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업 참 난감하네 [영화]

<엑시트>, 너의 잠재된 능력을 보여줘!
글 입력 2021.08.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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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이 곧이다. ‘내가 무슨 취준생이야’라는 생각으로 4학년을 시작했는데, 이젠 도망갈 구석도 없다. 막학기를 휴학할까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피성 휴학이라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한 학기를 쉬자는 게 아니라, 취준생이란 꼬리표를 반 년이라도 늦게 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건강한 휴학이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26’이라는 숫자는, 학년과 상관없이 취업을 전제하고 있어 학교를 다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막 학기를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장바구니 목록에 과목을 하나 둘 담으려고 하다 보니 들을 게 없더라. 들어야 할 건 미리 다 땡겨 들은지라 비교적 여유로웠다. 공란으로 가득한 시간표를 물끄러미 보면서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 봤다. 남들만큼 치열하게 학교를 다녔던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뭘 이렇게 많이 들어놨을까.

 

과거의 나 덕분에, 학교를 다니며 ‘취준’하기엔 여유로워졌지만, 공란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들었다.

 

 

 

이거 완전 재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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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왜 무서워하느냐. 나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 중 하나가 플랜이다. 명확한 계획이 없다. 커다란 강줄기는 있지만, 웨이포인트가 없다. 게임으로 치자면 세이브 포인트가 없는 셈이다. 어느 순간 턱 막혀버리면 돌아갈 구석도 없다.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았다기 보다는 닥치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일을 벌리고 해치워왔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야, 지정현. 학생회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기업에 한 줄이라도 쓸만한 무언가를 해!”라고 다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여튼 대학교 마지막 과제다. 떳떳하게 취업하기. 재수를 결심했을 때도 이렇게 깜깜한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어린이용 풀장에서 놀다가 다이빙 풀장에 떨어진 듯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그렇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는 하지만, 취업난이라잖아! 학점도 겨우 B+을 넘기고, 에디터 관련 직무 빼곤 아무것도 없는 내가 어떻게 취업준비를 하냐고. 징징거리고 싶지만 ‘어른이니까’.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어요. 하고 얼버무린다. 나 어른 아닌데.

 

이거 완전 재난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글쓰기가 좋으니까, 사람이 좋으니까, 대학교가 재밌으니까 하고 20살 이후 6년을 지내왔는데, 취업이라는 재난을 맞이했다. 인생의 SKIP버튼이 있다면 바로 지금 당장 누르고 싶다.

 

이런 고난과 시련은 필요 없으니까, 아침 9시에 기상해서 6시쯤 퇴근하면서 친구들에게 툴툴 거리는 일상을 살게 해주세요.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자격증 공부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채용공고도 그만 보게 하고 말입니다. 나는 아동용 풀장에서 겨우 헤엄치던 사람인데 갑자기 다이빙을 하라니.

 

이게 재난이 아니면 뭘까.

 

 

 

우리 상황이 재난이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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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3번씩이나 보는 일은 드물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굳이 시간을 내서 한번 더 보지 않는다. 처음의 감동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남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주곤, 등장인물의 이름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일도 잦다. 특정 대사와 장면, 갈등 관계는 설명해줄 수 있지만, 인물의 대사나 배우는 뚜렷이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엑시트는 3번씩이나 봤다. 작년에 2번, 최근에 1번. 이유는 용남이 처한 상황이 너무 공감이 돼서. 나도 주인공 용남처럼 막내에, 취준생에, 위로는 장성한 형제 두 명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클라이밍을 잘한다거나 신체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남들에게 ‘너 그래도 이건 잘한다’하는 것쯤 하나는 있다. 그리고 용남이 그랬듯 그게 취업에 결정적인 요인이 못 된다는 것도.

 

그렇다 보니 엑시트를 보는 내내 용남을 응원하게 된다. 영화 속 캐릭터에게 몰입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영화는 드문데. 용남이라는 인물이 주변에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더욱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당장 취준생이 되게 생긴 (이미 된 걸지도 모르지만) 현 상황에는 더욱 더.

 

취준생, 계속 되는 서류탈락,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어깨 한 번 제대로 못 편다. 그런 용남이 가족들에게 무시 받던 클라이밍 경험을 살려 재난 상황에서 가족들을, 그리고 자신을 구출한다. 영화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모두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직구로 던진다. 깊이가 없는 거 아니냐고? 가끔은 이런 대책없는 희망의 메시지도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겐 더더욱.

 

 

 

허송세월하진 않았으니까


 

대책 없는 긍정의 힘으로 취업을 극복하자는 건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다시 나의 상황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도, 플랜은 없었지만 명확한 강줄기라도 있으니까, 지난 시간이 마냥 허송세월은 아닐 것이다. 재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잔 근육 정도는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강줄기 굽이굽이마다 깃발을 꽂는 건 힘들겠지만, 해보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은 건 아닐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 시간이 만들어준 것들이 나에게 날카로운 무기가 되거나 강줄기를 헤엄쳐나갈 요령이 되지 않았을까.

 

옷장에 숨겨둔 용남의 카라비너가 재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한 것처럼, 나도 마냥 시간을 보낸 건 아닐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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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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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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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님의 카라비너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우리 상황이 재난이다! 그래도…>의 두번째 세번째 문단에 영화 제목이 빠진 문장이 있습니다. 댓글로 알려드릴까 말까 하다 남기고 가네요ㅎㅎ..
      글 편하게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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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인사이트
    • 그릇세심한 확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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