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 못 읽는 청소년'이라는 괴담

글 입력 2021.07.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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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언론과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소문이 있다. 청소년들이 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일컫는 ‘문해력’에 관한 지적이다. 문해력이라는 개념은 지난 3월 EBS에서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과 ‘문해력 테스트’가 화제에 오르면서 더욱 대두되기 시작했다. 문해력을 둘러싼 담론이 세간의 시선을 끈 이유 중 하나는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다양한 통계 자료의 대부분이 한국인의 문해력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상위에 속하는 대학 진학률과 1%에 가까운 문맹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최하위에 속한다는 것은 뜻밖의 사실이었다.

 

원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관련한 교육의 부재를 논할 필요가 부각되었고, 우려는 자연히 학생 대상으로 옮겨졌다. 청소년의 문해력을 지적하는 기사와 게시물이 쏟아졌다. 학생들이 기초적인 어휘를 몰라 말뜻을 오해하고, 영어 단어는 알아도 한국어로 뜻풀이를 하지 못해 곤혹을 느낀다는 교사들의 제보가 속속 등장했다. 문해력에 관한 우려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결부되어 전반적인 학력 수준에 대한 것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준 저하’의 원인으로 평가의 축소와 자유학기제 등 교육 정책의 변화가 만들어낸 맹점에 주목한다. 스마트폰 속 미디어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책과 멀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자율화는 공백이 되어 필요한 문해 교육을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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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해당 도표는 OECD가 회원국의 만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정보 문해력에 관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실시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은 사기성 전자우편 여부를 식별하는 평가와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평가에서 모두 최하위의 점수를 기록했다. 디지털 정보의 신뢰성과 주관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매우 낮게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해당 평가로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PISA 중 읽기 능력에 중점을 둔 평가 영역에서는 한국의 청소년이 6위로 상위권을 기록했고,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한국의 문해력 점수는 273점으로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며, 특히 청년층인 16~24세의 문해력은 4위로 최상위권에 속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한국에서 더욱 심화하여 나타나는 격차의 문제가 있지만, 노년층의 낮은 점수를 포함하고도 한국의 문해력은 전체의 중위권에 속한다. 즉, 한국인의 문해력이 낮다는 것은 ‘가짜 뉴스’에 가까우며 청소년의 전반적인 문해력은 오히려 높은 축에 속한다.

 

그렇다면 교육계와 언론에서 빗발치고 있는 청소년 문해력에 관한 우려는 허황된 기우일까? 우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증가 추세와 그것이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의 축소 경향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시험을 보지 않는 대신 진로를 탐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는 자유학기제가 오히려 사교육의 영역을 넓혀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를 늘리고 있다는 지적 역시 현장에서 숱하게 제기되고 있는 목소리다. 기존의 일률적인 척도에 국한된 평가와 서열화를 조장하는 경쟁적인 학습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시작된 교육 개혁의 움직임이 학습의 결여를 낳고 있으며, 입시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주장은 실증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소년 문해력을 의심케 하는 교육 장면 또한 필요한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여 학력 수준이 저하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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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계가 나타내듯 청소년의 문해력은 낮지 않다. 저하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조차 유의미한 통계치가 아니다. 따라서 학력 미달 학생 증가 추세와 연관하여 청소년의 지식과 학습 수준의 저하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서도 기능하지 못한다. 학생의 부족한 어휘력과 문장력에 당혹감을 느끼는 교사의 경험은 실재하지만, 한국인의 저조한 문해력을 비판하는 여론은 20년 전 보도된 기사를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으로부터 관찰되는 부족한 문해력은 최근의 교육 개혁의 움직임에 따른 부작용이라기보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학생이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OECD의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더욱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은 디지털 정보 문해력(디지털 리터러시)이다. 한국 청소년의 전반적인 문해력은 낮지 않지만 디지털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은 최하위로 나타난다. 통계에서 괄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부족이다. 조사 결과 한국의 청소년이 학교에서 인터넷 정보의 편향성을 판단하는 교육을 받은 비율과 정보의 주관성을 식별하는 교육을 받은 비율은 모두 평균 이하였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빈도가 정비례에 가까운 상관을 보이는 통계적 결과를 구성하는 일례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학교에는 사라지고 있는 평가나 시험 위주 학습의 부활보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물론 학력 저하 현상과 교육 개혁의 부작용 문제 역시 심각한 사안이며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입시와 학벌 위주의 사회 체제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험만을 없애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며 학습의 정도를 진단하고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평가의 고유한 기능마저 제거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평가를 마련하고 교육 개혁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문해력에 관한 섣부른 진단과 비약은 개혁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를 불어넣음으로써 장기적인 변화의 목표를 두고 서서히 치료해나가야 할 공교육의 상처를 은폐한다. 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소문으로만 둥둥 떠다니는 괴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지적하며 시험 위주 학습을 다시 강화할 것을 주장하는 교육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평가의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뒤바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실시된 개혁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시험의 축소가 문해력의 저하를 낳았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는 기존의 시험이 대부분 빠르고 효율적으로 키워드를 찾아내는 독해를 일률적으로 요구하며 폭넓은 문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일원적인 척도의 시험은 문해력 신장에 도움이 되는 독서와 작문의 경험을 제한한다. 스마트폰에 관한 논의를 과도한 사용에 대한 비판에 그치며 스마트폰 활용을 죄악시하는 주장은 미디어 문해 방식을 다각적으로 알려줘야 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를 외면하는 반쪽짜리 지적이다. 청소년이 긴 글을 못 읽는다는 괴담은 이렇게 변화를 가로막는 부실한 대안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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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교육자 파커 J.팔머는 많은 교사가 다치지 않은 환자만이 병원에 오기를 원하는 의사처럼 교육적으로 완성된 학생만이 학교에 오기를 바란다고 비판한다. 학교에는 당연히 부족한 학생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자라난다. 학생이 어휘를 모른다면 가르쳐주면 된다. 청소년 문해력을 둘러싼 여론이 우려되는 이유는 그것이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계기가 아닌 학습 수준이 떨어진다는 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디 진실이 규명되어 학생의 가능성을 폭넓게 상상하고 다양한 문해를 다루는 교육적 변화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고등학생의 토론 현장에 참관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교실에 놓인 전자 칠판을 활용하여 찾아온 자료를 제시하며 의견을 주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며 서로 소통하고 토론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청소년의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과는 전혀 달랐다. 그 이후로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는 소문을 잘 믿지 않는다. 대신, 어른들이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비판과 지적에 떠밀려 간과한 변화가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참고 자료


구본권, '피싱 메일 몰라?…한국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 OECD 바닥 ‘충격’', 한겨레, 2021.05.16.

송영훈, '[팩트체크] 한국인 문해력 OECD 최하위?', 뉴스톱, 2021.03.26.

신하영, '[교육계 학력쇼크]②"한글 해석본도 이해 못해"…학력붕괴 체감하는 교사들', 이데일리, 2021.06.22.

운광은, '한국인의 문해력이 나쁘다는 건 오해', 미디어스, 2020.01.16.

파커 J.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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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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