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실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 호밀밭의 파수꾼 [도서]

독자에게 선사하는 짜릿한 대리만족
글 입력 2021.07.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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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은 으레 일정한 구성으로 출판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특이하다. 표지에 추천사도, 책등에 작가의 사진도, 책날개에 작가의 이력도, 끝에 작품 해설도 일절 없다. 내지 제목 부분에, 그것도 70년 전 사진으로 글쓴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출판사의 의도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요청이었다고 한다. 본인을 되도록 밝히지 않고 오로지 작품으로 독자와 인사하고자 했던 소설가. 책이 유명해질수록 오히려 세간의 시선을 피해 점점 숨어들었던 소설가. 바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퇴학당한 소년, ‘찌질이’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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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 학교에 다니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작문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낙제점을 받아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당연히 집으로 가야 하지만, 이번이 네 번째 퇴학이기에 섣불리 집으로 가기가 꺼려진다. 친구들은 주말에 함께 놀 다른 친구 또는 애인이 있다. 급격한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며 홀든은 기숙사를 나온다.

 

이후 그는 집이 아닌 호텔을 목적지로 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본인에게 낙제점을 선사했던 스펜서 선생님, 떨쳐내기 힘든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만난 창녀 써니와 중개자인 포주 모리스, 소꿉친구 샐리,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 제인, 홀든이 전에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을 찾아간다. 그리고 술집에서 고객에게 음악을 선사하는 연주자, 극장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와도 마주한다.

 

하지만 홀든은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홀든이 기존에 긍정적으로 보고 좋아했던 사람도 막상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툭툭 걸리는 언행 하나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펜서 선생님의 집에 방문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는 둥, 인생이 파멸로 향하고 있으니 얼른 정신 차리라는 둥 예기치 못했던 잔소리 폭격을 받은 홀든은 금방이라도 구토가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허겁지겁 선생님의 집에서 나온다. 샐리와 데이트 중에는 그녀가 속물적이고 주인공의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랑 있어서 답답하다’는 식의 말을 던지고 헤어져 버린다.

 

실제로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홀든을 소위 ‘찌질이의 표본’으로 생각한다.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각은 대부분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 삐딱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세적인 시선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은 집, 학교, 친구,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다른 등장인물은 주인공이야 어떻든 삶을 무난히, 잘 살아나가고 있다.

 

누구나 확인 가능한 ‘능력의 차이’, 여기에서 비롯한 ‘나는 이런데 너는 잘나가네’하는 비교는 자격지심을 유발한다. 다음 대목에서 이것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앞으로 저 여자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 여자아이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멍청한 녀석들과 결혼을 하겠지. 언제나 자기 차가 휘발유 1갤런에 몇 마일이나 달릴 수 있다고 떠벌리곤 하는 녀석들이나, 탁구나 골프를 치다가 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는 놈들이나. 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과 짝이 되겠지. 또는 평생 가야 책 한 장도 읽지 않는 놈들에, 정말 지겹기 짝이 없는 자식들과 말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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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에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넋두리만이 실려 있다면 세계적인 명작이 되지는 못했을 터. 실제로 홀든이 끔찍이 싫어했던 것은 허위와 속물근성이었다. 다음 두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1888년 이래로 우리는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해 내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곳은 다른 학교들과 별다른 차이도 없다. 더군다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이라고는 본 적이 없다. 어쩌면 한두 명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많아야 그 정도일 것이고, 그나마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렇게 훌륭한 학생이었을 테지.

 


겉으로 보이는 지표는 그 사람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성품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높은 지위를 이용해 안 좋은 성품까지 포장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아마 후자의 경우를 보고 실망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고등학생 시절, 공부깨나 한다는 친구들의 티 나는 이기심과 그들끼리만의 리그를 만드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외려 나와 잘 맞으면서 착한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필자와 홀든의, 사람에 대한 판단은 틀렸을 수도 있다. 언제나 바른 판단만을 하는 사람은 없다.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제나 가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은, 누군가를 대할 때의 행동 규범인 ‘예의’로 표면화된다. 하지만 상대방 앞에서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속에서는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비판이 자꾸 생각나고,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끝까지 참아본 적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가식과 위선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싫어한다’는 목소리를 주인공의 입을 빌려 외친다.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선생님을 향해 ‘꼰대’라고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물론 속으로), 실속 없는 것을 추구하는 여자 친구에게 ‘속물’이라고 외친다. 충분히 사회화된, 예의에 길든 우리가 쉬이 던지지 못할 말은 홀든의 대사가 되어 우리에게 짜릿한 대리만족과 공감을 선사한다. 그렇다. 우린 아닌 척하지만, 사실 이미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


이 소설은 작가 샐린저가 홀든의 심리 상태에 아무런 개입 없이 그저 묘사만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홀든은 얼핏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동생 피비를 정말 귀여워한다.

 

피비의 등장으로 결국 홀든이 동생 이외의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할 뿐이라는 점을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이기심도 아니고, 천성이 나쁜 것도 아니다. 외로운 소년의 솔직한 성장기를 치밀한 필치로 묘사했다는 점.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명작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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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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