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위암 환자와 건강하게 먹고살기

글 입력 2021.07.0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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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환자는 먹고살기 힘들다. 위를 일부나 전부를 절제했으니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텐데, 엄마가 위암 수술한 후 식단에 참견하고 입장에서 이거 정말 쉽지 않다. 수술하고 병원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가려야 할 것도, 조심해야 할 것도 상당히 많다. 야심 차게 위암 환자식 책을 주문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책에선 먹으라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내키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람도 있고 일반식을 조금씩 먹는다는 사람도 있고 피하라는 것만 주의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차 하는 순간,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우리는 많이 주의하기로 했다.


죽을 끝내고 일반식으로 넘어갈 때가 제일 어려웠다. 처음에는 위암 환자를 위한 식단을 짜서 반찬을 배달해주는 업체를 생각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반찬만 별도로 파는 곳에서 몇 번 주문해서 먹은 게 전부였다. 영양적인 면에서는 전문가가 짜준 식단이 좋지만, 환자 개인의 호불호나 식재료에 대한 선호도가 있으니 그걸 모두 만족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맑은 생선국은 위에 부담이 가지도 않고 단백질 섭취도 가능해서 일반식 초반엔 복국을 종종 사다 먹었고 일반식을 진행하면서는 위암 환자의 유일한 외식 메뉴라고 할 수 있는 샤부샤부를 주기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세상 맛집을 다 알고 있는 오빠가 비건 반찬을 파는 곳에서 반찬을 몇 번 사 와서 색다른 맛을 즐기기도 했다. 엄마의 식단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비건과 위암 환자 식단에는 접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비건이면 당연히 몸에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튀기거나 밀가루가 메인이거나 향신료나 이런저런 첨가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비건 중에서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식사를 챙길 수 있는 종류는 많지 않았다. 요즘 비건이 유행이니까 방심했는데 한식으로 채식을 챙기는 게 손이 덜 가고 속이 편한 방법이었다.


처음엔 유기농 바나나를 몇 번 샀는데 바나나가 좋지 않단 얘기에 바로 끊었다. 그러면서 바나나와 함께 샀던 유기농 그릭 요거트가 남았다. 요거트에 제철 과일을 넣으면 가볍고 산뜻한 간식이 됐다. 다만 과일과 요거트 모두 차가우면 부담이 될 수 있고, 수술 후에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없어서 나는 요거트 40g에 딸기 3~5알을 작게 썰어 넣는 걸 제일 많이 했다. 베리 종류가 좋다고 해서 해동한 유기농 냉동 블루베리나 시장에서 산 생블루베리를 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엄마의 간식을 책임지고 있었다.

 

 


1. 빵


 

수술 후 의사 선생님이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운 걸 간식으로 먹으면 된다고 해서 오빠가 태극당에서 가서 카스테라를 몇 번인가 사 왔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달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다고 해서 이후 빵은 단맛이 덜한 통밀빵으로 선회했다. 그런데 통밀이란 이름을 달고 그냥 밀이 더 많이 들어간 빵이 수두룩했고, 통밀빵이어도 설탕이 많이 들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것저것 시켜보고 먹어보니 성분이 심플한 베이글, 식빵, 모닝빵이 제일 무난한 선택이었다.

 

 

통밀빵.jpg


 

물론 베이글, 식빵. 모닝빵에 큰 차이는 없고 모두 예상 가능한 다소 퍽퍽한 맛이다. 업체에 따라 더 달거나 덜 달거나 한다, 그래도 선택지가 적으니 최대한 질리지 않게 종류를 바꿔가면서 산다. 대체로 빵을 있는 그대로 소량씩 먹었지만, 가끔은 기버터를 바르고 굽거나 무설탕 잼을 발라 먹기도 했다. 식사 대용으로 만들 땐 계란 물에 채소 이것저것 넣고 부쳐서 토스트처럼 먹기도 했다. 이때 소스로 유기농 케첩을 소량 사용했다.


성분을 조금 흐린 눈으로 보고 뭔가 더 들어간 빵을 먹으면 굉장히 맛있는데 입맛이 변할 수 있으니 자주 먹지는 않는다. 통밀이든 하얀 밀이든 어차피 빵은 탄수화물 덩어리라서 혈당을 조심해야 하는 경우엔 좋은 선택이 아니라지만, 그나마 건강하게 빵을 먹으려면 성분이 단순한 통밀 외엔 괜찮은 선택지가 없었다.


추천제품: 훕훕베이글, 그래밀 통밀식사빵, 더브레드블루 순수통밀식빵, 아르토스 베이커리 통밀 식빵/모닝빵. 오베이글 쌀베이글, 제로베이커리 무화과 쌀식빵

 

 

 

2. 초콜릿


 

초콜릿.jpg

 

 

수술 후에 소화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 고기를 통한 단백질 섭취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단 것까지 제한하니 기력이 떨어졌을 때 효과를 볼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초콜릿의 카카오 버터가 소화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카카오 함량이 높은(85%)유기농 다크 초콜릿으로 시작했는데, 한 번에 소량을 섭취하기 때문인지 덤핑이나 소화불량이 오지 않아 그 뒤로 꾸준하게 챙기고 있다. 유기농 다크 초콜릿은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얇은 판 초콜릿과 두툼한 판 초콜릿을 번갈아 가며 구매하고 있다.


초콜릿 이외에 소화 가능한 디저트류는 콩이나 쌀로 만든 브라우니였다. 당 함량은 낮고 단백질 함량은 높아서 부담 없는 선택지였다. 처음에는 콩과 조청, 대두만 들어갔다는 콩콩볼이라는 제품도 먹었는데 브라우니 모양이라는 시각적 효과도 중요한 것 같았다. 밀가루와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브라우니를 찾아도 버터나 현미유가 들어가서 초콜릿보다 조금 더 걱정이었는데, 브라우니 크기가 작은 데다가 한 번에 다 먹지 않으니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수술 전에 먹었던 꾸덕한 브라우니는 이제 힘들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씩 대체품을 찾아 즐기고 있다.


추천제품: 그린앤블랙 유기농 다크초콜릿, 비바니 다크초콜릿 카카오, 무설탕 콩 브라우니, 비건 브라우니, 청춘푸드 카카오 콩콩볼

 

 


3. 과자



수술 후 튀긴 음식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튀긴 것만큼은 피해야겠다 싶어서 유탕처리가 되지 않은 과자를 찾아댔다. 아기들이 먹는 소위 떡 뻥(쌀과자)을 제외하고 제일 많은 건 현미칩누룽지였다. 찾고 찾아서 누룽지 중에서도 유기농 현미만 들어가고 바삭한 걸 골라 쌓아놓고 먹었다.

 

튀기지 않으니 식감을 살릴 방법이 얇고, 바삭하게 만드는 법 밖에 없어서 솔직히 과자를 다양하게 먹기는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무농약 우리 밀과 천연 버터를 사용해서 빵류를 만드는 네니아라는 국내 기업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일반식과 유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었다.


추천제품: 바삭 현미 케일 누룽지 크래커, 네니아 우리밀 마늘토스트, 우리밀 검은콩 현미칩, 현미 달칩


 

 

4. 잡곡, 기름, 장류


 

일단 밥과 기름, 장을 싹 바꿨다. 꼭꼭 씹어먹으면 잡곡밥도 좋단 얘기에 집에는 현미로 시작해서 기장, 수수, 서리태, 병아리콩 등 다양한 잡곡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유기농 강황 가루까지 들어간다.

 

 

올리브오일.jpg


 

유채씨유, 포도씨유 등 명절마다 쌓이는 식용유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기버터, 국내산 현미유를 쓰고, 참기름과 들기름은 모두 국내산으로 바꿨다.

 

장도 국내산 재료를 쓴 된장과 청국장만 먹고 있는데, 몇 달 전 원산지 조작으로 논란이 된 업체를 나도 이용했던 터라 조금 맥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세상은 넓고 성심성의껏 장을 만드는 곳은 여럿 있어서 이곳저곳 번갈아 가며 된장을 주문하고 있다. 시판 된장만큼의 감칠맛은 없고, 양념 된장으로 찌개를 끓였던 탓에 정직한 맛의 된장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대신 청국장은 특유의 맛이 있었기 때문에 좀 싱겁게 끓이더라도 먹기 쉬웠던 것 같다.


추천제품: 한국맥꾸름 청국장, 권영원 소담정찬 무염청국장

 

 


5. 반찬류


 

죽에서 일반식 넘어가는 시기에 처음으로 주문한 건 아이 김이었다. 아이들 용으로 기름과 소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김이 소포장으로 판매되고 있었는데, 양이 적은 위암 환자에게 딱 적당한 양이었다. 이후에는 약간 간이 된 김으로 넘어갔고 이후에는 돌김, 파래 등 종류를 다양화했다.


조금 싱겁게 먹어도 괜찮은 게 청국장과 된장국/찌개였고, 넣기에 만만하면서 식물성 단백질을 챙기기 위해 국산콩 두부를 꾸준히 구매했다. 초기에는 무농약 국내산콩 두부를 인터넷으로 구매해 먹었는데 매번 인터넷으로 식자재를 주문할 수 없어 접근성이 좋은 국내산콩 두부로 타협을 봤다.


일반식 초기부터 온갖 나물이 집에 끊이질 않는데 매 끼니가 대체로 풀밭이라 인터넷과 한 살림 매장을 통해 여러 가지를 구매했었는데 몇 번 재구매한 건 많지 않았다. 계란과 채소를 다른 방법으로 먹는 방법은 김밥이라 무농약 단무지를 사거나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 국내산 재료가 들어간 피클을 샀었다. 또, 샤부샤부에서 고기를 안 먹기 때문에 채소로만 배를 채우게 할 수 없으니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만두를 찾았다. 만두는 끼니 사이에 한두 개씩 구워 간식용으로도 괜찮았다.


추천제품: 올음 모둠피클/단무지, 풀무원 무농약 백색단무지, 해화당 야채 만두류

 

 

 

6. 외식과 배달음식


 

위에서 이야기했든 위암 환자들의 가장 만만한 외식 메뉴는 샤부샤부다. 그다음으로는 정갈한 한정식집인데 보양식 종류는 기름져서 힘들고 생선구이채식당이 괜찮다.

 

꽃밥에피다.jpg


인사동 근처에 괜찮은 한식당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곳은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는 ‘꽃, 밥에 피다’이다. 채식당은 아니지만, 채식 위주로 식사하기가 좋고, 위암 환자들이 신경 쓰는 식재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많이 먹을 수가 없어 가짓수가 적은 코스요리에 대표 메뉴인 눈개승마 밥보자기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자극이 덜 한 눈개승마 밥이 반응이 좋았다.


칼국수와 수제비가 밀가루 음식이지만 다른 면 종류에 비해 나쁘지 않다는데 꼭꼭 씹어먹다 보면 밀가루 맛이 나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수제비는 통밀가루를 사서 집에서 해 먹는 걸로 바꿨고, 칼국수보다는 면이 가느다란 잔치국수를 소량 먹곤 했다. 메밀면은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게 많고, 온면보다 차가운 종류가 많아서 몇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이외에 외식이나 배달로 나쁘지 않았던 건 두부 부리또 볼(현미 보리밥), 두부 포케, 베지테리언 커리였다. 셋 다 흔하게 먹는 게 아니고 맛도 평소 먹는 집밥과 겹치지 않아서 기분 전환용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


내가 이 글을 적게 된 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위암 환자가 매일 꾸준히 식사를 챙겨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마다 성향도 식성도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적더라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겠고, 내가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초반에 내가 헤맸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작정 인터넷에서 무농약, 오가닉, 유기농만 검색했는데 이제는 ‘콩으로 만든, 쌀로 만든, 두부로 만든’을 검색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내가 모두 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선택할 수 있듯 이 글도 누군가에게 취사선택할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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