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방향을 1도 틀었을 때 보이는 서양미술사 -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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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거듭하는 시대라는 무대 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퇴장하며 이어지는 한 편의 예술적 창조 이야기 ‘미술사.’ 무대 곳곳에서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일어나지만, 그 모든 것을 주목하기엔 사람의 관점은 한정적이다. 시대마다 추구된 가치와 평가에 따라 주연과 조연이 나뉘고, 그에 따라 주요 흐름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조용히 뒤로 밀려난다. 이런 한계 때문에 우린 지난 미술사에 꾸준히 시선을 보내는 것일 테다. 잊힌 미술을 다시 발견하고, 당대 왜곡된 시선을 지적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다시 살피고, 그러면서 일어나는 여러 질문과 함께 미술사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초상을 함께 성찰하면서 말이다.
그런 움직임들 사이, 도서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는 1도 다른 방향에서 미술사를 살피고자 한다. 하나의 관점은 그만이 이해하는 세계를 형성하기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는 그만큼 평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는다. 이를 위해 저자의 시선은 숨겨졌던 조연들과 그들의 예술을 조명한다. 미술사의 측면으로 여겨졌던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향에 서는 것이다.
독자는 그런 저자의 시선을 따라 새로이 모인 서양미술사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주연이 아닌 조연을 바라보고, 오늘날의 관점으로 다시 이해하는 서양미술사는 우리에게 어떤 발견과 성찰을 선사해 줄까. 씨실과 날실을 하나하나 엮어가듯 찬찬하고, 나무의 풍성한 자태를 이루는 잔가지들을 세심히 살피듯이 이어지는 서양미술사,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리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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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_허나영
[PRESS]
방향을 1도 틀었을 때 보이는 서양미술사
주연의 존재는 그 자체로 조연의 존재를 암시한다. 눈에 띄는 사건이 있다면 여러 이유로 미처 주목받지 못한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한편 이번 리뷰의 화두는 ‘미술사’이다. 미술사를 보자면, 미술이 있다면 그것을 창조한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살던 시대가 있다. 이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펼쳐졌던 미술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 미술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사람’, ‘시대’ 어느 하나 쉬이 단언할 수 없이 여러 사연 사이에서 저마다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는 다채로운 것들이다. 그러기에 잘 알려진 몇 가지 미술 이야기 주변에는 분명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조연들의 미술이 생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린 조연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술의 풍성함과 미술사의 수많은 장면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를 읽으며 그런 질문을 꺼내 보았다.
“서양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씨실로
그 사이사이 감춰졌던 조명 밖 이야기를 날실로 엮어낸,
처음 만나는 착한 미술사 수업”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미술까지 이르는 흐름을 시대 별로 크게 7개의 챕터로 나눈다. 그리고 시대마다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미술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낸다. 각 챕터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즉 주요 흐름으로 여겨진 미술사를 간략히 살피는 ‘Intro’로 시작된다. 당시 어떤 미술이 유행하고 주목받았는지, 역사적으론 어떤 사건이 미술에 영향을 끼쳤는지 유기적으로 살펴본다. 그런 후에 그들 사이에서 숨겨졌던 미술 이야기가 무엇인지 소개하며 본격적인 내용을 시작한다.
이처럼 중세는 어떤 시대보다도 철저하게 유일신 하나님을 위한 기독교 예술이 빛나던 시기다. 모든 예술품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왕과 귀족 역시 자신의 궁전이 아닌 교회를 위해 돈을 써야 했다. (...)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종교적 환경 속에서도,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과 욕망은 분명 존재했다. 그렇기에 드러나지 않은 음지에서 그런 욕망을 은근슬쩍 표현하기도 했고, 때론 기독교 예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담기도 했다.
- Intro. "중세, 신을 위한 시대"
중에서
저자는 신을 위한 미술을 창조한 시기로 알려진 중세에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던 미술을, 완벽한 표현 기술의 극치에 이르며 이상적인 미술을 펼쳤던 르네상스 시기에는 그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흑사병과 죽음에 얽힌 미술을 이야기한다. 바로크와 로코코라 불린 절대왕정을 위한 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는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지던 미술을, 오늘날엔 가장 친근한 사조이나 당대엔 혹평을 받았던 인상주의가 일어났던 19세기 말에는, 미술사에는 주 흐름으로 기록되지 못했으나 당대에는 주류로 인정받았던 아카데믹 미술을 살핀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 이에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성인이 성 세바스찬이었다. 성 세바스찬 역시 성 조지와 같이 초기 기독교 성인 중 하나로, 로마제국의 군인이었으나 기독교인이었고 투옥된 신자들을 몰래 탈출시키다가 발각이 되었다. 분노한 황제는 화살로 처형할 것을 명했고, 성 세바스찬은 광장의 나무 기둥에 묶여 사형집행인들이 쏜 화살을 맞았다. (...) 그럼에도 기적처럼,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났다. 하늘에서 날아온 수많은 화살에도 신의 가호로 다시 살아난 성 세바스찬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흑사병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성인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서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찬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 "흑사병으로부터의 구원" 중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었던 내용을 다시금 확인하고, 그들 사이에 숨겨졌던 이야기를 보다 깊이 살펴보는 미술사 수업인 것이다. 주요 흐름이 된 미술과 숨겨졌던 미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 미술들이 공존하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하고, 그런 역사 속에서 이러한 미술이 탄생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이런 미술은 비판받고 저런 미술은 수용되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예술을 인정하던 시각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본다. 도서는 이처럼 하나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사를 이루는 크고 작은 요소들의 관계를 하나하나 엮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어진다.
각각의 내용만큼이나 그것이 맞물린 관계에 주목하는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는, 그럼으로써 이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보이는 선명한 미술사의 풍경을 펼쳐낸다. 마치 우리가 잘 알던 미술 이야기 한 조각 주변에 꼭 맞물릴 수 있는 조각들을 찾아 하나하나 맞춰가듯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인 것이다.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은 만연해있다.
(...)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는 주체적인 자의식을 가진
사르키 바트만으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혹 누군가 나를 주체가 아닌 타자로,
전시할 대상으로 본다면
이에 대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259쪽
이처럼 미술사에 얽힌 무수한 사연을 발견하고 찬찬히 엮어가는 중에 함께하는 새로움이 있다. 바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미술사를 다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성찰하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왜곡된 시선으로 같은 사람을 타자로 대하던 제국주의 시기의 미술을 살피면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은 편견적인 시선을 성찰한다. 팬데믹을 겪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스페인독감이 유행한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사회적 불안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과 오늘날에도 불안을 작품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을 확인한다.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후원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지금의 우리가 더 다채로워진 미술을 어떻게 향유하고 지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지금의 우리이기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관점으로 새로운 성찰과 질문을 끌어내며 미술사와 예술을 이해하는 순간을 함께 가지는 것이다.
예술가들 역시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불안을 그림으로 종종 표현하였다. 물론 애써 외면하거나 그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부조리와 아픔을 지나치지 못한 예술가들 역시 적지 않았다. 이에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스페인독감 시기에 예술가들이 어떤 표현을 했는지 잠시 들여다보았다. 현재 당대의 작가들 역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어쩌면 미래의 후손들은 지금의 펜데믹을 해석하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이 시대를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 "스페인독감에 걸린 예술가들" 중에서
한편 엮어낸 실과 실 사이에는 또 다른 실이 들어설 수 있는 틈이 남겨지기 마련이다. 처음에 언급했듯 한 사람의 관점은 한정적이고, 그러기에 이 관점이 보는 것과 저 관점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여전히 남겨질 틈들은 저자의 관점으로 쓰인 서양미술사를 살펴본 독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새로이 채워나갈 수 있는 여백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창조되어온 미술과 그를 받아들이고 평가해온 무수한 이야기들을 지금의 우린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러면서 어떤 새로운 질문과 가치를 발견하고, 그런 발견을 통해 어떤 성찰로 나아갈 수 있을까. 추구하는 가치와 살아가는 세상의 면모가 더욱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이기에,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지난 과거에 남겨진 것들을 다시금 성찰하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사에서도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이 시대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러한 가치들이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당연하게 무시되었던 작은 것들에게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으로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 에필로그.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 중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를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의 변화는 지금껏 소외되어왔고 저평가됐던 화가와 그림들을 좀 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세상에 대한 이해와 지적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이따금 우스갯소리로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이 미술사라고 말하곤 한다. 일단 내 경험상으론 미술사는 더 많이 알 수는 있어도 완벽히 알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그들 간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며 조금씩 촘촘히 엮어가는 움직임이 미술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표현하기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중에 미술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그로부터 파생된 이해가 알게 모르게 함께 엮어지며, 미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는 내게 만족스러운 독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개인적으론 서양미술사를 전체적으로 가볍게나마 복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기대보다 더 좋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알던 것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처 주목받지 못한 것에 더 깊이 시선을 두며, 더 나아가 이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새로이 살피려는 시도가 잘 모여 엮어진 책이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그래서 미술을 더 다채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 여정에 함께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그리고 미술을 그저 아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 나아가 이를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면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를 만나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동안 몰랐던
서양미술사의 숨겨진 이야기 20가지”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지은이
허나영
쪽수
388쪽
가격
18,500원
발행일
2021년 7월 14일
출판사
타인의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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