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놀이가 된 예술, 예술이 된 놀이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놀이하는 사물⟫전
글 입력 2021.07.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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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둘은 얼마나 가까울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022년 2월까지 열리는 ⟪놀이하는 사물⟫ 전시에서 소개된 작업들은 놀이와 예술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놀이의 연장이라 설명하며, 그 결과물들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대중에게 공개됨으로써 우리가 말하는 ‘예술 작품’이 된다.

 

이 전시에서 예술은 놀이의 연장선에 놓여있으며 예술 작품은 놀이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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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사물⟫전에 참여하는 8명(팀)의 작가들은 재료가 가진 고유한 물성과 숙련된 기술을 통합하여 조화로운 사물의 언어를 빚어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제작자(maker)’이자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다.”

 

- 전시 서문 中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유희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1938년 발표한 그의 저서에서 제창한 개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인간을 지혜, 이성, 지식을 가진 개체로 정의하듯 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 놀이, 향락으로 정의하며, 정신적인 창조활동으로서의 유희가 인간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본다.


결국 이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창조자이자 놀이하는 사람으로 여기 놓인 오브제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작업물이자 놀이의 결과물이다.

 

 

 

자유로운 작품들을 자유롭게 감상하기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원형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감상을 가능케 하는 공간 및 작품 배치가 인상적이다. 우선 원형의 전시 공간은 독창적이고 역동적이다.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의 딱딱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작품들 앞에서 벌어지는 관객의 창의적인 상상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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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가는 대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고 나오면 순서대로 이광호, 서정화, 신혜림, 현광훈, 이상민, 이헌정, 이준아, 엔오엘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실, 끈, 기계 부품, 도자기,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그것들을 쌓고, 엮고, 끼우고, 붙이고, 빚어서 형태를 만든다. 때로는 블록놀이처럼, 때로는 뜨개질처럼, 때로는 찰흙놀이처럼 재료를 가지고 ‘논다’.

 

그리하여 완성된 결과물은 한 손에 들어오는 카메라부터 넓은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물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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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유기적으로 배치됨에 따라 정해진 순서 없이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배치 덕에 작품들이 가지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쉽게 발견되고 서로가 가지는 느슨한 관계를 찾을 수 있다. 비슷하거나 대비되는 재료, 제작 방식, 혹은 스케일을 자연스럽게 비교/대조하며 전시장을 누비는 동안 관람객들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계속해서 상상할 수 있다.

 

 

 

감상 포인트 - 생각 말고 몰입!



⟪놀이하는 사물⟫ 전시는 부담이 없다. 난해한 동시대 미술에 지친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 놓인 작업들은 개념보다 감각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도했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그러했듯 관람자도 ‘생각’이 아니라 ‘몰입’하면 된다.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작업 방식들을 보며 그만큼 다양한 놀이 방법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전시 관람 후, 호모 루덴스로서의 인간의 본질인 유희에 대한 열망을 느꼈다면 전시 기획자와 작가들에게 그토록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작품과 함께 놀 수 있다면 어떨까?



컨셉도 작업도 좋았지만 그 컨셉을 구현함에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

 

첫째는 서문에서 말하듯 “시각적인 감상 너머의 유희나 상호작용을 끌어내고자 하였”지만 작품 감상 방법은 사실 시각이 전부였다. 재료를 만져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예쁘게 제본된 재료 파일을 만져보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실제 작품과는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둘째도 역시 전시 서문과 실제 감상 사이의 괴리감이었다. “놀이를 잊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실감하게 한다”라는 야심찬 기대에 실제 경험이 미치지 못했다.

 

놀이의 산물인 오브제들은 여전히 만질 수 없고 관객이 서 있는 바닥보다 한 단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많은 관람자에게는 여전히 가까이하기 어려운 ‘예술작품’으로 남겨질 것 같았다. 심지어는 동행한 친구와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중에 정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작품 보존, 전시 환경에 관한 미술관 측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시 소개에 그런 언급이 되어 있었던 만큼 조금 더 ‘놀이’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배려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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