쉬웠을 것 같다. 영화 같은 사건은 겪지 못할지라도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데, 내가 그걸 답답하게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젊음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없는 훈수가 범람하는 까닭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사는 것에 다들 지나치게 익숙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틴'이 영화뿐만 아니라 패션, 콘셉트, 이미지 등의 분위기를 일컫는 단어로 쓰이게 될 정도로 인기를 얻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이런 상황에서는 선택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지만-삶을 경험하기 위해 영화를 찾곤 하니 말이다. 하이틴이라는 용어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그 단어 아래 모이는 이미지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는 이들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꼭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이틴의 유행은 어린 친구들의 도둑맞은 젊음과는 상관없이 ‘레트로 붐’과 함께 자연스럽게 찾아올 순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제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젊음을 낭비하는 기분을 지금 이 순간도 느끼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감정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놓치는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주어진 선택지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에 당연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코로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변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 앞으로 엄청나게 후회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라고 인생이 100년씩이나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몇 년쯤 우회해야 한대도 티도 안 나는 시간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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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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