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행복하게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만큼은 나를 사랑하자
글 입력 2021.08.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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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한번 한 선택에 절대 연연하지 않는 내가 통탄해 마지않는 가장 큰 실수가 있다. 바로 남들보다 늦게 간 군대.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무 살에 간다.


독자 여러분은 ‘늦은 군대’의 애로사항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이 적은 선임한테 반말을 쓰지 못하고 명령에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점? 전역 후 대학 생활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 물론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하나의 단점이 존재한다. 친구들의 취직을 보면서 하릴없이 마냥 부러워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남자는 군대에 가잖아’, ‘그만큼 사회에서 2년 정도 늦은 건 인정해주잖아’라는 입에 발린 뻔한 위로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군대를 나오면 게을렀던 삶을 청산하고 열심히, 그러나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누리며 살리라는 결심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돌림병의 창궐로 인해 허울뿐인 목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친구들의 양복 매무새가 갖춰나가는 시점이 되었다. 2021년도 어느덧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이 경력을 쌓아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취업 준비’라는 견출지를 붙인 채 그동안 누적된 피로로 인해 오후까지 잠을 청하며 일어나지를 못했다. 이런 정신 상태로 앞으로 뭘 할 수 있겠냐는 자조가 따라붙었다.


‘대현아, 너 정신 차려야 해. 이미 늦은 마당에, 이거 힘들다고 하루 쓰러지면 그만큼 늦어지는 거야. 패배자가 되는 거라고. 너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들도 이미 사회인인데, 네가 이렇게 살면 되겠니?’ 해가 이미 지고, 책상 앞에 앉아 멍하게 하얀 벽을 쳐다본다. 생각이 서서히 바뀐다.


‘난 이미 패배한 것 아닐까?’

 

 

 

내 신발이 지나온 길


 

올해로 20대 8년 차를 지내는 나. 아직 자신에게 만족의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나는 이제까지 어떻게 지내왔을까?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8년 내내 놀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삶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하고 일찍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와는 결이 다른 저런 유형의 사람들을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달려오느라, 이제까지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정리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20대의 이력서를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력(履歷)’, 말 그대로 내 신발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도 거의 없던 나는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못 했다. 그나마 오래 앉아 있는 것에는 소질이 있어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만 죽어라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거의 모든 생활을 부모님이 챙겨주시고 공부만 하면 되었던 삶에서 벗어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걱정은 뒷전이었다. 친구들이랑 제대로 놀지도 못 하고 공부만 해야 했던 억압에서 탈출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게 우선이었다.


실제로 이력의 대부분은 공부는 내팽개치고 어떻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는지로 채워져 있었다. 보통의 대학생에게서는 찾기 힘든 특이한 이력이다. 먼저 영화제작 동아리에 들어가서 감독을 맡아 영화를 찍어본 적이 있다. 전역 이후에는 K-pop 문화 매거진 팀에 들어가서 실제 연예인을 인터뷰해보는 영광도 누려봤다.


사람들의 글을 모아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보기도 하고, 극단에서 하는 오디션에 합격해 정식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 보기도 했다. 웹드라마 출연, 팟캐스트 진행, 27번의 헌혈, 박물관 해설 봉사 등등...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은 하면서도 힘듦을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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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외의 활동에 집중하느라 다니던 학교와 전공에 대해서는 활동이 거의 없지만, 충동적으로 해 보자고 결심했던 일이 모이니 무려 세 쪽 분량의 이력서가 완성됐다. 여기에 전역 후 취업 시장에 나가기 위해 준비했던 각종 자격증과 영어 성적까지 더하니, 남부럽지 않은, 누구에게라도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는 근사한 이력서가 탄생했다. 이제 자기소개서만이 남았고,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자기소개서를 이 페이지에 풀어놓는 중이다.

 

 


언제쯤 부담감을 내려놓게 될까?



나를 사랑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보니,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입김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존재가 된다. 아마 남과 끊임없이 견주며 나를 평가하는 습관은 계속되리라.


다만 나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야 한다면, 이제부터는 후하게 매기고 싶다. 내가 가진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런 나를 나만큼은 아껴주고 싶다.


남보다 못한 나를 후회한다고 해서 당장 행동이 크게 바뀌리라고 보지 않는다. 이제까지 충실히 채워온 나의 삶은 전혀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도, 내일도 다시 오지 않을 하루를 여태껏 그래왔듯 행복하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 머리로 생각한 것이 마음을 변화시키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긍정적인 생각이 자라나지 않을까.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 글의 대표 이미지에 내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박아놓으려고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이제껏 그래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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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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