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망가자 - 물러나자 [도서]

글 입력 2021.08.2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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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언제나 완벽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쯤이야 누구라도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그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너무 잘 아는 탓인지 그걸 알면서도 반대로 행동한다.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기대에 맞서야 한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게 곧 어른이자 성인이다. 누가 정했고, 언제부터 그렇게 믿어왔는지 모를 정의에 사로잡힌 세상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이 법칙을 강요하고 어른이 될 아이들을 세뇌한다.

 

 

 

도망가자; 같이 가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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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이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아픈 만큼 내 마음도 찢어진다. 마음을 보고 만질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밖으로 꺼내서 붕대로 싸매고 싶다. 그 사람의 다친 마음을 꺼내고 내 마음을 대신 넣어주고 싶다.

 

시리도록 냉정한 이 세상은 우리가 그런 편법을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사춘기가 지난 지 한참인 내 나이에도 그의 주변을 맴도는 주변인의 처지를 벗어날 수가 없다. 고통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말을 곱씹으며 줄기는커녕 배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원망한다.


동화나 소설과는 다른 현실이라도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주변인으로서 곁을 맴도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머물러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는 셈이다. 그 고통 속에서 오롯이 혼자 외롭게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든든한 발판이 된다. 내가 쓰러지더라도 이 사람이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는 안도감은 톡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의 틈을 메꾼다. 바로 옆집의 이웃에게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각박한 사회지만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서는 나와 함께 해 줄 누군가를 바라고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힘들고 지쳐 무너질 것 같다면 그의 주변에 머물러라. 도망치고자 한다면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봐라. 어설픈 공감이나 씨알도 안 먹힐 조언 따위보다 그편이 훨씬 더 그 사람에게 도움과 위안이 된다.

 

꽉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마주한 눈에서 눈으로 건네지는 무언의 애정은 응어리진 마음을 녹이고 설움을 세상으로 끄집어낸다. 언제나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도, 내가 항상 옆에 있다는 말도 전부 전해진다.

 

 

 

도망가자; 잠깐 물러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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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붙들고 있는 일을 잠시라도 외면하거나 잠깐이라도 미루는 게, 마치 무슨 큰 죄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사람을 곧잘 본다. 과장 조금 보태서 10명 중의 8명은 그런 것 같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그래 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겠다.

 

실제로 그랬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지만 이걸 잠시라도 미룬다면 책임감 없는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나이가 됐다는 치기 어린 자만이 나를 잠시도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당신이 몇 살인지, 그 일을 몇 년을 해왔는지 따위는 하등 중요치 않다. 같은 일을 10년을 한 사람도 언제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90년을 살아 온 노인도 한 치 앞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단호히 말 하건대, 사람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나의 한쪽은 비어 있다. 나의 모든 것이 가득 찼을 때 나를 잠시 넣어두기 위한 그 빈칸은 다른 무언가로 차는 날이 없다.

 

내가 들어가는 순간에는 나를 위해 모든 공간을 할애하고, 내가 다시 나가는 순간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견고히 걸어 잠근다. 결국 인생은 내가 물러설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결코 도망가는 게 아니다. 잠시 다른 것에 눈 돌리고 쉬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 같겠지만 잠시 물러서는 것뿐이다.


1시간 동안 화면을 쳐다보고 있어도 한 문장도 못 쓸 때가 있는 반면에, 잠시 숨 돌리고 돌아와서 다시 보면 1~2분 만에 서너 문장을 쓸 때도 있다. 분명 나는 쓰고 있던 글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보다 나은 글을 썼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잠시 물러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글로부터 도망쳐 나에게로 와 나를 잠시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나로부터 도망쳐 글에게로 갔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 결국 돌아온다. 아무리 도망쳐도 할 일은 잊지 않는다. 잊어버린다면 정말 도망치는 도망자가 되겠지만 잊지 않는다면 그저 잠시 물러나는 것뿐이다. 살포시 손을 건네며 ‘잠깐 물러나 있자. 같이 다시 돌아오자’라는 짧은 한마디를 내뱉으면 될 일이다.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잠시 잊어도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와 당신의 그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같이 도망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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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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