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복도 한구석에 숨긴 마음: 우리, 둘 [영화]

숨길 수 있다면 그건 마음이 아니지
글 입력 2021.07.30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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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매체마다 주인공의 법칙이 있다. 영화에서 누아르 물은 유난히 중년 남성을 앞세우고, 로맨스는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를 넘기지 않는다. 웹소설은 대개 20대 초반이다. 틀에서 벗어난 작품들이야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 태반이다.

 

그래서였다. 중년 여성들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가 궁금했다.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별개로, 여성 간의 사랑 자체는 신선하지 않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아닌가.

 

다만 노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들은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그러니까 세월을 보내면 보낼수록 아픔과 고통, 어려움과 슬픔은 무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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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니 생략된 말이 보인다. 시간은 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성장하니까.


*

 

낡은 건물의 같은 충,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마도’와 ‘니나’는 오묘하게 거리를 지킨다.

 

마도의 자식들은 그의 성 지향성을 모르고, 니나는 마도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다만 니나가 바라는 게 있다. 지금 집을 팔고 로마에 가서 자신과 함께 사는 것. 로마는 이 둘에게 특별하다. 처음으로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고, 웃음을 나누었던 장소. 처음과 마지막이 같다는 건 꽤 낭만적인 일이다.


니나는 잔뜩 들떴다. 기쁜 건 마도 또한 마찬가지다.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닐 뿐.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해받을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마도의 집으로 놀러 온 딸과 손주를 맞이한다.

 

넷이서 보내는 식사. 마도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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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마도가 혼자 짊어진 몫. 마도의 가족들이 떠나자마자 니나가 곧장 달려왔다.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을 마주하며 사실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마도는 자식들이 허락했다고 거짓말한다.


거짓말. 마도가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내렸던 선택. 아니, 선택 아닌 선택이다. 타인이 상처받을까 봐, 그리고 그 상처를 주는 게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거짓말의 결과는 우리 모두 안다. 또 다른 거짓으로 이어지다가 앞뒤가 뒤틀려 들통나거나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밝혀진다. 마도는 부동산 중개인을 길에서 우연히 만날 경우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거짓말이 드러나고, 니나는 분노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마도.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까지 주었으니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을 거다. 변화의 시작은 대개 밑바닥에서 생긴다. 이 또한 상상 못 한 밑바닥에서. 급격히 나빠진 몸 상태 때문에 마도는 입원한다.

 

니나가 제일 먼저 발견해 데려왔지만, ‘옆집 친구’일 뿐인 니나가 굳이 병원에 남아있을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마도의 딸은 감사를 표하며 니나를 집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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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목소리도, 상태도 모르고 속 타는 마음으로 마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도가 집으로 돌아온다. 간병인 ‘뮤리엘’과 함께.

 

마도의 선택이 아닌, 딸의 결정이었다. 뮤리엘은 어떻게 해서든 마도와 단둘이 있으려 하는 니나를 경계한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도가 지나친 행동이긴 했다. 한밤중에 잠긴 문을 열고 몰래 들어오는 건 범죄 아닌가.


다만 병원에 있던 내내 볼 수 없었던, 그 누구에게도 마도의 집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없었던 니나의 심정을 관객은 안다. 뮤리엘이 있기 때문에 몰래 해야하는 것이지, 마도의 집에 마도만 있었다면 니나는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라고 마도가 열쇠를 건네주지 않았나. 몰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몰래 하게 만드는 현실 때문에 니나는 이상한 사람 또는 범죄자쯤으로 비춰진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있을까 싶을 때 늘 새로운 최악이 나타난다. 마도의 딸이 둘의 관계를 알고, 마도를 어느 요양병원으로 숨겼다. 니나는마도의 집 문을 두드리고, 마도의 딸을 찾아가고, 마도의 흔적을 쫓는다. 마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몸이 안 좋아서 행동의 제약도 있고, 모두를 괴롭게 한다는 불편함도 크다. 수동적이고 유약한 마도.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던 마도. 끝에 다다라서야 마도는 한 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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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눈을 피해,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번호를 눌렀다. 나 여기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아니 말하지 않아서 니나는 그 마음을 들었다.

 

연인과 가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마도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택했다. 둘은 숨 가쁘게 도망쳐 니나의 집에 도착한다. 니나가 로마에서 마도와 살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 돈은 없다. 뮤리엘과 그의 아들의 복수였다.


니나가 뮤리엘에게 했던 방식대로다. 몰래 들어와 상황을 어질러 놓는 것. 니나가 뮤리엘에게 했던 행동은 모두 도덕적 범위에서 이해할 순 없다. 무례를 넘어선 잘못이다. 하지만 ‘애인 보러 왔다’는 그 간단한 한 마디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는 사실 또한 가벼이 여기기 어렵다. 이 처참한 결과를 거꾸로 거슬러 가보면, 둘의 관계를 숨겨야만 하는 세상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이 발을 맞추어 춤을 추던 마지막 장면과 노랫말을 기억하려 한다. 함께 살고, 함께 이야기하고, 무엇이든 함께이고 싶은 그 마음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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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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