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필리아, 햄릿에게 묻다 [영화]

사랑인가 복수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글 입력 2021.07.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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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개봉한 클레어 맥카시 감독의 '오필리아(Ophelia), 2018'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된 이야기의 화자를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로 옮겨갔다는 것으로, 감독은 영화 자체를 오필리아의 시간으로 전개해 나간다.


이는 유명 비극 햄릿의 전개를 오필리아에 집중하여 끌고 간다는 말이 아니다. 오필리아란 인물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이야기의 재해석과 시선의 변화를 관객에게 명확히 밝히고 있다. 오필리아의 보이스오버로 시작하는 영화는 라파엘 전파의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보여준 것과 동일하게, 호수 위 떠오른 오필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시작을 여는 것 또한 그러하다.


"내 이야기는 신화가 되고 역사로 남았죠(It has long passed into history ... into myth)."라는 보이스오버처럼 영화는 명백히 '오필리아'의 이야기이며 신화의 일부, 역사의 일부로 남은 기록의 재생으로서 작용한다. 햄릿 또한 오필리아가 전달하는 이야기 속 하나의 인물로서 다시금 거듭날 뿐이다. 실제로 햄릿 왕자는 영화 속 그리 많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크레딧 순서를 살필 때도 해당 배역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된 배우는 오필리아를 연기한 '데이지 리들리'이며, 그 다음 순서는 오필리아의 아역을 담당한 '미아 퀴니'다. 햄릿을 연기한 '조지 맥케이'는 크레딧 순서상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다. 햄릿을 각색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서사는 오필리아를 중심으로 했음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뚜렷하게 제시되는 셈이다.


유명 비극인 햄릿을 영화화한 시도는 예전부터 많았으나 전적으로 햄릿 속 다른 인물을 주연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충분히 신선한 시도라고 여겨진다. 그간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아마 '스벤 가데'가 감독하고 '아스타 닐센'이 연기한 1921년의 '햄릿 : 복수극(Hamlet : The Drama of Vengeance)'이 아닐까 싶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각색했다기보다 노르웨이의 전설을 각색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시도 자체는 분명 파격적이었다. 성별을 전환함으로서 햄릿이 품은 묘한 미스터리와 결함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마저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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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센이 연기한 해당 작품은 사실 여자로 태어난 햄릿이 왕자로서 자랐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더하여 햄릿은 끝내 복수마저 성공시킨다(제목부터 복수극이라고 적혀 있는 값어치를 했다). 그러나 지대한 변화 지점이 있다 할지라도 해당 영화의 주인공은 명백하다. 바로 햄릿이다. 반면 영화 오필리아는 매우 의도적으로 햄릿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하게 말해 햄릿의 탈을 쓴 또 다른 로맨스 영하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만큼 오필리아라는 캐릭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중심이 되는 것은 줄곧 오필리아다. 도서관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여자이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 사내아이들과 골목을 쏘다니다 홀로 지나가는 핀잔을 듣는 모습은 분명 그녀를 위한 전사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런 다소 불리한 경험을 겪음에도 그녀가 자신의 여성성을 높이 산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오필리아가 등장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녀는 식탁 밑에 숨어있다 선악과의 잘못을 지적하는 클로디어스의 말에 반박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오필리아를 자신의 보물로 소개하는 폴로니우스 경에게 거트루드 왕비는 그럼 보물을 닦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며 어린 오필리아를 시녀로 발탁한다. 이 과정에서 오필리아는 당당한 태도로 '오히려 남자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거트루드에게 답한다.


사내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기에 다른 대우를 받아왔던 그녀의 서사를 생각하자면 제법 신선한 반응이다. '여자이건 남자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정도의 대답이 나왔다면 다소 무난하고 심심했을 것이지만 오필리아는 되려 여자인 자신을 높이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아스타 닐센의 햄릿은 캐릭터가 가진 양면성과 수동성을 여성이라는 젠더 전환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복수의 성공으로서 여성성의 극복과 그 능동성을 언급하고자 했다. 반면 영화 오필리아의 경우 애초부터 여성으로 설정된 오필리아에게 이전과 달리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부여한다.


또한 햄릿의 의도적인 배제 역시 이 작품이 오필리아의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영화는 초반부 거트루드 왕비의 눈에 들어 시녀가 되는 오필리아의 모습과 그녀가 자라 대학에서 덴마크로 돌아온 햄릿 왕자와 만나게 되는 모습을 빠르게 제시할 뿐 그 외 햄릿의 모습은 제공하지 않는다. 어린 햄릿은 대학으로 떠나기 직전 시녀로 발탁되는 오필리아를 응시할 뿐이다. 그저 시간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온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반한 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 그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왔는지(심지어 왜 돌아오는지와 왜 다시 돌아가는지도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혹은 왕과 왕비와 어떠한 감정적 서사를 쌓아갔는지 관객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햄릿과 오필리아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리고 떠나가는 햄릿에게 오필리아가 실망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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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햄릿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햄릿은 영화상 오필리아라는 작용의 반작용으로서 작동한다. 어떻게 보자면 그는 원작보다 훨씬 수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핵심적 사건 역시 오필리아를 거쳐 햄릿에게 전달되며, 영화 속 핵심 사건의 일차적 당사자 또한 오필리아로 전환되는 탓이다. 햄릿이라는 '복수극'의 제 일 원인으로 작용하는 클로디어스의 왕위 찬탈과 거트루드 왕비와 그의 외도를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마저 햄릿의 역할이 아니며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게끔 비밀을 제공하는 이도 선왕의 유령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오필리아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비밀을 전해 듣는 이로서 등장한다.

 

애초 원작 햄릿의 시작 시점은 새로이 왕위에 오른 클로디어스의 대관식으로 그 이전의 이야기는 사건으로서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애초 햄릿은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저 아버지를 애도하며 어머니의 변심을 원망하는 인물로 그가 비밀을 알게 된 후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이후 야밤의 성곽에서 선왕의 유령을 마주한 뒤다. 그러나 영화 오필리아는 햄릿이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와중 거트루드 왕비와 클로디어스의 외도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를 최초로 목격한 인물도 오필리아이며 그녀는 거트루드 왕비를 미행하다 선왕의 유령과 마주치기도 한다. 심지어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암살했음을 제일 처음 알아차린 인물 역시 오필리아이다.

 

햄릿이란 작품을 이끌어 갔던 핵심적인 사건의 최초 목격자로서 새로이 오필리아의 역할을 부여한 셈이다. 그렇기에 영화 오필리아 속 속 햄릿은 선왕의 유령이 아닌 살아있는 오필리아의 육성을 통해 어머니의 외도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게 된다. 이 사건 이전 햄릿의 신경은 오롯이 오필리아에게 향해 있다. 그는 오필리아와 몰래 혼인하고 도망을 칠 생각마저 하지만, 오필리아에게 진실을 들은 후 '자신의 왕좌'를 도둑맞았음에 분개한다.


이 분노는 곧 햄릿을 비극적 파멸로 이끄는 새로운 원인이 된다. 그를 이끄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햄릿의 행위를 이끌던 주된 요인은 오필리아와 그녀를 향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비밀을 들은 이후 햄릿은 분노하며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자 다짐한다. 사랑을 이유로 오필리아와 함께 떠나 평화롭게 살겠다는 목표가 밀려난 것이다. 이제 햄릿의 목적은 아버지와 복수와 정당한 왕좌의 회복이며 그 작용 원인은 분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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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필리아 속 인물을 이끄는 주요한 힘, 그들의 정체성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러나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비밀을 말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원작 햄릿의 시작과 첫 대사를 생각해보자. "Who is there?",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누구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이 곧 햄릿이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 햄릿을 사랑으로 움직여가던 오필리아는 저도 모르게 햄릿에게 사랑 이후 복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이는 곧 햄릿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던 오필리아의 서사를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햄릿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점 또한 필연적인 사태이다. 줄곧 부여되어왔던 하나의 정체성을 갑작스레 부정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책임이 필요한 셈이다.


작품 속 성인이 되어 만난 오필리아와 햄릿의 대화를 생각해보자. 오필리아는 햄릿에게 '벨라도나'는 아름답지만, 독이 있음을 경고하며 외관에 속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햄릿은 어찌 아름다운 여인에게 매혹되지 않을 수 있느냐 되받아친다. 햄릿이 오필리아라는 꽃에 매혹된 순간이며,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원인과 정체성으로서 영향력을 미치는 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이 독을 만들지 않듯, 독배를 드는 것은 햄릿의 선택과 책임으로 나타난다.

 

다만 사랑이라는 '열병'이 이미 햄릿의 머리를 들끓게 만들어버렸으니 방도가 없을 뿐이다. 곧 '파토스(Pathos)'에 휘말린 것이다. 파토스는 대게 정념 혹은 일시적인 감정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인식되지만, 본래의 뜻은 이것과 꽤 다르다. 파토스의 본원적 뜻은 바로 '고통'이다. 어원을 살려 파토스의 상태를 생각해보자면 그 열정과 상황은 '고통으로 인한(혹은 동반한) 감정적 상태, 고통을 겪어내야만 하는 감정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파토스는 곧 '병'으로 작용하며 햄릿의 갈등 또한 하나의 병이 된다. 실제로 환자를 뜻하는 영어 'Patient', 인내를 뜻하는 영어 'Patience'는 모두 이 파토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참을 수밖에 없는 고통, 그러한 경험이 바로 병이며 그 과정이 인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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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병에 걸리는 순간 인간은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다. 병을 견디고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거나 혹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병은 한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필리아와의 사랑을 추동력으로 삼은 순간부터 햄릿은 결국 순응만을 허락받은 셈이다. 햄릿의 명대사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다' 역시 거트루드 왕비를 원망하는 느낌이라기보다 오필리아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느낌으로 등장한다. 더하여 여자들이 변덕스럽고 약하다는 햄릿의 주장에 오필리아는 오히려 그것이 성(sex)이 아닌 혈통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즉 당신 어머니가 약하고 변덕스러운 것이며 그 아들인 햄릿 또한 그러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변덕스럽게도 햄릿은 결국 자신을 이끌었던 오필리아의 사랑이 아닌 복수를 선택한다. 죽음을 위장한 후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필리아가 수녀원으로 도망치자고 하지만 그는 결국 복수를 선택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이라는 병이 채 낫기도 전 복수라는 새로운 병을 얻어버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치료의 기회를 그 스스로 놓아버렸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을 것이다.


영화는 결국 홀로 살아나 도망친 오필리아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누구나 떠올릴 법한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대사는 오필리아를 시작으로 영화 전체에 녹아 있다. 오필리아는 분명 사랑을 답으로써 제시했고 마지막까지 그를 고수한다. 비록 복수의 단초를 알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답은 일관적이었다. 그러나 영화 속 햄릿이 자신을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끝내 답 내리지 못한 채 고민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대답은 사랑인가, 복수인가. 답은 오필리아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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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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