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화 같은 삶을 꿈꾼다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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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는 전도연이 1인 2역을 맡아 자기 자신(김나영)과 억척스러운 엄마 역(조연순)을 모두 해낸다는 점에서 그녀 자체에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또 그런 나영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피한 뒤 알 수 없는 힘으로 과거 부모님의 사랑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는 판타지적 요소 역시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는 그런 판타지적인 요소를 통해 현실 그 이전에 늘 존재해왔던 우리의 한때 동화적인 삶에 집중한다.
영화는 처음 남편이 빚보증을 서준 이의 장례식장에서 연순이 곡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학 등록금까지 날리게 된 상황에서 연순은 땅을 치고 울고 나영은 그런 엄마를 말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곧 화면은 트럭을 타고 이사를 하는 나영과 연순을 비춘다.
그리고 연순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학은 나중에 가면 돼. 이에 나영은 계속 이렇게 되뇐다. 대학은 나중에 가면 돼. 대학은 나중에 가면 돼.
시간은 곧 흘러 나영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남자친구 역시 생긴다. 하지만 자신과 엄마가 똑 닮았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발끈하고 자신은 지긋지긋한 현실이 싫다며 자신이 결혼할 일은 절대 없다고 말하는 나영은, 더는 아름다운 동화를 꿈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나영은 어느 날 갑자기 병든 몸을 이끌고 훌쩍 떠난 아버지를 찾아 제주도로 향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과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란 찾아볼 수 없던 두 사람이 쳐다만 봐도 쑥스러워하던 그 시절을 바라보는 나영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결말에 이르러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게 되고, 아픈 남편을 찾으러 온 연순이 그를 조금은 용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현실은 계속될 것이고 아마 그녀의 남편은 오래 살기 힘들 것이다. 또 나영에게 대학은 여전히 저 멀리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아무리 있다고 한들 결국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건 눈앞에 있는 현실 그 자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리의 삶에 남기고 간 온기는 우리 모두 한때일지라도 삶의 동화적인 순간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라는 행복한 결말은 삶에서 찾기 힘든 법이다. 신데렐라는 갑작스러운 결혼에 행복하지 않았을지 모르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어쩌면 사랑 그 이상을 원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평범한 현실에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고 그 순간들이 우리 삶에 잠시 머묾으로써 우리는 계속되는 일상 속 단잠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동화 역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도, 그래서 지긋지긋하고 더는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다고 하더라도, 그 한때의 추억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한때는 순간이지만, 기억은 영원하기에. 빛바래진 현실이라도 우리의 것들은 한때는 모두 분에 넘치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영화는 중간중간 계속해서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과거 해녀 시절의 연순을 비춘다. 그녀는 해녀가 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두 시간 가량 영화 분량 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는 어쩌면 지긋지긋한 현실마저 우리란 동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동화를 착실히 살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마저 해녀인 연순을 뜻하는 <인어공주>가 된 것은 아닐까.
[신나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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