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대학생활의 끝에서 (4) 심리학 전공

글 입력 2021.07.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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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대학교에 오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대입 원서를 쓰던 5년 전 여름 무렵에는 2021년의 내가 엄청난 양의 전공 지식을 습득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었고, 어느새 나는 취업이라는 새로운 경주의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전공인 심리학과 문화산업학은 너무 적성에 잘 맞았다. 그게 문제였다. 공부하면 할수록 이 공부로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듣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내가 직접 연구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했고, 학자로서 성공하기는커녕 평범하게 강의할 자리를 따내는 것도 너무 힘들고 벅찬 일처럼 보였다.

 

그래도 흥미 본위로 선택한 전공이 잘 맞았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상경 문과 졸업생’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입학 직후부터도 이 사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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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학년이 되어 실제로 채용공고에 쓰여 있는 ‘상경 계열 우대’라는 글자를 보거나, 대학교 취업센터 상담사분께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아주 한정되어 있다는 걸 직접 듣는 것은 달랐다. 요즘 시국에야 전공에 상관없이 취업이 힘든 것은 잘 알지만, 출발선의 한참 뒤에서 출발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21년 상반기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부족했던 스펙과 자격증을 채우고, 기업의 인·적성 시험과 자기소개서에 살짝 발만 담가본 소감은, 4년간 내가 쌓아온 전공 지식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차라리 강의는 낙제를 면할 정도로만 듣고 다른 활동을 열심히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점을 챙긴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대학교는 돈을 버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고,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학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정말 내게 남은 것이 비실용적인 전문 지식과 학위뿐일까? 나는 정말 쓸모없는 ‘문송’이 되어버린 것일까?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더라도 나만은 나를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지나온 시간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무방비 상태로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전공 수업이 내게 남긴 것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논리적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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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때의 팀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주어진 심리검사 데이터를 가지고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제였다. 말이 2학년이지, 갓 1학년을 벗어나 전공필수 과목을 단 3개만 수강한 나에게는 연구 질문을 직접 만드는 것이 너무 벅찬 일이었다. 결국 1차원적인 수준의 질문만 몇 개 적어갔고, 그나마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통계 처리를 담당하기로 해서 완전한 ‘무임승차’만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학기의 팀 프로젝트는 달랐다. 배운 것 없이 졸업반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주도적으로 연구 질문을 만들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었다. 측정 가능한 지표를 활용해 연구주제에 맞는 결론을 도출할 실험 방법까지 근거를 대며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을 듣고, 논문을 읽고 단순 암기로 시험을 치르고 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시나브로 머릿속에 쌓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4년 동안 나는 연구의 배경, 가설, 연구 방법, 결과, 제언으로 이루어지는 논문의 구조를 익혔고, 실험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 어디까지인지 파악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영역을 연구하면서도 과학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했던 심리학은 엄격한 방법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방법론만을 다루는 전공필수 수업이 있기도 했고, 기초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강의가 그 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소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심리학과 학사 과정은 수많은 심리학 분야의 연구 방법론을 접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배운 방법론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 하는 일,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심리학 이론들은 그럴듯한 설명으로 설득력이 있는 하나의 주장이고,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인간은 생각 없이 행동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자 진학한 과에서, 사람들이 자신도 알지도 못하는 이유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가장 많이 배웠다. MBTI 같은 도구가 사람들의 행동을 그나마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도울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이나 습관의 산물이고, 의식적인 판단보다도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은 물리적인 경험이 사람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면접관이 따뜻한 음료를 쥐고 있으면 면접 대상자를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차가운 음료를 쥐고 있으면 차가운 사람으로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입꼬리를 올린 채 이로 볼펜을 물고 있으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나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오래 담아두고 곱씹는 성격이었기에 사람들의 무의식과 비이성적 판단에 관해 배울 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가 실은 면접관의 손에 든 음료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허무하게 느껴지나, 그만큼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피곤하게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같은 행동이라도 다른 이유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가설을 세운 후에 관찰하고 검증하는 일들을 습관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심리학과세요? 그러면 제 심리를 맞춰보세요!” 하는 짓궃은 심리학과 단골 질문에도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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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친구가 자기가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며 자신의 성격이 어떨지 맞혀보라고 했는데, 내가 그 친구가 생각하는 성격을 정확히 맞춘 적이 있어 나 자신도 놀라웠다. 그렇다고 모든 심리학과에게 이 질문을 했다가는 절교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란다. MBTI를 맞춰보라는 질문도 정중히 거절하고 싶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기업이 강조하는 ‘소통 능력’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니, 분명 관찰에서 비롯된 센스가 빛을 발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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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선택한 것에 불만이나 후회는 없다. 공부하는 동안 너무나 즐거웠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고등학교 때처럼 성실히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아쉬웠을 뿐이다.

 

‘비상경 문과생’은 사실 내가 스스로의 준비 부족을 방어하는 데 사용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무슨 전공을 하든 미래에 대한 준비와 계획이 있었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 글이 일찍이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해온 문과생들에게 괜한 불안감이나 준 것이 아닌지 약간은 걱정도 된다. 만약 그랬다면, 준비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에 쓴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또다시 새롭게 취업만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내가 쌓아온 것들을 스스로 무효화시키지는 말아야겠다 다짐해본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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