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속사정] 바다 2

내가 그런거야
글 입력 2021.09.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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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민석의 결혼 소식이 터무니없게 느껴진 이유는 민석과 알고 지내는 동안  여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몇 년전 민석과 같이 다녔던 토익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익 스터디원 중 여자도 있었다. 그 중 한명이 민석에게 관심이 있는 티를 잔뜩 내길래, 민석에게 “야, 쟤 너한테 관심있나보다, 밥이나 한 끼 먹지 그래?” 라고 말하니, 민석은 공부에 집중해야한다며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몇일 뒤, 일방적인 감정에 지친 스터디원이 나에게 민석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지 물어온 적이 있었다.

 

간절한 그녀 모습에 민석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는데, 그날 민석은 엄청난 화를 퍼부었다. 처음보는 모습에 당황스러워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변명하며 다음엔 절대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넘어갔다. 그 이후도 어떤 여자가 취향인지, 하물며 저 여자 이쁘다는 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녀석 게이인가?’ 싶었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끌고와서 한다는 말이 결혼한다니,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결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결혼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장난치는 거면 나 너 다시 볼 생각없다.”

“하아.”


민석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석의 표정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민석이 맞는지 헷갈릴정도로 낯설었다. 그동안 내가 본 민석이가 진짜인지 아니면 이 모습이 진짜 민석인지 알 수 없었다. 손끝이 저려왔다.


“그래. 너한테는 갑작스럽겠지만, 나 2년 전부터 여자친구 있었고, 그 여자랑 결혼하는 거야. 성철이가 소개해준.”

“성철이?”

 

민석이가 하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2년 전, 결혼, 그리고 성철이.


“근데… 그 결혼식에 너는 안 왔으면 한다. 네가 오면 불편해할 사람도 많고…너, 성철이 결혼한 거 알고 있어? 걔가 너한테 끝까지 결혼한다는 말 안 하는 거 보면서, 그때는 참 정 없다 싶었는데 그 이유가 뭔지…알겠네, 나도… 축하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서 축하받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래도 너랑 알고 지낸 시간이 있는데 문자나 전화로 알리기 미안해서 너 바다 오기 싫은 거 알고 있어도 직접 보면 기분 풀릴까 싶어서 왔는데 너는 여전하네. 나도 이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귓속에서 윙윙 소리가 들렸다.


성철이와 연락두절 된 지 2년이다. 그녀석과 나는 친구다. 아니, 친구였다. 고등학교 1학년 처음 만나 옆자리에 앉게 된 이후로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자연스레 친해졌고 성향도 비슷해 죽이 잘 맞았다. 졸업 후 서로 다른 대학에 가게 되면서 매일 같이 보진 못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보는 그런 사이였다. 성철인 가끔 술자리에 대학 동기를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그 중 친해진 친구가 바로 민석이다.

 

민석은 성격도 수더분하고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성격이라 낯을 가리는 나와도 쉽게 친해졌다. 첫 만남 이후에 나와 성철이가 만나는 자리에는 자연스레 민석이도 함께였다. 그 둘은 나와 대학은 다르지만, 함께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힘든 군생활 중에도 면회도 와주고 각별한 사이였다.

 

나는 군 전역을 앞두고 둘과 함께 놀러갈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전역한 뒤 고깃집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슬슬 성철과 민석이에게 여행 계획을 말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야, 우리…”

그때 성철이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나 너네한테 할 말 있다.”

 

나는 뜸들이는 성철을 보고 여자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잘 됐다.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서 같이 여행 가자고 하면 되겠다.’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나 노량진에 간다. 경찰 하려고.”

“야! 대박. 뭐 할지 결정 한 거야? 열심히 해! 너라면 할 수 있어.”

 

민석은 성철의 말을 듣자마자 격양된 목소리로 잘 됐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곤 경찰 시험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역하고 나서도 진로, 꿈, 목표는커녕 놀 생각에 들떠있기만 했다. 그런 나와 달리 성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착실히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술잔만 바라봤다. 아무 말 없는 나를 보고 성철이가 말을 걸어왔지만, 술을 연거푸 들이켤 뿐이었다.

 

성철은 군 전역 후 경찰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량진에 학원과 집까지 알아본 뒤였고, 성철은 노량진으로 떠났다. 그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철이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핑계였고, 속으로는 꿈을 찾아 도전하는 성철이를 보는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나도 더는 놀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지만, 몸만 피곤해질 뿐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집만 반복하던 나에게 민석은 토익학원이랑 취업 스터디를 다닐 생각이 있는 지 물어왔다. 하고 싶은 것이 없던 나에게 민석의 제안은 힘들기만 한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적당한 핑곗거리였고, 민석에게 바로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편의점에 취업 준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민석을 따라 토익을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스터디란 스터디에 다 가입했다.

 

학원만 다니면 모든 일이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공부 머리가 없었기에 수업에는 집중하지 못했고, 스터디에선 공부보단 그 외의 것에 더 관심이 갔다. 그 결과 수업 중에 졸다가 집에 가면 머리 썼다는 핑계로 게임 하고, 스터디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스터디원과 술을 먹었다.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지니 힘들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만 허공에 날린 셈이었다.

 

이런 나와 달리 민석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다. 공모전에 입상하고, 봉사 활동도 하면서 스펙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도전한 취업의 문턱은 나에게 너무 높았다. 그러나 민석이에겐 넘을만한 허들이었다. 그 해 민석은 대기업에 입사하고 나는 원서만 내면 붙는 유통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첫 회사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와 텃세, 그리고 무시는 일상이었다. ‘견뎌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면 하루가 끝나고 또 반복되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든 화살촉의 방향을 타인에게 향하여 쏘아대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나는 핸드폰에 떠 있는 이름을 쳐다봤다. 꽤 오랜 시간동안 벨소리가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듣는 성철의 목소리. 반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억눌려있던 무언가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막아야 되는데, 막아질 수있는 건가, 이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뭐지.”

의아한 목소리가 들리자 겨우 가다듬은 목으로 말했다.

“어, 오랜만이다. 나야…뭐 똑같지, 무슨 일이야?”

“크흠, 나 합격했어! 나 경찰 됐다고. 내가 한턱 쏠게, 민석이랑 같이 나와.”


*

 

그날도 말도 안 되는 일로 꼬투리를 잡혀 과장에게 혼난 날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날은 더 힘들게 느껴졌다. ‘만나는 날이 오늘인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을 미뤘던 터라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퇴근 후 약속한 고깃집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성철과 민석은 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다.


“어, 왔냐?”


오랜만에 본 성철은 몸집이 이전보다 더 커져 있었고, 목소리에서도 자신감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마셨다. 성철은 그런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일이 힘든가 보다. 오자마자 바로 술 마시고.”

“네가 회사원의 비애를 아냐?”

 

민석은 성철의 말에 대꾸하며 회사원의 비애를 읊조렸다. 그러나 고작 서류 복사 잘못해서 수백 장이 되는 서류를 다시 복사했다는 말에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게 민석이 겪는 회사원의 비애였다.

 

“나도 이제 편한 생활 끝이지 뭐, 힘들게 시험 붙어도 이말 저말 듣는 게 경찰인데.”

 

성철은 민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묵묵히 술만 마시며, 그 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앞이 보이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둘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 보니 세상이 빙빙 도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보고 성철이 이만 파해야겠다며, 나를 부축하려고 할 때였다. 나는 성철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세금 떼어먹으면서 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떠벌려?”

 

시끄러웠던 고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내 목소리 밖에 없었다. 술에 취해 웅얼거리는 말투 안에 담긴 날이 선 내 마음을 성철은 정확히 읽어냈다.

민석이 나를 말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악을 쓰며 소리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성철은 아무 말 없이 계산 하고 가게를 나갔다. 나는 그런 성철의 뒷모습을 보며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 붓고 테이블에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찌거기만 남아있었다. 민석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민석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저지른 치졸함을 읊조렸다. 마지막엔 내 잘못이 크니, 성철이에게 먼저 사과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술 취해서 내뱉는 말을 듣고 화를 내는 게 더 치졸한 거 아니냐.”


이 말을 끝으로 민석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성철과 어떠한 말도 나누지 못 한 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끔 민석이에게 성철의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몇 달 뒤에 민석에게 걔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성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성철은 민석에게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민석은 그 말을 아주 잘 지켰다. 지금까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이제 자신 또한 그러겠다고 말한다.

 

*

 

“성철이가 그래?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래, 그러더라. 나도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고 성철이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걔가 그러더라, 네가 변했을 리가 없다고.”


무엇이 변해야 하고, 너는 얼마만큼 나에 대해 아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민석이었다. 나는 변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내가 알던 성철이 이제는 없듯이, 그들이 알던 나도 이제 없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했다.

 

“너 결혼한다는 거, 그 결혼식에 내가 가면 안 되는 이유까지 잘 알았어. 그리고 이제 너랑 더는 마주칠 일 없다는 것까지, 축하한다고 말은 못 해주겠다.”

 

신발 속까지 들어오는 모래알을 애써 무시하며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모래사장을 빠져나갔다.

 

“야! 어디가? 태워다 줄게, 여기서 어떻게 집까지 가려고!”

 

뒤에서 민석이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민석이 없는 곳으로,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

 

바닷가를 벗어나 정처 없이 걸었다. 속이 쓰렸다. 내가 오늘 하루 먹은 건 물 몇 모금이 다였다. 낯선 곳에서 배를 움켜쥐며 떠돌고 있는 내 꼴이 웃겼다. 그 난리가 있어도 배는 고프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자동차 경적,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시끌벅적했다.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 분주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떠돌고 있었다.

바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내 인생이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는지 소리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를 세상을 향해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깜냥이 없다. 그저 침만 삼키며 편의점에 들어갔다. 안은 몇 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잡아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고 있었다. 손이 가는 대로 라면을 골라 계산 하고, 뜨거운 물을 받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여학생 둘이 무어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우산이랑 차 태워줘서 고마워, 너희 아빠 아니었으면 나 완전히 비 쫄딱 맞고 집 갈 뻔했어.”

“어? 아니야 다행히 어제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줘서 살았지, 어제 비 내리는 거 완전 무섭지 않았어? 땅 뚫리는 줄.”

“그니까, 일기 예보에는 비 내린다는 말 없어서 우산도 안 챙겼는데…비 그렇게 내리는 거 완전 처음 봤어.”

 

통화 소리, 계산하는 점원, 시끄럽게 떠들며 라면을 먹는 학생들, 그 속에서 작게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둘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 또한 그날을 기억한다. 세상을 다 쓸어버릴 기세로 내리던 비와 그 녀석과 처음으로 나눈 대화, 그 순간을 말이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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