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기적인 인간이 슬픔을 공부하며 [영화/도서]

영화 <킬링 디어>와 도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글 입력 2021.08.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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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링 디어>의 주인공인 스티븐 머피는 외과 의사이다. 그의 아내 역시 의사이며, 딸 킴, 아들 밥과 함께하는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성공한 스티븐의 시점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마틴인데, 초반에는 스티븐이 선물을 주는 친밀한 사이인 듯 보인다. 그러나 연락도 없이 찾아오면 스티븐이 당혹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가족으로 보긴 어려워 보이며, 스티븐은 마틴을 향해 언제까지나 내외적 친밀감만을 보인다.


마틴은 스티븐이 수술을 맡았던 환자의 아들로, 그는 스티븐의 결함이기도 하다. (물론 스티븐의 시점에서 말이다) 왜냐면 마틴의 아빠였던 한 환자가 스티븐이 집도한 수술 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술을 마신 채로 수술을 했다. 자신의 잘못이 마음에 걸렸고, 마음에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마틴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간다.


스티븐은 어느 정도의 유대 관계만 유지하길 원했을지 모른다. 마치 자신의 결점을 알면서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깊숙이 묻고 사는 보통의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틴이 미리 연락하지 않고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온 것에 당황하고, 그는 꼭 연락하고 만나자는 말을 반복하며(수술이나 병원에 없으면 못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핑계), 둘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속이면서까지 마틴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더 나아가 마틴의 가족에서 가장의 역할이 되는 것이 불편했는지, 점점 마틴을 피한다.


스티븐은 마틴의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했으니, 이제 마틴이 심판을 내린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스티븐에게 주는 것이다. 마틴은 그의 아들 밥, 딸 킴, 아내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죽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스티븐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죽는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은 1단계 사지 마비, 2단계 거식증, 3단계 눈 출혈, 4단계 사망이다.


스티븐은 처음에 이를 부정하듯 2단계 거식증의 단계로 들어간 아들에게 도넛을 먹이려고 하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다는 듯, 딸마저 같은 증세를 보인다. 처음에는 일상과 똑같이 지내고, 의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려 하며 문제를 회피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인이 되어 시작된 일임을 부정하고 오히려 마틴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나중에는 집 밖에서 울면서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 후, 결국 최대한 회피하는 방법으로 가장은 자신과 가족의 눈을 가리고 누굴 향할지 모르는 총을 겨누며 가족 중 한 명을 죽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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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생존이 먼저다. 마치 스티븐의 직업이 외과 의사여서 심장 수술을 통해 심장이 힘차게 뛰도록 하듯, 나도 나의 뛰는 심장에 응하듯이 내 생존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죽어야 이 악몽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가족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스티븐에게 아첨을 떨기 시작한다. 그의 아내는 가장 이성적 선택으로서 둘 중 하나를 죽인 후, 다시 낳으면 된다는 대책을 제시한다. 스티븐의 딸이면서 아들의 누나인 킴은 동생에게 너를 모두 사랑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과 네가 죽고 나면 MP3를 가져도 되냐는 말을 지껄인다. 가장 가까우면서 의지할 가족임에도,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엄마로선 자식이었고, 누나로서는 동생이었다.


가족의 구성원 중 가장 어린아이인 밥은 평소 자신의 긴 머리를 맘에 들지 않아 하던 아빠가 마음에 들어 하도록 자신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아빠가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자는 말에 자신에게는 비밀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화초에 물 주기를 귀찮아했지만, 이제부터는 화초에 물을 잘 주겠다고 한다. 앞으로 더 좋은 아들이 될 것을 약속하며 자신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듯이 더욱 무결하고 어리숙한 존재로 만든다.


가족들이 점차 아픔을 겪으며 죽음에 가까워지자 결국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하는 날이 찾아온다. 스티븐은 눈을 가리고 총 세 발을 발사하는데, 첫발은 딸의 뒤에 위치한 전등을 깨뜨린다. 첫발의 실패를 확인한 후 두 번째 총알은 아내의 뒤를 향해서 날아간다. 두 번째 역시 실패하자 눈을 가린 채로 다시 한 발을 쏘게 되는데, 누굴 향할지 몰랐던 총이 이번에는 아들을 향해 정확히 조준됐고, 가엾게도 이는 성공한다. 스티븐은 이제서야 상실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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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은 스티븐의 가족에게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하며 마치 신과 같은 태도를 지닌다.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공평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죽음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방법을 취하며 상실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결국 결과론적으로는 스티븐 역시 상실을 경험했다. 마틴은 일방적인 하나의 상실을 경험했고, 스티븐은 누구를 잃을 것인가를 고르도록 하는 더욱 고통스러운 상실이었을까. 그래서 스티븐에게 경험으로부터 앎을 제시하려는 마틴의 방법은 성공했는가.


가족을 잃는 가장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 역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복합적인 감정을 아픔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에도 마음이 무겁다. 나아가 스티븐은 가족을 잃는 선택을 누군가에게 위탁하지 않고 온전히 껴안아야 했다. 가족이 점점 죽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서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마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틴이 경험한 상실의 고통은 이 영화의 시간 흐름 이전의 배경이었기에, 자세히 서술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생각조차 못 했다. 갑작스럽게 한 가족의 가장을 잃었을 슬픔은 추측할 생각마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둘의 고통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먼저 마틴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 마틴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전제하지 않고 영화에서 제시한 내용만을 가지고 스티븐의 고통의 크기가 클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신중히 기억해야 할 것은 마틴에게 스티븐은 가해자다.


스티븐은 술을 먹고 수술을 한 것이 직접적 사인이 아니며, 이것은 의료 과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그가 술을 먹은 후 수술을 했는데 그 결과가 환자의 죽음이었던 것은 명백하게 그가 잘못한 것이다. 의료 과정에서 실수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고, 한 가정의 가장을 앗아가는 데 기여했으니, 그가 대신 가장의 역할을 수행해 주는 것은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스티븐의 노력은 겨우 시계를 주고 강변이나 카페에서 가끔 만나는 것뿐이었다. 마틴이 스티븐의 삶에 발을 뻗어보려고 시도하면 스티븐은 이에 대해 완강히 거부했다. 당연히 마틴은 그가 자신을 불편해하는 기색을 눈치챈다. 스티븐도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이에 마틴도 보답하듯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이어서 마틴은 스티븐의 결점을 다각도로 확장하는데, 아빠가 생전에 좋아했던 영화를 같이 보거나 마틴의 엄마가 스티븐의 손에 키스하며 스티븐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족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한다. 스티븐은 이런 노력의 수행이 불편했는지 마틴과 만남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피한다.


마틴이 상실을 알려주기 위해 시도를 했고, 상실의 경험만을 따지자면 결과는 성공했다. 그러나 배움의 결과로서 성공했을까. 스티븐은 계속 마틴의 탓으로 돌렸다. 마지막의 차가우면서 공허한 눈빛은 아직도 마틴을 탓하는 듯하다. 마틴이 원하던 상실을 배웠다면, 적어도 그런 눈빛은 아니지 않았을까. 스티븐의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를 제물은 그의 아들이었다. 가여운 아들이 아빠의 잘못을 덮어씌웠으며, 자신의 환자의 죽음에 책임을 면하게 될 뿐이다. 결국에는 제 아들의 죽음에서도 배우지 못한 아빠다.


마틴에게 스티븐은 가해자이다. 자신의 아빠의 죽음에 동조했으니, 상실을 비유적으로 알려주기 위한 마틴의 노력에도 다시 마틴의 탓으로 돌렸기에, 더욱더 철저한 가해자이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사람은 자신의 슬픔에 예민하지만, 타인의 슬픔에는 그러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결함이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자신의 결함이 마틴이라고 착각했다. 결국 그의 결함은 자기 자신이었다. 나 역시 다른 이의 슬픔을 온전히 공감하진 못한다. 그래도 생존을 위해서 나라는 결함을 껴안고 살아야 하므로, 적어도 스티븐처럼, 잘못한 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므로 평생 타인의 슬픔을 배워야 할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는 ‘당신의 지겨운 슬픔’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겨운 슬픔’은 가슴 아프게 무참히 느껴진다. 남에게 고통이 되었을 슬픔이 지겹다는 표현을 하는 것만큼 이기적인 일이 없다. 그걸 내가 무엇이라고 제삼자의 입장인 내가 판단하나. 상대방의 슬픔이 반복되는 메커니즘을 내가 얼마나 경험했다고 그것을 지겹다고 말하나. 설상 아무리 반복되더라도 지겹다고는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을 새기며, 지겨운 슬픔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타인의 슬픔에 감각적이길 바란다.


슬픔을 공부하기는 자신이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 적합하리라 추측했으나, 정확히 똑같은 고통을 측량할 수 없기에 온전한 고통을 느낄 수는 없다. 한낱 이기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타인의 슬픔을 느끼는 방법은 슬픔을 공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말을 전제하나, 이 결말에 이끌려 슬픔을 공부하는 것이 무기력해지면 안 된다. 이기적인 나는 타인의 슬픔에 조금 다가가 보기 위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보고, 짧은 글을 남겨보며 슬픔에 대한 오늘의 공부를 마친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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