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과 사랑 사이의 무한한 굴레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결국엔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글 입력 2021.07.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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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들을 동경해왔다. 이상하게 다른 직업들 보다 예술을 업으로 택한 이들이 유독 멋있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며, 장래희망 칸에 피아니스트와 화가 따위를 적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피아니스트와 화가가 되기에는 내 재능이 턱도 없이 모자랐다는 것, 한국에서 피아니스트와 화가가 된다는 굉장히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매우 배가 고플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건 조금 긴 교복 소매를 접어 입던 시절의 이야기.

 

조금 더 자라난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밴드에 가입해 여러 무대에 서보기도 하고 공연 전체를 기획해보기도 했다. 또한 운이 좋게도 문화 예술 온라인 플랫폼의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예술을 조금은 열심히 소비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술을 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작업과 그들의 말에 쉽게 매료된다. 어쩌면 내가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열망일지도 모르지만, 꽤나 자주 나는 그들의 말을 붙잡고 살아간다.

 

*

 

최근의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난생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에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나면 내가 좋아했던, 나를 살려냈던 것들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조차 버거웠던 것이다.

 

나를 채워주었던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 안에 공허만이 자리 잡은 것 같은 그때,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열정과 통찰> 을 읽게 되었다.


 

Q: 지구에서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필터로 삼아서 세계의 정보를 걸러낸 결과물이요. 여기서 세계란, 자기가 아닌 바깥을 의미해요. 예술과 예술가가 따로인게 아니라, 예술가 자체가 어떤 거름망이라고 생각해요.


110p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피프티 피플> 등을 쓴 작가 정세랑의 말이다. 나 또한 예술이란 그 작품을 창작해낸 사람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금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세계가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마음에서 무언가 피어날 때, 영화를 보고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새로운 곡을 듣고 그 곡을 몇 시간이고 반복 재생할 때, 그 세계를 창작해낸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사는지 절실하게 궁금해진다.

 

그럴 때 찾아보는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인터뷰. 더군다나 지금처럼 스스로가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질 때, 무언가를 할 힘이 없을 때라면 예술가들의 말을 빌려 힘을 내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책은 음악가 김목인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한 때 진득하게 들었던 김목인의 앨범을 오랜만에 플레이하며 한 글자씩 읽어 나갔다.

 

 

혹시 우리 사회가 예술을 10% 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건가?

 

20p

 

 

김목인의 이 한 마디는 대한민국 예술 산업의 구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술의 존재 의의까지도 재고해보게 한다.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필요로 하는 예술의 종류와 양태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두 답변을 공유해본다. (사실 내가 두 사람의 팬이다)

 

 

저는 개인이 힘을 가지고 있는 순간들을 그리길 좋아하는데요. 그러려먼 그 개인이 자기만의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가치관 같은 거죠. 그래야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자기 힘으로 서 있을 수 있거든요. 휩쓸리지 않고. (중략) 저는 예술가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미적 가치관 같은 것을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다는 충동보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빛을 쬐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사람들을 기록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64-65p

 

 

김금희 작가의 대답에 그녀의 소설에 등장했던 몇몇의 인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할 것 없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각자만의 윤리로 세의 일면을 비춰준다. 김금희 작가의 예술은 타인을 조명하려는 일부 이타적인 행위로 느껴진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거 잖아요. 그걸 알게 된 지금은 전보다 눈 앞의 일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마주하게 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꺼림칙하지 않은지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됐고요. 내가 좋다는 마음으로 하는 선택인가, 나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인가.

 

205p

 

 

반면 음악가 림킴에게 예술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Lim Kim 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매한 Generasian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희열이 떠올랐다. 음악이란 창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세상에 소리치고 있는 앨범이라고 느꼈다. 이처럼 음악가 림킴의 예술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금희 작가가 타인을 조명하는 글들을 써옴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림킴의 앨범이 그녀 자신을 세상에 세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아시안 여성들의 연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예술의 목적에 이기성과 이타성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예술의 시작과 끝은 이기성과 이타성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듯하다.


다만, 이 두 예술가의 말을 굳이 구분하여 소개한 것은 예술의 필요와 그것을 하도록 하는 마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진부한 답이 될지도 모르지만, 인터뷰어 박희아의 말처럼 결국에는 사람과 사랑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앞서 작가 정세랑의 말에서 예술이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필터로 삼아서 세계의 정보를 걸러낸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고 있고 살아내고 있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알고 있는 이 세계를 굳이 한 번 더 걸러내어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고 느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다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사람과 사랑을 생각하며 이 순환을 바라보니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예술가들의 삶을 낭만화하거나 이상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순환 속의 노동과 치열한 고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잊고 있었던 것들을 인터뷰를 읽으며 다시금 떠올리다가 청승 맞게 스타벅스에서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아마 나의 예술가 동경은 쉬이 사라질 거 같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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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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