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균열의 세계를 포착하는 카메라 [영화]

글 입력 2021.07.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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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욕망'하며 살아간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곧 타자(Autre)의 욕망이다. 라캉의 욕망은 동물적 본능의 욕망이나 물질적 세속 욕망의 차원을 넘어 순수 욕망의 윤리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는 우리의 욕망이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및 타인에 의해서 주입된 욕망이라고 선언한다. 헤겔의 욕망 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 정의에서 타자의 욕망이란 '타자를 욕망함'을 뜻하는 동시에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라캉은 이에 대한 근거로 인간의 의식이 크게 세 가지 차원, 즉 상상계와 상징계, 현실계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상상계에 속하는 유아기 초기를 지나면 인간은 발달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면서 서서히 상징계로 접어든다. 아동의 의식세계가 상징계로 접어들면, 주체는 점차 인간관계의 법칙에 복종하게 된다고 라캉은 말한다. 상징계는 근본적으로 타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라캉의 입장에서 인간은 욕망의 대상을 스스로 발명하지 않고, 타자로부터 지정받는 소극적 존재인 것이다.


‘욕망’이라는 용어는 욕구라는 용어와 더불어 많이 사용된다. 『표준국어 대사전』에서도 욕망과 욕구를 결핍과 관련된 용어로서 유사한 낱말로 보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욕망, 욕구라는 용어는 흔히 혼용된다. 때때로 욕망과 욕구가 구별되어 욕구는 생리적인 차원, 욕망은 정신적인 차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거꾸로 욕구가 정신적인 차원, 욕망은 생리적인 차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금욕주의를 탈피한 20세기의 욕망 담론에서 라캉, 들뢰즈, 지라르와 같은 사상가들은 헤겔처럼 욕망과 욕구를 확실히 구분하고 욕망을 욕구보다 더욱 높은 개념으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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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측면에서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라캉의 욕망 개념에 따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거나 (욕망보다 하위 개념으로서) 무언의 대상을 욕구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두 영화는 이와 정반대의 선상에서 주체의 욕망을 좇는 이들 – 라캉이 거부했던 욕망의 주체화 – 역시 전면으로 내세움으로써 거듭된 실패와 수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욕망의 주체들을 표방하고 있다.

 

타자의 욕망, 주체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들이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영화는 사소한 변화의 사건이 공동체 전체와 개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다양한 시점을 통해 묘사한다. 한편으로 영화의 세계는 연쇄작용에 따른 나비효과로 인해 계속해서 균열하고, 어긋난다. 이에 따라 주체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고 이행하던 자들은 날갯짓의 여파로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방해받는데, 영화는 주체를 욕망하는 자들의 끝없는 노력과 도전, 의지의 표상을 영화 속 카메라를 통해 담아냄으로써 결국 균열의 틈을 메우고 피어오르는 욕망의 주체들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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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학교 최고의 인기스타 키리시마가 돌연 배구부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점점 혼란에 빠지는 교내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키리시마가 누구인지, 그가 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는지 집요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소문이 퍼진 금요일 방과 후를 기점으로 그와 가까이 연결되어 있던 사회적 관계들 예컨대 키리시마가 주장으로 속해있는 배구부라든가 그의 동아리 활동이 끝날 때까지 매일 농구를 하며 기다리던 일명 '귀가부' 3인방, 그리고 여자친구 리사가 가장 먼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키리시마의 부재로부터 발생한 연쇄작용이 앞서 언급한 이들을 거쳐 그와 전혀 관계없는 (하위 계층의) 인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합주부의 사와지마와 영화부의 마에다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삼류 좀비 영화를 찍고자 학교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영화부에 조금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영화부 주장인 마에다가 지도 선생님과 의견 차이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은 일전에 영화부에서 찍었던 청춘 영화가 교외 대회에서 1차 통과되었다는 쾌거를 내세워 그의 속편에 기반한 시나리오를 거듭 강조하지만, 마에다는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 좀비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 제작비 지원도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동아리에 비해 영화부의 상황은 다소 열악하다.


제대로 된 동아리방이 갖춰져 있기는커녕 타 동아리의 창고쯤 해당하는 장소에서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영화부에 충분한 촬영 장비나 소품이 갖춰져 있을 리도 만무하다. 교내에서 하위 계층에 속하는 영화부는 학생들의 조롱이나 무시를 당하고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 일쑤지만, 주장 마에다는 “이왕이면 찍고 싶은 거 찍고 떨어지자. 그럼 후회도 안 하겠지.”라며 삼류 좀비 영화를 찍기 위해 학교 이곳저곳을 돌면서 촬영을 진행한다. 이로써 마에다를 비롯한 영화부는 타자의 욕망을 극복하고 주체의 욕망을 좇는 자들로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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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특정 인물과 단체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는 앞선 마에다와 같이 본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을 조명하면서도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들을 그리기도 하며 한편으로 욕망하지 않는 자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또래 무리 내에서 배드민턴 동아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입시 때문에 하는 거지 뭐”라고 말했어도 “사실 배드민턴 진심으로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미카, 스카우트 제의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어도 신인 선발이 끝날 때까지는 야구에 열중하고 싶다는 3학년 야구부 주장 선배, 마지막으로 사라진 키리시마의 재능과 능력에 한참 미치지 못해도 그의 대타로서 배구 연습에 최선을 다하는 코이즈미까지 이들은 마에다와 더불어 모두 주체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반대로 학교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키리시마와 연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다 높은 지위와 우월감을 획득할 수 있는 자리에 놓인 여자친구 리사의 경우나 키리시마의 친한 친구로서 교내 상위 계층에 속하는 히로키의 여자친구 사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실현하는 자들로 보이기도 한다. 한편 여자친구가 있는 히로키를 짝사랑하는 합주부의 주장 사와지마는 매일 히로키의 농구하는 모습이 보이는 옥상에서 색소폰을 연주한다.

 

이때 사와지마는 주체의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인 동시에 (히로키의 여자친구라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이기도 하다. 사나는 자신으로부터 파생된 타자의 욕망, 즉 사와지마의 욕망을 다시 한번 탐하고 이용하는 인물로서 사와지마가 히로키를 좋아하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앞에서 히로키에게 입맞춤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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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히로키가 주체의 욕망이나 타자의 욕망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욕망하지 않는 자'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히로키는 방과 후 키리시마의 동아리 활동이 끝날 때까지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명 ‘귀가부’의 일원 중 하나다. 준수한 외모에 운동 실력까지 좋아 체육 경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가 하면 그는 야구부 주장 선배로부터 종종 시합 참가 권유를 받기도 한다.

 

그런 히로키의 입에서 “결국 난 놈은 뭐든 되고, 모자란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이잖아”라는 말이 떠올랐을 때, 작품은 언뜻 대회에서 매번 패하는 야구부의 주장과, 키리시마의 공백을 결코 채울 수 없는 배구부의 코이즈미를 가리켜 능력과 재능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비관주의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가 의미 있는 것은, 줄곧 욕망하지 않던 자로 그려진 히로키가 야구부 주장 선배와 영화부 주장 마에다와 같은 욕망의 주체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기에 아름답다.

 

야구부의 유령회원임에도 영화 내내 야구부 가방을 지니고 다니는 히로키의 모습은 야구를 향한 그의 내밀한 의지와 주체성을 표상하는 것이며 결말 부 야구부 주장 선배를 향해 시합 참가 의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야구부 활동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는 것은 히로키의 욕망이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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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속 욕망의 주체는 히구라시 타카유키라는 인물로 대표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좀비 영화를 찍고 있는 촬영 현장에 갑작스럽게 ‘진짜’ 좀비 떼들이 나타나면서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리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어색할 뿐만 아니라 어딘가 조악하기까지 한 좀비 소동은 30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오케이, 컷!”이라는 말과 함께 막을 내리고, 영화는 비로소 다시 시작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촬영 한 달 전’으로 완전히 시점을 되돌린 영화의 2부는 1부에서 30여 분간 이어진 좀비 소동의 초기 기획부터 촬영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생중계 진행과 더불어 카메라 한 대로 원 테이크, 원 컷을 해내야 하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 상황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신경 쓰며 거듭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여배우 역’ 아이카부터 영화에 인종차별 요소가 담겨 있다거나 자기 의지가 없는 좀비가 어떻게 도끼를 쓸 수 있냐며 한껏 허세를 부리는 ‘남배우 역’ 카미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덜덜 떨린다며 첫 만남에서부터 거나하게 취해버린 ‘카메라맨’ 역, 정제수가 아닌 물을 마시면 배탈이 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녹음 기사’ 역, 심지어는 불륜을 벌이는 ‘감독’ 역과 ‘분장사’ 역까지 모두 무언가를 요구하고 욕구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대본 읽기부터 리허설 현장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생방송 당일, 촬영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을 리는 만무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륜을 벌이던 두 배우의 자동차 추돌사고로 인해 애초에 영화 전반을 지휘하는 역할의 타카유키 감독이 영화 속 감독 역마저 맡게 됐다. 이로써 영화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히구라시의 욕망은 욕구하고 요구하는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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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끊임없이 균열하는 세계와 어긋나는 인물의 행위 및 태도를 제시함으로써 중심인물들을 지속해서 혼란에 빠뜨린다. ‘어긋난 채’ 완성된 두 영화에서 재탄생한 좀비 영화는 주체적 욕망을 지닌 인물들의 열망과 집념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하며 균열로 인해 파생된 현장은 고스란히 카메라 속에 담기게 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후반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으로 또 한 번 옥상 촬영을 방해받는 마에다는 영화 부원들에게 “이 녀석들 전부 물어 죽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는 거야!”라고 소리친다. 그리하여 스크린 너머 카메라로 재현된 마에다의 상상 속 좀비 소동은 그의 욕망이 극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이면서 키리시마의 부재로 발생한 균열의 세계에 종착지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역시 4m 높이의 촬영을 위해 필요했던 지미집 카메라 대신 인간 지미집을 만들어 끝내 영화를 완성 시킴으로써 균열하는 세계 속 주체의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을 기어이 포착한다. 이에 따라 각 영화의 촬영 공간인 옥상과 생방송 현장은 마에다와 타카유시 감독이라는 주요 인물이 내면의 욕망을 표출하는 세계로 이어지며 그들이 붙잡은 카메라는 곧 욕망 표출의 수단이 된다. 이들은 욕망의 주체들로서 욕망하지 않던 자들이 스스로 욕망을 찾도록 돕기도 하는데, 다음은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결말 부에 등장하는 영화부 주장 마에다와 히로시의 대화 내용이다.


 

히로시: 아카데미 수상도 하나요?

마에다: 뭐, 그럴 일은 없으려나

히로시: 응?

마에다: 영화감독은 무리야

히로시: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영화를 찍는거야.

마에다: 그건 음.. 아주 가끔씩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영화감독은 무리라고 말하면서도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 촬영을 이내 포기하지 않는 마에다의 모습은 결국 영화를 사랑하고 제작하는 영화인들의 마음을 오롯이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나아가 ‘빠르고 싸고 품질은 그럭저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면서도 무수한 고비를 이겨내며 촬영을 이어가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속 히구라시 감독의 모습은 모든 영화 제작자들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로 보인다.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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