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재즈 피아니스트의 낭만과 위트로 가득 찬 연주 [음악]

후쿠이 료의 [Scenery]와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의 [Misty]
글 입력 2021.07.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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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 Fukui


 

몇 해 전부터 시티팝 음악이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강세를 보이더니 급기야는 일본의 재즈 음악으로까지 유행의 흐름이 이어졌다.

 

물론 재즈와 비밥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의 재즈 음악만 주로 들어왔던 나는 이웃 나라인 일본의 재즈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후쿠이 료의 [Scenery]였다.


후쿠이 료는 22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다. 배움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29살이 되어서야 첫 앨범인 [Scenery](1976)를 발표했다. 그 후, 그는 직접 ‘슬로우 보트’라는 라이브 재즈 클럽을 운영하며 5개의 정규 앨범을 냈다. 그리고 2016년에 그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슬로우 보트’에서 활동한 음악들을 묶어낸 마지막 앨범이 바로 [A Letter from Slowboat](2015)다.


[A Letter from Slowboat]는 후쿠이 료의 유작이 되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유튜브의 활성화는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큰 인기를 얻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의 데뷔 앨범인 [Scenery]는 랜선을 통해 세상에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비밥 시대의 정통 재즈를 동경하는 마니아들은 새로운 재즈의 활로를 개척하게 되었다.

 

 

 

Ryo Fukui - Early Summer

지나가 버린 초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잔상


  

 

 

설익은 계절이 눈앞에 낯선 경치를 그려내듯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시작되는 곡이다.

 

눈을 감고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순간적으로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비가 오는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나 석양이 지는 교토의 고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피쉬만즈의 ‘Long Season’를 들을 때처럼 아련히 스러져가는 풍경의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는 곡이다.

     

처음엔 이 곡을 듣고 ‘Early Summer’란 곡의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첫인상은 그랬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의 초입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그런데 몇 번째고 계속 듣다보니 다른 인상이 새겨졌다. 초여름의 날씨뿐만 아니라 저녁때의 어스름과 이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구체화된 심상은 나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었다.

     

현재의 ‘나’를 이루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들은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후쿠이 료의 음악을 감상하는 총체적인 나를 형성했다. 내가 과거에 겪은 헤어짐, 태곳적 자연에 대한 신비, 낯선 여행지에서 맛본 경이로움과 숭고함. 그리고 키린지, 인디고 잼 유닛, 재즈트로닉, 빌 에반스, 듀크 엘링턴과 같은 음악가들은 이 곡을 더욱 풍부하게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물들이었다.

 

 

 

Ryo Fukui - It Could Happen to You

재즈 피아노가 전달하는 로맨틱한 위안의 메시지


 

 

 

퇴근하고 지칠 때나 일상생활에서 요행을 바랄 때 이 곡을 찾아 듣곤 했다.

 

물론 ‘It Could Happen to You’의 첫인상은  로맨틱하다는 것이었지만, 점차 위안을 얻고 싶은 순간마다 찾아 듣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이 연주한 ‘It Could Happen to You’는 클래식이었던 반면, 후쿠이 료의 ‘It Could Happen to You’는 내게 이지 리스닝이었다.


그렇지만 이지 리스닝이라고 해서 훌륭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각자의 쓰임에 맞게 음악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스탠다드 곡이라고 해서 클래식으로만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혹자에게는 후쿠이 료의 건반 터치가 감각적이지만 너무 정직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스스로 클래식을 찾아내어 들으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또 다른 스탠다드 곡인 빌 에반스의 ‘My Foolish Heart’는 후쿠이 료의 두 번째 앨범인 [Mellow Dream]에 수록되어있다. 후쿠이 료의 버전은 빌 에반스의 원곡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기교적인 부분이 의식될 만큼 뚜렷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후쿠이 료만의 청초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빌 에반스의 'My Foolish Heart'는 후쿠이 료보다 유려하며 체념적이다.

 

 

 

Tsuyoshi Yamamoto


 

빌 에반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후쿠이 료와는 달리, 츠요시 야마모토는 에롤 가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윙 스타일의 연주 기법을 사용한다거나 음들을 흩뿌리는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 등이 그렇다. 실제로 츠요시 야마모토는 일본의 유명 재즈 레이블인 'Three Blind Mice' 소속의 피아니스트로서 [Midnight Sugar]를 내놓으며 데뷔했고, 얼마 안 있어 에롤 가너의 대표곡인 ‘Misty’가 수록된 앨범을 발표했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들을 수 있는 츠요시 야마모토의 모든 음악들을 찾아 듣게 되었고, 단숨에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의 음악에선 장난기가 묻어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지만은 않았다. 에롤 가너나 듀크 엘링턴의 스윙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적인 무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내가 츠요시 야마모토와 그의 트리오의 음악에 반하게 된 또 다른 이유였다.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는 활동 초기에 [Misty] 외에도 [Midnight Sugar]나 [Blues for Tee]처럼 주옥같은 음반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섬세하면서도 힘이 있는 츠요시 야마모토의 핑거링은 그의 음악을 계속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곡에 대한 해석도 재치가 있어 듣는 재미가 있었다. 쉽게 질리지 않는 그의 음악은 내가 재즈란 장르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Tsuyoshi Yamamoto Trio - Misty

도시의 밤을 둘러싸고 있는 포근한 안개 속에서 


 

 


[Misty]라는 앨범명의 동일 타이틀곡인 ‘Misty’는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기도 하다.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피아노 건반의 첫 터치는 들을 때마다 내게 큰 울림을 안겨준다. 유약하여 희미하게 사라질 것 같은 멜로디는 끊어질 듯 안 끊어지고 계속 이어진다. 템포를 원곡에 비해 느리게 진행하고 한 음씩 아끼면서 연주한 것이 곡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드는 요소인 듯하다.

 

새벽이나 늦은 밤에 이 곡을 틀어놓고 레드 와인을 마시면 황홀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앨범의 트랙 리스트가 첫 번째 곡처럼 차분한 분위기로만 꾸려진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츠요시 야마모토의 음악에 감응할 수 있는 준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트랙을 온전히 다 감상하고 난 후에는 자연스레 앨범의 마지막 트랙까지 재즈의 흐름에 푹 빠져 몰입하게 된다.

 

 

 

Tsuyoshi Yamamoto Trio -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

레드 와인을 마시며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이 밤에 취하고.  




 

 

4,5,6번으로 이어지는 [Misty]의 트랙들은 서로 유기성이 있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트랙들은 전부 다른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이지만 츠요시 야마모토의 피아노 아래에서 통일된 분위기를 형성한다. ‘Honey Suckle Rose’에서부터 밝고 가볍게 시작해 ‘Smoke Gets in Your Eyes’에서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하다가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에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워낙 유명한 스탠다드 곡이지만, 나는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의 소니 클락 트리오 버전을 즐겨 듣곤 했다. 소니 클락 트리오만큼 츠요시 야마모토 트리오의 버전도 자주 들은 것 같지만 아무래도 더 흥이 나는 쪽은 소니 클락이다. 하이햇의 적극적인 사용과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가 지루함을 없애준다.

 

그러나 편안하게 듣고 싶을 때는 역시 츠요시 야마모토의 연주를 선호한다.

 

*

 

후쿠이 료와 츠요시 야마모토는 내가 가장 자주 즐겨 듣는 일본의 두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이번 글을 통해 후쿠이 료와 츠요시 야마모토의 커리어 초기 대표 앨범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이따금씩 이렇게 사견을 덧붙인 재즈 음악을 공유하는 글을 써 향유할 기회를 늘리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 재즈 음악의 대중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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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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