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착각의 쓸모

글 입력 2021.07.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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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적인 편이며 자기 비판적인 성향이 강하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반드시 계획을 세우고, 추후에 생길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실행하지 않는 것이 그 반증이다.

 

가끔 그 문제점과 대비책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문제가 될 때도 있는데 아직 과유불급인지 다다익선인지는 판단을 못 내렸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인생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꽃밭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는 태도는 지향해야겠지마는 늘 이런 태도만 고집하는 것도 치우친 게 아닌가 싶다.

 

현실은 언제나 잔혹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적당히 낭만에 취하거나, 착각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가끔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의례적인 말; 솔직함과 무례함의 줄다리기



가식적인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소 무례하게 느껴지더라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나 모르게 내 험담을 하거나 안 좋은 소문을 퍼 나르는 광경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을 곧바로 말하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생각을 하는 사람의 문제이지 솔직하게 표현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아니꼬운 말을 듣기 싫다고 외면하는 사람이 문제다. 안타깝게도 세상, 아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런 솔직하고 당찬 사람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거짓일지언정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더 환영한다. 쓴소리를 하더라도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사람을 반기지 직설적으로 내다 꽂는 사람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은 순간 에도 “부탁드립니다”와 “감사합니다”를 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아도 친절하고 관용적으로 굴라고 가르친다.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손님이 와도 미소를 지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당수의 기만이 인간 집단에 발을 들이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임을 직관적이고도 자동적으로 잘 안다. 또한 다른 사람 역시 그 같은 기만 행위를 하길 기대한다.

 

- <의례적인 말> 중에서

 


어떤 때는 쓴소리가 아닌 솔직한 말에도 거부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당신의 외모가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기준에서 크게 매력 없는 사람에게 매력 없다고 곧이곧대로 말한다면 갑자기 눈앞에 별이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 열에 아홉은 그날로 그 사람과의 인연이 끝난다.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받아들이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무례하거나 기분 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순간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길로 가야 한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처한 현실을 에둘러 가면서 너무 현실을 왜곡하지는 않되, 그 사람의 기분을 적당히 맞춰줄 수 있는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어렵고도 복잡한 기술에 통달한 사람을 보통 사회생활 잘한다고 말한다.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에는 답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관심 없다고 하거나 생각해본 적 없다고 하거나, 어차피 원하는 대답 들을 때까지 물어볼 게 뻔하니 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의 기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 쪽에서 이를 무례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원하는 답을 강요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게 더 무례하다고 돌려준다. 그런데도 가끔 그 무례를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한다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썩 괜찮은 핑계는 나와 당신이 누군가에게 던질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도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비즈니스 관계를 만들어 갈수록 예의상 하는 그 ‘의례적인 말’을 쓸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분명해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그냥 타협해버린다. 이런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착각한다. 그 착각마저 익숙해졌을 때쯤이면 우리는 사회생활을 통달한 어른이 된다.

 

 

 

착각; 거짓이 사실이 되는 마법



사실이 아님에도 마치 사실인 양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 부른다. 대게는 고의로 누군가를 속이려는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게 거짓말이다. 그 거짓을 말한 사람이 그 내용 자체를 사실이라 믿고 있었다면 이는 거짓말이라고 해도 될지 확실치 않다. 제 딴에는 사실이라 알고 있어 전달만 했을 뿐이다. 추후에 살펴보니 그 내용이 거짓이라고 밝혀졌다면 이건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호하다. 이 애매함의 주범이 바로 착각이다.

 

사실이 아닌 대상을 사실로 믿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끔은 사실인 것을 사실이 아니라 믿게 만들기까지 한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물어 뒤섞어버리는 게 착각이다. 그 착각에 심취하게 됐을 때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아무리 착각을 현실이라 믿어도 실제의 현실은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아이를 보호하고자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에서만 지내도록 한다면 그 아이는 되려 더욱 허약해진다. 어느 정도의 세균에는 노출되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기회를 박탈당해 아주 약한 세균도 치명적인 병균이 된다. 그렇다고 세균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그것대로 신체가 망가진다. 요컨대 적절한 수준에서 병균과 공생하며 살아야 가장 이상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착각이라는 것도 이 병균과 비슷하다. 너무 심취하면 정신이 병들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현실만 찾아도 마음이 피폐해진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착각은 용인할 필요가 있다.


착각을 자기 세뇌나 자기기만으로써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만큼 쓸모 있는 도구도 없다. 누가 보더라도 비호감일 것 같은 사람이지만 인상이 굉장히 좋다고 말한다면 대화를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다. 지나치게 긴장해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세뇌를 걸었을 때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난다. 착각이라는 병균과 이 병균이 뇌에 작용하는 여러 방식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경쟁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를 하나 얻게 되는 셈이다.


사용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쥐여 준 총은 자신을 지키지도 못 하고 되레 사고로 남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흉기지만 제대로 배운 사람에게 쥐여 준 총은 그 사람과 누군가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착각이라는 병균에 노출되어 병들어 갈지, 착각이라는 도구를 흉기로 쓸지, 혹은 착각을 적절히 이용하여 면역력을 키우고 무기로 사용할지는 이를 이해하려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태도를 견지할 때 우리는 사회에서 승리하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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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

Useful Delusions

 

지은이

샹커 베단텀, 빌 메슬러

 

옮긴이

이한이

 

가  격

18,000원

 

판  형

145*220

 

쪽  수

316쪽

 

발행일

2021년 7월 9일

 

분  야

인문

 

ISBN

979-11-91214-81-9 03180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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