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놀이하기 위해 [미술/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놀이하는 사물'전
글 입력 2021.07.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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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던 우리



어릴 적부터 놀이를 즐기던 추억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인형 놀이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다. 바비 인형을 사주면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고, 바비인형이 할 듯한 말을 내 마음속에서 말하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인형이 살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토이 스토리를 보고 확실해졌다.) 그러다가 인형 놀이가 질리는 순간에는 곰 인형과 바비인형을 친구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작은 인형에게 바비인형의 아들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조금 더 큰 후, 자석끼리 연결하는 장난감이 유행하며 자연스레 그 장난감을 주로 가지고 놀았고, 레고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이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 핸드폰이 놀이의 자리를 대신하며 장난감들은 장롱 깊숙이, 또는 시간이나 이사를 이유로 정리되곤 했다.


우리는 놀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커버린 나는 놀이의 가치를 잊고 살아왔다. 시간에 쫓겨 살아가기에,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을 우선해야 하므로 놀이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놀이하는 사물>에서는 놀이가 필요한 우리를 위해 다시 놀이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자 한다.


<놀이하는 사물> 전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021년 6월 10일부터 2022년 2월 27일까지 진행된다.

 

 


놀이하는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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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사물>전은 ‘제작’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창조적 놀이’를 제안한다.”

 

- 전시 서문 중

 

 

전시는 8명(팀)의 작가가 참여하는데, 작가들의 제작물과 놀이가 결합한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원형의 전시실에 가운데를 기준으로 원형으로 둘러싸인 작품들은 자유롭게 놓여있다. 섹션의 경계가 있으나 불분명하다. ‘놀이’라는 주제 안에 흩뿌려진 작품들은 어릴 적 레고 놀이를 하다가 안 치운듯한, 내가 놀이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놀이’의 중심에 서서 작품들을 더욱 자유롭게 감상했다. 같은 작품일지라도 여러 방향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로 보였다. 누군가의 장난감을 엿보는 느낌에 내가 놀이의 주체가 된 것 같은 작품들이다.


전반적 작품들의 특징은 사물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사물을 결합하거나 혹은 반복한다. 평범한 소재를 선택하고 접합한다. 사용되는 사물들은 쌓이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과 나온 결과물 모두가 작품이다. 놀이 같은 직조 짜임도 놀이이며, 직조 짜임을 위한 시간을 관객에게 전도시킨다.


처음에는 아리송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건가. 그래서 우리가 놀이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내면 물음은 허투루 지나지 못하고 매 순간에 진지해지는 내 모습과 결부한다. 좀 덜 진지해져도 된다는 것. 놀이를 주제로 한 전시에 와서까지 진지하게 파헤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전시를 연달아 두 번 감상했는데, 두 번째에는 진지함은 내려놓고 부담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 제목이 <놀이하는 사물>인만큼, 체험 부스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전시의 마지막으로 향하면, 우리에게 작은 놀이거리를 제공한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촉감 놀이책이 놓여져 있다. 한쪽은 종이질감의 책, 인조가죽 책 등 다양한 책이 놓여있다. 평소 질감을 느끼고 살지 못했던 우리에게, 혹은 다양한 질감을 느낄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던 우리에게 얼른 다양한 질감을 만져보라고 유도한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지면 안된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일까, 질감책을 다양하게 만져보기는 20년만이라서일까 적극적으로 만지기는 어색했지만, 이 생각이 무색하게 나는 모든 질감을 만졌고, 특히 너무나 부드럽던 인조 가죽책 앞에 오래 머물렀다.


풀의 까끌까끌한 느낌. 골판지의 물결 모양을 손으로 긁으며 나는 소리. 부드러운 인조 가죽의 느낌.


영유아기를 훌쩍 지난 내가 촉감놀이를 즐기는 모습. 촉감놀이도 재밌었지만 예상치 못한 나의 모습도 재밌다.


 

 

다시 놀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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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새로운 놀이의 영역을 재발견하고 다른 ‘나’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놀이와 멀어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유희에 목마른지, 놀이를 잊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 전시 서문 중

 

 

작가들은 익숙한 사물로 작품을 만들어가며 호모 루덴스의 모습을 자처한다. 정신적인 창조 활동이며, 유희하며 발달하는 인간. 놀이를 넘어 놀이의 방법을 잊은 나에게 다시 놀이하도록 제안한다. 내 삶의 모습은 다소 건조하다. 유희적으로 표현하면, 나의 삶은-삶은 계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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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사물>전의 5번 섹션에 놓인 이상민 작가의 놀이가 기억에 남는다. 사물이 기능에 맞도록 조합하여 작은 장치들을 만들었다. 호두깨는 장치와 와인 따르는 장치. 마치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장치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방과후시절 과학교실에서 만들던 기계장치를 떠올리게 한다. 추억을 떠올리고,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 떠올렸던 ‘손으로 하는게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 유희를 잊은 나의 모습이었다. 놀이를 잊은 인간은 단순해진다는 의견에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전시를 감상하며 삶이 얼마나 건조한지, 나는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실감한다.


코로나라는 상황과 맞딱뜨리고, 생활은 단편적으로 변했다. 점점 밖에서 안으로 위축됐다. 다시 유희를 찾기 위한 나의 노력은 글쓰기다. 글쓰기를 하며 내 생각과 감정을 더 자세히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소재는 주로 문화 속에서 찾는데, 문화 감상의 시간은 언제나 유쾌하기에, 나에게 글쓰기는 놀이다.


지금은 글쓰기고, 다음에는 다른 놀이로 바뀔수도, 계속 글쓰기 놀이를 할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쉴 수 있는 작은 틈을 만들길 바라며, 점점 틈을 넓혀 결국에는 일상과 놀이의 경계가 유익하게 불분명해지길 바란다.


이제 일상 속에서 놀이하는 인간이 되기위한 마음을 가져본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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