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을 둘러싼 금기의 가치 - 롤리타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8.1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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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금기는 왜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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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금기는 의미 그대로 넘지 말아야 할 견고한 벽이 되기도 하고, 집단의 결속력 혹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훌륭한 서사적 요소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 중 주목하고 싶은 분야는 서사적 요소로서의 금기의 역할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금기’가 등장하는 서사는 꼭 클라이맥스 부분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재미있다. 이는 금기라는 조건이 조성하는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금기의 내용 자체부터 금기를 수호하려는 노력, 종국에는 그것이 깨지고 마는 상황의 기저에 자리한 긴장이나 불안, 그리고 그에 따른 독자의 이입까지, 금기는 그 존재만으로 독자를 집중시키는 힘을 갖는다.

 

 

 

소설 <롤리타> 속 '어린아이'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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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흥미로운 것은 서사에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금기가 상당수 다뤄진다는 것이다. 해당 금기는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표현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린이에게 범죄를 가하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인간인 캐릭터를 살해하는 등의 범죄가 허용되는 게임 안에서도 어린이 캐릭터를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 방식을 취하면서까지 그에 대한 범죄는 금기시된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블라다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의 여파는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문제적 소재와 서사로 인해, 발매 당시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발매가 금지되었다. <롤리타>의 등장인물 험버트를 중심으로 한 서사 전반과 결말을 통해 험버트의 욕망이 결코 용인될 수 없음을 지적했음에도, 이후 작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책이 자극적인 소아 ‘포르노그래피’가 아님을 주장해야 했다.

 

한편 시인이기도 했던 나보코프는 문장으로 작품의 전반에 시적 운율감을 불어넣고, 또한 실제 시를 삽입하기도 했다. 특히 ‘롤리타’ 하면 함께 언급되는 작품의 첫 문장은 작품을 대표하는 구절이 될 정도로, <롤리타>는 <롤리타>만의 확고한 미학적 의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의 노력과 작품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금기를 다룬 소설이 앞으로도 편찬되어야 하느냐에 관한 논의는 재고해 볼 만한 문제다. 가장 큰 이유는 <롤리타>가 ‘소아’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인의 성애적 욕망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주변의 현실에서 ‘(소아)성애’,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동 성 착취 등의 모습을 띠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소설이 가진 미학적 역량이 완전하게 표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불어 당연하게도, 모든 독자가 작가의 의도대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원고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작품 해석의 몫은 독자에게로 넘어간다. 험버트라는 화자의 입에서 발화되는 소설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거쳐, 결국 작품을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은 곧 독자의 역량과도 관계된다.

 

 

 

예술을 둘러싼 금기의 가치


 

이처럼 금기로 대표되는 예술의 ‘허용 범위’에 관한 문제는 사회와 문학계의 지속적인 고민거리다. 분명 예술은 시대가 외면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터부시되는 일면에 종종 주목한다. 그러나 예술을 그것이 속한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때라도 그 자체의 고유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 자체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의 문제로,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예술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그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롤리타>가 소재로 활용한 ‘소아’라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인간’에 가해지는 폭력과 그 피해를 고려했을 때, 현시점에서 예술의 지향점과 그의 진정한 존재 목적을 간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편 앞서 언급한 대로, 금기가 존재하는 소설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이 서사적 요소로서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금기와 맞닿은 여러 아동 범죄가 발생하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막대한 현 상황에, 서사의 ‘어린아이 금기’는 깨져서는 안 될 언어 그대로의 ‘금기’로 기능해야 한다.

 

완전한 허구가 서사의 바탕이 될 때, 금기는 서사적 요소로서의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금기는 예술의 자유를 가로막는 방해 수단이 아닌,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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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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