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 - 지수가 누구야 × 신의 보물 [공연]

웃기고 싶을 때 웃길 수 있다면
글 입력 2021.08.1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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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퍽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 신기하게도 뮤지컬, 연극, 웹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한 특이한 경험이 있다. 뮤지컬은 교내 창작 뮤지컬 동아리에서 했지만, 연극과 웹드라마는 기성 팀의 정식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것이다. 덕분에 상연될 연극, 상영될 영상 하나가 완성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지를 꽤 가까이서 지켜봤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관객에게서 작가가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 손을 떠나는 순간 관객에게 오롯이 평가와 감상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서사가 있는 공연 예술, 뮤지컬과 연극은 배우의 연기와 대사만으로 2시간 이상을 상연하므로 중간에 유머 코드가 담긴 대사나 상황을 집어넣는데, 코미디를 넣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필자가 무대에 올라갔을 때 웃음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부분에서 묵묵부답이거나, 반대로 평범한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보가 터져 연기의 흐름이 끊기며 당황한 적이 있다. 여기에 관객이 ‘아~ 이 장면은 웃기려고 의도한 장면이구나’하고 웃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끄덕한다면? 각본가와 연출가에게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8월 7일에 공연했던 ‘지수가 누구야’, ‘신의 보물’ 두 편의 연극은 탁월한 연출이 관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극에 몰입하는 데에 하등의 문제가 없도록 도와주었다. 극을 만드는 사람에게 웃기고 싶을 때 웃길 수 있는 것만큼, 어렵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임무도 없다. 관객을 극으로 끌어들인 후, 극의 흐름과 등장인물의 감정 상태를 켜켜이 쌓다가 절정에서 폭발시킬 때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극장을 나오며 연출가의 이름을 기억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찾기 위해서다.

 


웹전단 위 지수가 누구야.jpg


 

“얘가 걔야?”

“아니, 얘는 걔는 아니야.”

“얘가 걔라니까?”

“얘가 얘야!”

“얘가 걔였어?”

“얘가 얘고, 걔가 걔야.”

 

 

정보를 전혀 주지 않은 채, 어떻게 외웠는지 모를 비슷한 문장 구조의 대사가 반복된다. 한바탕 객석에 웃음이 터지고, 그렇게 연극 ‘지수가 누구야’가 시작된다. 지수는 ‘그런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지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은 시험 범위를 알려주라며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지수가 아르바이트한다고 알려진 피자 가게 근처로 가며, 친구(사실 그렇게 친하지 않고 단지 같은 반 ‘지인’ 정도일지도 모른다)들은 지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소시지를 싫어한다, 하리보 젤리를 가득 쌓아놓고 먹는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예민하다... 각자가 알고 있는 지수의 이미지를 늘어놓지만, 이 모든 걸 조합해도 지수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지수를 알기 위해 정보가 더 필요할 수도 있고, 상충하는 정보부터 정리해나가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이 모든 정보가 지금은 바뀌었거나, 처음부터 거짓이었을 수도 있다.


이 극에 출연한 김관희 배우는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봤을 때 낯선 순간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나는 지금과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요. (중략) 내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려고 하진 않았는지, 잘 안다고 섣불리 행동하진 않았는지요’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안다고 하여도, 그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오래 알게 된 친구에게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접할 때마다 ‘그 사람이 변했네’, ‘초심을 잃었네’라며 기존에 알고 있던 친구의 이미지와 비교하여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기존에 ‘안다고 믿었던’ 친구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방식대로 머릿속에서 편집되고 취사 선택되어 기억으로 저장된 것은 아닐까. 애초에 거짓이었거나, 친구를 만난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서로 만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났을, 내가 모르는 일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을 안다는 이유로 함부로, 가볍게 대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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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주변의 여러 등장인물을 폐품을 활용하여 나타낸 무대 미술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상징성을 담고 있는 함축적인 소품보다 더 직관적이고 눈에 확 띄어서 좋았다. 비닐봉지, 대걸레, 들통, 쓰레기통, 피자 박스 등의 폐품이 관객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소품으로 탈바꿈하였다. 환경을 전공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필자에게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수가 누구야’의 뒤를 이어 문산수억고등학교 학생들의 ‘신의 보물’이라는 작품이 이어졌다. 자신의 미래를 꿈에서 미리 만나게 되는 ‘푸르티도더 증후군’이 있는 주인공이 어느 날 자기 죽음을 꿈에서 만나고,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삶의 찬란함은 죽음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음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게 이야기하면, 인생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래를 위해서 지금 희생하고 죽을 듯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에세이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 아마리가 1년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 게임을 즐긴 후 죽겠다는 결심 이후 평소 같았으면 망설였을 선택에 과감히 도전하듯, 필자도 하루하루를 즐겁고 후회 없이 사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재밌게 살았다.


청소년 연극이라는 타이틀이 마냥 무겁기만 할 것 같아 걱정이 컸지만, 오히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이 만든 극이기에 어른들의 굳은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함과 유쾌함을 첨가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할 기미가 안 보이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되어 허덕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고픈 메시지를 앞으로 이렇게 연극의 형태로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합동 포스터 최종.jpg

 

 

 

박대현.jpg

 

 

[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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