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과거의 페미니스트에게 :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글 입력 2021.08.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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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모던걸 백년사 포스터.jpg

※ 본 글의 제목은 창작뮤지컬 「모던걸 백년사」의 리플렛에서 발췌한 문구입니다.


 

여성창작집단 하이카라의 창작뮤지컬 「모던걸 백년사」를 관람하기 위해 대학로 예그린씨어터로 향했다. 「모던걸 백년사」는 2016년 5월 대학로 봄날아트홀에서 초연되었고, '2021년 서울메세나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올해 세 번째 막을 올린다.

 

「모던걸 백년사」의 작품 시놉시스와 작품 설명은 다음과 같다.


 

1920년 경성에 사는 경희는 어렸을 적 오빠의 지지로 이화학당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잡지에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모던걸'로 불린다.

 

2020년 서울에 살고 있는 화영은 성적에 맞춰 간 대학을 다니며, 주변의 성화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직 이수를 하는 중인 '착한 딸'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예쁘고 학벌 좋고 직업도 받쳐줄 테니까, 걱정없네~"라는 말이 어쩐지 불편한 화영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동아리에 연극 <인형의 집>에 참여한다.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희는 조선의 여성들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는다. <인형의 집>을 읽으며 화영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가 각각 자신들의 꿈과 사회의 요구, 비난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가고 그들의 삶이 교차된다.

 

출처 여성예술인창작단체 하이카라


 

「모던걸 백년사」는 1920년대에 동경 유학을 다녀와 세간의 화제가 된 신여성 '경희'와 2020년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진로와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여대생 '화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희와 화영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여자들'을 탓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한다. 이 작품은 두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 세상의 편견과 싸워 나가는 여정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출처 여성예술인창작단체 하이카라

 

 

무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하자면, 네모 형태의 프레임 모양 여러 개가 디자인된 벽체가 (객석 기준으로) 무대 좌측(하수), 무대 우측(상수), 무대 후면(업)에 세워져 있었다. 2층 무대였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이동이 가능하여 장면에 따라 무대 중앙에 배치되거나 무대 양 사이드에 배치되었다. 공연 중간중간 몇 차례 영상이 무대 후면(업)에 맺혔다. 조명 디자인은 뮤지컬답게 변화가 잦았다. (개인적으로는 소극장치고 꽤 많은 조명기 수가 쓰여서 좀 놀랐다.)

 

뮤지컬이다 보니 역시 뮤지컬 넘버(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모던걸 백년사」 프로그램 북에 삽입된 이진형 음악감독의 말에 따르면 1920년대 넘버는 경성의 느낌을 더욱 살리고자 재즈 느낌의 편곡을 더하였고, 현대의 넘버는 팝, 락 등 다양한 장르로 편곡하여 가사와 장면의 공감을 높이고자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넘버를 들으며 「모던걸 백년사」 작품이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작품인 만큼 과거, 즉 1920년대의 넘버는 시대적인 느낌을 더욱 살려 아예 국악풍을 중심으로 편곡 되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조선!」에서의 넘버처럼 국악의 느낌을 강하게 살리지는 않더라도, 현재 2020년이라는 시대와 대조되도록 음악적인 변화를 주었다면 관객들이 보다 더 '듣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크기변환]jam 7417.jpg


 

 

'깔끔'하게 완성되어진 작품, 그러나 안타까운 '실험성'


 

작품의 첫인상으로는 '깔끔'하게 완성된 작품이라는 거다. 대본의 구성은 위에 첨부한 시놉시스에서 드러나듯이 1920년대 과거와 2020년대 현재가 교차되는 흐름이었지만 전혀 혼동스러움이 없이 시간대의 변화가 잘 구분되었고, 사건의 맥락 또한 어렵지 않게 납득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더불어서 공연의 디자인적 요소인 조명 디자인, 무대 디자인, 영상 디자인 등도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작품 전체에 잘 녹아들었다. 뮤지컬 넘버가 나오는 타이밍도 자칫하면 과하거나 뜬금없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넘버가 나오게끔 매끄럽게 구성되어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무난하게 좋았다.

 

필자가 소극장 뮤지컬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필자가 느낀 소극장 뮤지컬은 크고 작은 실수가 가끔 나타나거나 전체적으로 어설픔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던걸 백년사」 작품은 모든 것이 정해진 약속에 맞춰 매끄럽게 공연되었고, 창작진들과 배우진들 모두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준비한 노력들이 보였다. 아마도 2016년 초연되고 꾸준히 재공연을 해오며 발전시킨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다.

 

따라서 납득이 가지 않거나 어려운 장면은 없었다. 무대 위에 그려지는 언어는 쉽고, 간략했으며, 분명했다.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 나이가 어리거나 연로한 관객들 또한 수월하게 잘 이해하며 관람할 수 있는 공연 같았다. 서승연 연출가가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것이 읽혔다.

 

다만 그래서 필자는 다소 아쉬웠다. 소극장 뮤지컬 혹은 창작 뮤지컬 특유의 '날 것'에서 오는 실험성은 부족하여 다소 안타까웠다. 대본의 구성, 배우의 연기, 그리고 디자인적인 모든 요소들은 모두 완성도가 높고 진행이 매끄러웠으나, 다소 단조롭고 심심하다고 느껴졌다. 공연을 관람하며 작품의 중반부까지는 집중하여 관람할 수 있었으나 점점 클라이막스와 결말을 맞이하게 되면서 오히려 집중력을 잃게 되었다. 이야기의 흐름과 무대 위 펼쳐지는 많은 것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관객의 집중도를 최대한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클라이막스가 힘을 잃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단조로움 때문일 것이다.

 

 

 

2021년, 변화되는 현재를 입체적으로 담지 못한 아쉬움


 

다음으로는 「모던걸 백년사」 작품이 현재 2021년에 공연되며 변혁이 빠른 현재의 페미니즘 세태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은 '왜 하필 이 공연이 현재 2021년에 올려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무대 예술 장르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받기 때문에 작품이 갖는 동시대성의 의미가 매우 크다.

 

국내에서는 페미니즘이 대중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 예술계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작품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코로나19 시국 안에서 함께 맞이한 2021년 현재에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의는 꾸준히 이곳저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혐오는 우리의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여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왔다. 여성의 일자리를 뺏는 방식으로 여성이 설 자리를 박탈하며 생계를 위협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온라인 환경 속에서 낙인을 찍어버리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일면식도 없던 여성에게 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특정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을 끊임없이 '가르치려고' 하고, '나쁜 페미니즘'과 '착한 페미니즘'을 구분 짓기도 한다. '네가 잘못된 거야'라며 교묘히 가스라이팅을 저지르기도 한다.

 

「모던걸 백년사」 작품에서는 이러한 변혁이 빠른 2021년의 혐오의 형태를 입체적이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모던걸 백년사」 프로그램 북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서승연 연출가는 작품을 한 마디로 요약할 때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과거의 페미니스트에게, 그리고 외롭게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보내는 인사'라고 밝혔다.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같이 싸우고 있는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좀 더, 현재 2021년도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감대를 사기 위해, 좀 더 사건과 인물의 입체성을 띠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작품 속 남성 캐릭터들은 주로 '남성들'로 떼를 이뤄 등장하며 이야기에서 안타고니스트로 여겨진다. 흔한 '안티 페미니즘' 캐릭터다. '망측하다'거나, '예민하다'라는 직접적인 말로 여성 주인공의 입막음을 시전한다. 작품에서는 주로 주인공 [화영]과 [경희] vs. [남성들]과 같은 대결 구도처럼 그려졌다. 이는 페미니스트와 모던걸 vs. 안티 페미니스트의 구도였다.

 

이러한 대결 구도는 어찌 보면 현실 세계보다도 온라인상에서 흑백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 2021년보다도 페미니즘이 국내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7~8년 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여성에게 칼을 꽂는 방식이 다양해졌듯이 말이다. 단순히 '페미니즘은 미친 짓이야!'라고 외치는 경우보다도 (물론 이런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애매한 방식으로 칼을 꽂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오히려 여성들이 살기 좋아진 세상인데 뭘 그리 툴툴거리냐'라는 태도나, 팔짱을 끼고 현상을 관망하며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충돌하는 상반된 두 의견 모두 다 틀렸다며 양비론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그 안에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말 못 할 공감대까지 이끄는 섬세한 작품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캐릭터와 뮤지컬 넘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던걸 백년사」 작품에서 등장한 캐릭터 중 위에서 언급한 '대결 구도'에 속하지 않는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주인공 [화영]의 엄마 역이나, 주인공 [화영]을 아끼고 지원해 주는 선배인 [김나진] 캐릭터가 그렇다. 두 캐릭터 모두 여성 캐릭터이고, 현실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는 느끼지만 그저 순응할 것을 이야기하는 여성 인물들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도 그냥 침묵할지, 아니면 용기를 낼지는 여성이라면 현실에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관객이 많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한다.

 

또한 나는 많은 뮤지컬 넘버 중에서 No.13 내 삶은(김혜린 작곡 · 서승연 작사)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사 일부를 잠시 빌려오자면, 내가 이상한가 / 나는 내 삶은 모순투성인데 / 내가 이상한가 문란한 여잔가 / 나는 내 삶은 모순투성이인데 / 라는 가사였다. 「모던걸 백년사」의 프로그램북 중 '연출과의 대화'에서 서승연 연출가가 밝혔듯,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알려주는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이 고스란히 가사로 녹아져 있는 넘버였다.

 

 

 

근본적인 딜레마와 우리 앞에 놓인 숙제들 :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의 시사점


 

창작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작품은 앞서 시놉시스에서 밝혔듯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의 상황이 교차되는 이야기 구성이다. 작품의 연출이자 작가이기도 한 서승연 연출가는 정이현 작가의 <신 김연실전>을 읽고 본인이 지금 겪는 일들이 당대의 신여성들이 겪은 일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작품을 썼다고 한다.

 

물론 지나가던 누군가는 요즘은 여성들이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며,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창작뮤지컬 「모던걸 백년사」가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면, 여성이 들었을 말들과 맞닥뜨린 상황들이 보이고, 결국 그 안에서 수 없는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을 한 명의 여성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과, 100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여전히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련의 상황들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안에서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성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그럼에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는 무수히 많은 숙제들이 놓여 있다는 것을 「모던걸 백년사」 작품은 분명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한다.

 

앞으로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작품이 공연 예술계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그 심지 역할을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가, 그리고 작품을 창작한 여성예술인창작단체 '하이카라'가 단단히 한몫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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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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