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각양각색의 의인화된 반려견 뮤즈 - 윌리엄 웨그만 展

BEING HUMAN
글 입력 2021.08.3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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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촬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도를 만드는 것과 같다.
현실로 돌아가 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윌리엄 웨그만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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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예술가의 집착과도 같은 끈질긴 관찰의 대상이라 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는 뮤즈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예술적 동반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개념 미술, 현대 사진의 거장인 윌리엄 웨그만에게도 다양한 뮤즈가 있었는데 오늘 둘러볼 전시회는 바로 그의 반려견 뮤즈가 그 중심이다.
 
애인 관계이거나 가족·지인 간의 관계가 예술가의 뮤즈인 것은 익숙했으나 반려견 뮤즈라니, 너무나 생소했다. 그의 반려견이 뮤즈가 될 정도라면, 반려견이 예술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흥미로웠던 것은 웨그만 작품의 주제가 반려견에 그치지 않고 의인화되어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전에 잡지를 통해 윌리엄 웨그만 작품을 접한 적이 있었다.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개성 있는 옷을 입은 위풍당당한 태도의 바이마라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윌리엄 웨그만 展 를 통해 잊지 못했던 작품을 다시 눈에 담아 공백 투성이었던 예술적 궁금증을 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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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

 

 
윌리엄 웨그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 레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반려견을 모델로 한 상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매체를 확장하여 여러 마리의 바이마라너 모델을 꾸준히 프레임에 담았다.
 
그의 예술 중심에는 반려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엄선된 세트장과 의상 및 소품을 통해 입체주의 색면회화,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개념주의를 포함한 예술 사조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감에 찬 위풍당당한 태도에서부터 유약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춘 웨그만의 작품을 보면서 인간이 아닌 반려견을 모델로 정하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캐주얼 Casual,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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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Casual, 2002 © William Wegman

 

사회 각계각층의 모습을 대변하는 바이마라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품 속의 바이마라너 개는 여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마치 홀로 부유한 현대적인 집에서 살 것만 같다. 하지만 동시에 부자의 삶이 지루해 보이는 이중성을 가져 흥미롭다. 바이마라너가 착용한 빨간 목걸이, 니트, 바지의 매치는 시골 신사의 화려함과 우아함을 보여준다.
 
작품을 보는 순간 몸에 걸친 옷이 바이마라너 개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살짝 헐렁한 듯 과하지 않은 캐주얼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있다. 앞발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일상이 무료한 듯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경 Eyewea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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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Eyewear, 1994 © William Wegman

 

인간은 가면극에서 즐거움만을 보는 반면, 바이마라너들은 깊은 정신적 뿌리를 느낀다고 한다.

 
<안경>에서의 바이마라너는 인간의 눈을 가면으로 쓰고 있다. 인간이 동물 가면이 아닌, 동물이 인간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이상했다. 이런 것이 발상의 전환인 것일까. 바이마라너는 인간의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다시 말해 인간은 가면을 통해 쾌락과 즐거움만을 바라보지만 바이마라너의 정신적 예술을 강조하는 듯했다. 가면이 아닌 안경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자신을 가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구성주의 Constructivis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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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주의 Constructivism, 2014 © William Wegman

 

입체파를 떠올릴 때, 우리들 대부분은 파블로 피카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1955년 <여자와 개 Woman with Dog>를 그린 피카소는 큐브의 세계를 끊임없이 즐기는 웨그만과 그의 개들에게 커다란 조형적 영향을 끼쳤다.

 

웨그만이 주는 작품이 주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진을 설명하는 작가의 맛깔스러운 표현이다. 무엇보다도 유쾌한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작품명이 대표적이다. <구성주의>는 20세기 초 러시아 미술계를 이끈 전위적인 예술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사진에서는 마치 21세기 구성 주의자처럼 기하학적 균형을 맞추어 능숙하게 흑백 큐브를 쌓는 토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몸의 근육을 움직여 커다란 검은 사각형을 움직이려는 바이마라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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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 2000 © William Wegman

 

'환각'이라는 단어는 정신적인 방황을 일컫는다. 바이마라너의 방랑자 기질은 윌리엄 웨그만의 작품 <오늘의 심리>에서 적절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명처럼 환각은 사람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상이며, 다소 왜곡된 방식으로 욕망의 충족을 형상화하는 상상의 시나리오이다.

 
작품을 감상했을 때, 환각의 상태에서 반으로 나누어진 개의 모습이나 어둠 속에 보이는 개의 혼령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사람이 무엇에 홀린 듯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해파리나 반으로 잘린 개의 모습이 실제로 보이는 듯했다.
 
 
흘린 모양새 Cursive Displa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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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린 모양새 Cursive Display, 2013 © William Wegman

 

색면 회화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예술 운동의 한 부분이다.

 

<흘린 모양새>를 통해 색면 회화와 동시대에 발생한 미술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의 영향도 엿볼 수 있었다. 영리한 바이마라너의 모습에서 잭슨 폴록의 제스처 기법이 연상된다고 비평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쨍한 파란색 배경 속 바이마라너는 지그재그로 걸으며 나부끼는 휴지 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유독 작품 속 그림자를 유심히 감상했던 것 같다. 개성 있어 보이는 휴지 자락과 그 뒤로 거대한 바이마라너 개의 그림자를 비교해보면 제목처럼 흘린 모양새에 크게 매료될 것이다.
 
 
키 Qe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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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Qey, 2017 © William Wegman

 

바이마라너의 진지하고 무표정한 모습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시크함은 패션쇼와 광고 모델이 되기에 완벽하다. 클래식한 정장부터 캐주얼한 평상복까지 아우르며 침착하게 소화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키>에서 바이마라너는 열쇠 모양의 시그니처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다. 그의 패션쇼 활동명 또한 '키'로 작품 속에서 그는 명품 브랜드인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멋지게 소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시크함에 반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문득 인간은 자신들이 패션을 창조했다고 착각하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좌우흑백 Left Right Black Whit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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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흑백 Left Right Black White, 2015 © William Wegman

 

바이마라너의 인내와 절제는 사진 촬영 중 포즈를 취할 때도 드러난다. 인간도 취하기 어려운 자세를 바이마라너는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고 있다.

 
<좌우흑백>은 사실 왼쪽 오른쪽 각각 분리된 작품이다. 흑과 백이 나뉜 배경 속 흑과 백이 나뉜 의자에 바이마라너가 앉아있다. 사실 전시된 웨그만의 작품들을 보면 바이마라너의 자세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이마라너의 영특한 기질이 발휘된 순간이다. 작가는 말한다. 작가가 바이마라너를 훈련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라너가 다양한 포즈를 촬영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가를 훈련시켰다고 말이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는 내 안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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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려견인가?
 
이 의문을 품은 채 전시를 관람했다. 작품 설명 카드에는 주어가 모두 바이마라너 개다. 작가 입장에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뮤즈 입장에서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좌우흑백>의 경우에도, 작품 속 토퍼는 네발 달린 모던 디자인을 사랑하며, 토퍼의 사전에는 애매함이란 없다고 쓰여 있다. 마치 하나의 반려견이 아닌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된 그만의 뮤즈를 소개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웨그만 작품의 주제는 과연 반려견에 불과한 것일까?
 
작품 속 뮤즈는 검은 사각형을 움직이려고도 하며, 빨간 니트를 입고 지루한 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외에도 주부, 우주 비행사, 변호사, 성직자, 농부, 도그, 워커 등 각양각색의 의인화된 반려견 모델에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즉 웨그만의 작품은 반려견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나, 작품 전체의 구성을 통해 인간의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정해진 틀 안의 예술 사조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작가의 예술성에 단지 회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완벽한 크기, 강렬한 색상, 즉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상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즉흥적이고 우연한 순간의 포착을 작품에 담은 것. 그리고 폴라로이드의 시대가 저물자, 디지털 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새로운 매체에서도 작품의 필수 요소를 재탐구한 것은 윌리엄 웨그만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윌리엄 웨그만 특유의 연출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친 현대인들과 반려동물 가구에 웃음과 공감을 건네는 힐링 요소가 될 것이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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