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적 한 명이 어떻게 인류 모두의 적이 될 수 있는가? - 인류 모두의 적

가장 외곽의 존재가 가장 중심적인 가치를 바꾸어 놓는 과정
글 입력 2021.07.2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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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결정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어 놓는가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해적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는 것만 같지만 생각보다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이 해적 한 명이 불러오는 효과는 그저 몇 사람, 혹은 한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리고 그 잔혹함만으로 두려움에 벌벌 떨게 만들 한 불량 해적이 그어 놓은 성냥은 빠른 속도로 세상이라는 줄에 불을 붙인 후 퍼져 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책 속의 혹은 텔레비전 속의 해적 이야기를 접하며 어렴풋이 그들의 이미지를 바다 위의 무법자들 정도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들은 어떠한 제도나 법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망망대해에서 그 어떠한 범법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고, 진실인지 과장일지 모를 그들의 잔혹함에 대한 소문은 그러한 이들의 이미지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막연히 이 해적들은 육지의 사람들이 지켜온 법과 제도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해적들이 행하는 일들이 그저 바다 위에 고립되어 육지의 일과 연관이 없을 거라 여겼던 것은 나의 온전한 착각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육지위의 나라가 설립한 제도와 생활 양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교묘하고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쩌면 그들의 만들어진 막연한 이미지조차도 깊게 들여다보면 전략적으로 취한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제도가 궁극적으로 취하는 형태는 최고 기획자가 처음에 설계한 모습이 아니라, 해안선이 작은 파도에 끝없이 시달리며 형성되듯 외곽 경계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 결정된다’

 

<인류 모두의 적> 中

 


이 책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는 구절이다. 해적 한 명이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는다는 어쩌면 다소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명제가 가능함을 설명해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은 제도와 법, 나아가 한 나라가, 세계가 갖추고 있는 시스템이 최고 권위자 혹은 최초 설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상황 속 국민 개개인들의 결정, 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를 설립하고 시행하고 있는 이들의 의도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잘 짜여진 게임 속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경계적 상황에서의 예기치 않은 사건들도 충분히 세계의 핵심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로 인해 세계사의 흐름은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외곽에 존재하지만 그만큼 큰 파급력을 지닌 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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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계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수많은 개개인 중에서 왜 하필 이 책은 ‘해적’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책이 해적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집도 없을 뿐더러 그로 인한 온갖 존재론적 문제들로 고통 받지만 그렇다고 어떤 종류의 집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해적들이 어떤 연유와 배경으로 인해 바다 위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는 해적의 조상급으로 볼 수 있는 바다 민족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데, 이들은 묘사한 바와 같이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집은 단순히 먹고 생활하는 공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공동체에 가지고 있는 소속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들은 나라가, 혹은 세계가 정해 놓은 규칙과 제도 아래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의 튀어나온 못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껄끄럽게 불편한 이들은 결국 존재만으로 아니꼬운 시선을 받아야 했고 결국 바다 위로 내몰렸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해적들은 기존의 정책과 제도에 도전하며 이를 변화하기 위한 행위를 자신들도 모르게 해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제도 아래 묶인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리 없는 이들은 그것을 지키거나 유지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들만의 새로운 방식과 규칙으로 바다 위의 세상을 개척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육지 위 세계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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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세계사를 바꾸어 놓는 미약할 수 있지만 꾸준한 시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잔혹함과 무자비함에 대해 알리기 위해 육지 사람들의 미디어망에 침투하고 심지어는 그들과 협력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살인을 할 뿐만 아니라 눈뜨고 못 볼 정도의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자행한다는 그들에 대한 괴기스러운 소문은 단순한 풍문이 아니라 그들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로 인해 육지의 사람들은 해적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해적을 조우했을 때 조건 없이 항복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해적은 가장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존재 이면서도 미디어를 이용해 퍼트린 소문을 통해 누구보다 중심적인 핵심 가치와 제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충분히 세계사적으로 다루어 볼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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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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