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뻑뻑한 모래알 같은 인생에 물기를 머금어 줄 시를 만나다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도서]

글 입력 2021.07.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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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이 뽑은 인생시 125편을 엮어낸 책,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가 출간되었다.

 

시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꺼내 보았을 때 기분 좋은 위로를 받은 게 기억이 남아 이 책을 집어들었다. 무엇보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직접 선정한 시라니,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이 깃든 그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시는 어떤 시일까 궁금했다.

 

'나태주 시인'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풀꽃’이라는 시를 대표적으로 떠올린다. 어쩌면 제목보다도 내용을 노래처럼 더 잘 읊조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wildflower.jpg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짧은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짧아서 직관적이고 특히 마지막 말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써먹어도 좋을 만큼 달달하고 사랑스럽다. 아니면 ‘모든 것들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니 자세히 보기도 하고, 오래 보기도 해 보아라’는 일침이 섞인 말일 수도 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시를 보고 어떤 인생을 바라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의 나래를 펼칠 지는 시를 읽어내는 독자의 몫이니까 말이다.

 

책 제목에서 말하듯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건 바로 그 의미일 것이다. 사실 책의 제목보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바로 나오는 ‘책머리에’라는 공간에 나태주 시인이 적은 것처럼 ‘시에서 인생을 배웁니다’라는 표현이 더 직관적이다. 시의 입장에서는 ‘가르친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고 ‘배운다’는 표현이 훨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으로 그 의미가 확 와닿는 것이다.

 

저자는 시로 인생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인간의 일생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 청년, 장년, 노년, 유년의 순으로 시들을 배열했다. 청년을 가장 앞에 둔 이유에 대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의욕과 가능성이 살아 있는 시절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덧붙여, 저자는 시로 인해 맑은 마음을 품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는 가운데, 느낌이 살아나고 생각이 싱싱해질뿐더러 인생에서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과연 정말 그런 마음이 생겨날지는 책을 통해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사본 -입체표지.jpg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시란



나태주 시인은 각 시마다 그의 말을 덧붙인다. 요컨대, 연이 닿은 시인이라면 그와 관련한 짧은 에피소드와 함께 시인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를 하고, 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아주 진솔하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한다. 또한 시 안에 담긴 서사 또는 어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솔직하고 애정 어린 시선에 담백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때 곳곳에 눈에 띄는 대목들이 몇 개 있다.

 

 

시라는 문장은 분명히 무엇을 짚어주는 문장이 아니다. 풀이하는 문장이 아니다. 무엇인가 비유나 상징의 덩어리를 던져주고 읽는 사람이 느끼도록 하는 문장이다. (p.26)

 

고결한 인품은 향기와 같다. 향기는 자취도 없고 모양이나 빛깔도 없고 소리 또한 없지만 오래가고 멀리까지 간다. 더구나 좋은 문장에 실린 인품은 더욱 오래간다. 뒷날에 사는 사람들 마음까지도 울려주고 오래도록 감싸 안아준다. (p.30)

 

시인은 갔어도 시 안에 젊은 시인이 아직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p47)

 

굳이 시의 덩치가 웅장할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높을 까닭도 없다. 조곤조곤 말하되 마음을 울리면 된다. (p.63)

 

나 또한 힘든 인생 모래알 씹는 것 같은 날들. 이런 시라도 읊조리다 보면 마음에 물기가 다시 생기곤 했으니까 이런 시는 얼마나 다행스런 위로였을까 보냐. (p.81)

 


시에 대한 나태주 시인의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시의 내용과는 별개로 시와 시인에 대한 사랑스럽고 따스한 시선이 담긴 말들은 시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도 좋지만, 그 옆에 덧붙인 나태주 시인의 말들 중 나의 내면을 두드리는 말이 있다면 잠시 머금어 보는 것도 좋다.

 

 

 

나태주 시인이 뽑은 인생 시 125편 중 필자가 뽑은 인생 시 두 편



갈대.jpg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왠지 그윽하게 보게 되는 시였다. 추운 겨울, 가족과 함께 황금빛 갈대밭을 풍경 삼아 걸은 적이 있다. 하늘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낸 햇살은 그나마 따스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었다. 마치 가을인 체하는 겨울 같은 날씨였다. 그때 갈대가 조용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잠자코 눈을 감고 들은 적이 있다. 분명 바람에 이끌리듯 옆 갈대와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이제껏 그렇게 생각했다.

 

신경림 시인이 바라본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은 바람이나 달빛도 아닌 제 안의 울음 때문이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저번에 찍어 둔 갈대밭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갈대들이 제 안의 울음으로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음을, 나의 온몸을 흔드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음을, 산다는 게 내 안의 조용한 진동의 연속이었음을 알게 됐다. 시를 읽고 나니 다시 한번 눈으로 갈대가 진동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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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오세영

 


시인이 마지막에 남긴 구절이 특히 와닿는다.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일전에 소중한 친구와 가족과의 이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상상하면 벌써 슬픔과 부정적인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이별은 반드시 온다. 나태주 시인이 덧붙인 말처럼, 사람은 나이가 들면 늙고, 늙는 것이 정상이다. 신체가 먼저 늙고 마음이 따라서 늙는다. 참으로 서러운 일이다. 여전히 이별의 상황에 담담해 할 자신은 없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 어쩌면 누군가와의 이별의 상황에서도 영원히 서러워만 말고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원시를 가진 노년기에 가져야 할 건강한 마음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전에는 굳이 시를 꺼내어 볼 정도로 관심이나 흥미를 가지진 못했다. 그저 우연히 발견한 시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 잠깐 머금었다가 일기장 한편에 적어두기만 했을 정도였다.

 

시를 적어 놓고 보니 알게 된 점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나의 인생 또는 감정의 파편과 많이 닮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문장은 나를 위로하기도, 가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옆에 두고 적절한 상황에 맞추어 들춰 보면서 시라는 문장들로 스스로 단단한 내면을 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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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읽는 것과도 같다. 시를 읽다 보면 속도가 느껴지고 감정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은유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느낌 있게 들리는 시도 있는 한편 담담하지만 우렁찬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거센 시들이 있다. 그런 시들을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잔잔한 여운이 머무를 때도 있고, 살짝 우울하고 씁쓸하게 시선이 끝나버릴 때도 있다. 그럼 시의 의미가 때로는 진득하고 느릿하게, 때로는 명확하고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이렇게 시로 인해 다양한 감정의 진폭을 느낄 수 있는 데에는 시에 쓰이는 언어와 문체가 한몫한다. 시를 보다 보면 여전히 글로 형용할 수 있는 말들은 참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시 안에서 머금고 있는 표현들이 그려내는 장면들로 상상할 수 있다.

 

그게 시의 매력이다. 요컨대, 시에 쓰인 소재 하나로 지난날 갈대 풍경을 떠올려 보고, 시에서 와닿는 구절에서 비슷하게 느낀 감정을 되살려 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는 누군가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보게 하고, 동시에 나의 인생을 찬찬히 회고할 수 있게 만든다. 시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시인이 인생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느낀 바를 ‘시’라는 형태로 녹여내면 우리는 다시 그 시에게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라보고 나의 인생에 투영한다. 그리고 새로 생겨난 나의 의미로 나의 인생에 위로를, 용기를, 확신을 심어준다. 본문에서 나태주 시인의 말을 빌려보자면, ‘이런 시라도 읊조리다 보면 뻑뻑한 모래알 같은 인생에 물기가 다시 생기곤 한다.’ 이건 분명 문학의 힘이며, 정확하게는 시의 힘이다.

 

여기 이 책 속에 시들 중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가 마음에 와닿을지 모르겠다. 나의 인생 시를 만나는 것 또한 타이밍에 달린 일이니 말이다. 그전까지 당분간은 새로 발견한 나의 인생 시 두 편을 조금 더 오래 머금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인생이 시들시들하게 느껴질 때쯤 다시 시를 읽고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컬쳐리스트.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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