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로나가 빼앗아간 학교

글 입력 2021.07.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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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생이라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활동이 바로 교육봉사이다.

 
나는 지난 5월부터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기초학력 다지기 반의 담당 선생님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 4, 5, 6학년을 만났다. 기초학력 다지기 반은 방과 후에 추가로 결성된 반으로, 기초학력 미달인 아이들의 학력 향상을 목표로 운영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학과 국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봉사했던 초등학교는 방학이 7월 23일이어서 방학식을 하는 날까지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었지만 수도권에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등교가 중지되어 결국 2주 일찍 교육봉사가 강제로 마무리되었다. 두 달 가량 함께했던 아이들과 인사도 못 한 채 말이다.
 
3명 이상 저녁 약속을 할 수 없는 암울한 미래를 누군들 알았으랴 싶긴 하다. 아무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기라 하지만 이런 헤어짐은 슬펐다. 남은 2주 동안의 수업 계획을 짜고, 학습지를 준비해두고, 헤어질 때 아이들 각자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두 쓸모없는 게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 2개월을 돌이켜보면 처음 교육봉사를 시작할 때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스스로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작정 두려움과 긴장이 앞섰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첫인사를 건네야 할까도 몇십 번 속으로 생각했던 2개월 전이 있었다.
 
막상 아이들을 만났을 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아서 놀랐다. 키도 내 허리만큼 오고, 건들면 부러질 것 같은 얇은 팔목을 가진 아이들은 나 스스로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주목하는 사람은 나이기에, 항상 자의식 과잉 수준으로 아이들 앞에서 계산해서 행동하고 말했다.
 
3, 4, 5, 6학년 모두 내가 거쳐온 시간이지만 제법 먼 시간대라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감이 안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항상 먼저 입을 열어주었다. 나에게 옛날에 키우던 강아지 얘기부터 수영장에 가서 재밌게 놀았던 얘기, 동생과 싸웠던 이야기들을 매주 얘기해주며 자신의 세상에 초대해주었다.
 
*
 
갑작스런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전면적으로 등교가 중지되어 당황스러울 사람은 그 누구보다 당사자인 어린이들일 테다. 짧은 기간이지만 어린이들을 직접 마주하며 느낀 것은 학교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어린이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있고 싶어서 다지기 반에 친구를 데려온 3학년 s가 생각난다. 1학년 때 만난 친구 m과 3년 동안 멋진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s는 다지기 반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m과 하교한다고 했다. 1학년 때 m과 같은 반에서 게임을 했던 이야기, m의 식판을 실수로 엎어 사과했던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 눈을 반짝거렸다. s에게 서로를 배려하며 좋은 친구가 있어서 부럽다고 말하면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곤 했다. s와 m에게 학교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추억을 쌓는 공간이다.
 
3학년인데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p도 생각난다. 작년 초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으니 코로나가 없을 때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한 시간이 오직 1년뿐인 셈이다. p는 아직 10살밖에 안 되었고, 아직 가정 이외의 사회라는 곳을 겪어본 경험이 적다. 적극적으로 가족 이외의 타인과 소통해야 할 시기이고, 기본 상식과 생활 지식을 습득해야 할 나이이다. 이끌어주는 선생님과 함께 배우며 성장할 친구들 없이 혼자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할 p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외에도 문제를 풀고는 적극적으로 칠판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었던 5학년 아이들과, 문제를 미처 풀지 못한 친구에게 자기가 어려웠던 포인트를 짚어주며 풀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4학년 아이들과, 언제나 대답을 잘해주었던 6학년 아이들이 떠오른다.
 
코로나와 함께 생활해온 지 2년째,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거리두기 4단계가 되며 몸도 지치고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팍팍해져 가는 걸 느낀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단순히 건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어떤 기회들을 앗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교실에 와서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마스크를 잘 쓰고 있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시민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잠깐 내릴 때마다 물을 마셔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는 조심스럽고 철저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몇몇 이기적인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또 학교를 빼앗기고 말았다. 학교를 빼앗긴다는 것은 어린이로서 그 나이에 해야 하는 타인과의 여러 상호작용을 박탈당한다는 의미이다.
 
어른들이 당연하게 거쳐왔던 어린이 시절을 지금의 어린이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가 공적으로 말을 하기도 어려우니 어린이의 이슈는 다른 큰 뉴스들에 많이 묻히곤 한다. 사회화를 배워야 할 어린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인내하고 있는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하루빨리 어린이들이 학교 공간을 되찾아 어린이가 가진 기회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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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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