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영화란 무엇이가 물으면 고개를 들어 로마를 보게 하라 [영화]

글 입력 2021.07.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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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업영화는 많은 관객들을 불러올 수 있는 오락성과 직관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예술영화가 흔히 담고 있는 내적 의미와 사회·철학적 메시지를 부여하기 힘들다. 그래서인가 몇 번이나 우려먹은 곰탕보다 못한 주제를 제시하는 상업영화를 오래전부터 기피하게 됐다.

 

문제의식과 고찰을 주지 않는 영화가 못난 영환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때론 깊은 생각 없이 실실거리며 영화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다만 무엇이 좋은 영화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사회와 역사를 고찰할 수 있는 영화, 존재와 삶의 무엇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 즉 ‘유의미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 예술영화가 있다.

 

상기에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이 표현했지만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는 훌륭한 영화들도 있다. 이는 영화라는 분야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그러하다. 재미와 서스펜스라는 상업적 코드를 잡으면서도 그가 던지는 사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는 감탄과 놀라움을 자아낸다. ‘칠드런 오브 맨(2006)’, ‘그래비티(2013)’ 등의 유명 작품을 제작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 2018)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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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16세기 스페인에 함락된 이래로 메스티소(중남미 원주민과 백인과의 혼혈 인종)와 원주민, 백인이 사는 혼혈 국가가 되었다. 메스티소가 60%, 원주민이 30%, 순수 백인은 10%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배적 상류계층은 백인, 피지배 하층민은 원주민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양상은 시대 배경을 1970년대로 두고 있는 영화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멕시코시티 도심부에 위치한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에 사는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중산층 백인 가족의 가정부다. 그녀는 개똥을 치우는 거부터 시작해 빨래와 청소를 하고 짐을 나르며 가족의 아이들을 돌봐준다. 백인 가족과 함께 먹고 자며 일과 삶의 경계가 없는 삶 속에서도 클레오는 웃기만 할 뿐 한 번도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묵묵히 살아가는 그녀에게 위기가 온다. 영화관에서 클레오는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전하자 영화를 보던 중 몰래 도망가 버린다. 페르민에게 버려진 클레오는 원치 않는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클레오가 가정부로 있는 백인 가족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의 남편은 해외근무를 거짓말로 잦은 외도를 하고 결국 이들은 이혼을 한다. 4명의 아이를 홀로 키우게 된 소피아는 아이들을 키워나가기 위해 본인이 원하는 일을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여성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 연대한다. 임신한 클레오를 산부인과에 데려가며 따뜻하게 보살피는 주인집 소피아, 그녀의 아이들이 생사를 오가는 위험에 처하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해낸 클레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비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여성들의 연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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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대조를 통한 상징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어쩌면 로마를 흑백영화로 만든 것부터 대조를 극대화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일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피지배층 원주민 클레오가 지배층 백인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대조적 사실부터 당시 멕시코의 사회 계급 체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또 다른 대조의 대표적 사례는 1971년 멕시코 군사정권에 의해 자행된 ‘성체 축일 대학살 사건’이 나온 시퀀스를 들 수 있겠다. 클레오는 민주투사가 총에 맞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양수가 터진다. 그녀는 소피아의 어머니와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숨을 쉬지 않고 태어난 클레오의 아이는 결국 탄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탄생을 대조시킨 이 시퀀스는 당시 멕시코 민주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에서부터 여러 장면 나오는 개똥은 쓸모가 없는 것, 성가신 것이다. 그래서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개똥은 영화 속 여성들을 닮아있다. 임신한 클레오를 두고 도망친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클레오는 싸질러진 개똥이다. 소피아와 가족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게 소피아는 성가신 개똥이다. 불행한 일들의 연속에서 그들은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은 그들의 삶을 어떠한 연민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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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시절인 1970년대를 자전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 클레오도 실제 쿠아론 감독 가족의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스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영화 로마는 그 자체로 쿠아론 감독 자신을 길러준 가정부에 대한 헌정으로 평가된다.

 

자신의 유년시절이라는 개인의 사적 이야기가 영화를 관람하는 대중에게 왔을 때 인류애적 보편타당한 가치로 전이되었다는 점, 다시 말해 원주민 가정부의 이야기에서부터 계급, 멕시코의 민주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사회 불평등까지를 영화의 러닝 타임 135분 동안 압축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힘이자 로마라는 영화의 놀라운 작품성이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아냈기에 더욱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다.

 

 

[참고문헌] 이태운, 영화콘텐츠의 예술적 상징 표현 분석연구 영화 “로마(2018)”을 중심으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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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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