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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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결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인 것 같아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는 나에게 국한된 이야기였다. 다만 이러한 믿음은 나름 깊고 확고해서, 꽤 오랫동안 나는 이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소위 말하는 ‘예술’이라는 것과 차단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보통 또래의 아이들보다 이것에 훨씬 많이 노출됐고, 이것을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또 그만큼 좋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어렸을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봐야한다’는 엄마의 교육 철칙에 따라 피아노, 플루트, 첼로, 미술 등 예체능의 범주 아래 묶이는 많은 활동들을 경험했고, 주말이면 전국 곳곳의 전시회, 미술관,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며 역시 예술에 대한 나름의 안목을 키워갔다.

 

꽤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사실 이 일련의 활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동생처럼, 만약 내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종료되었을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술과 함께하는 이와 같은 생활을 누구보다 즐거워했고, 그리하여 이러한 날들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향후의 내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우리 집에 예술은 없다.’

 


이는 비단 어렸을 때부터 해 온 다양한 예술 활동들에 대한 관심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어서까지 꽤 진지하게 지속되자, 아빠가 나지막이 내뱉은 위와 같은 한 마디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학교급에 진학하게 되고, 나름의 생각이라는 것이 생기면서부터는 나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결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고, 재능과 용기를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주 깔끔하게, 그리고 단 한 조각의 미련도 없이.


그 뒤는 예상대로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중,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가족여행 한 번 갈 수 없고 취미생활 하나 즐길 수 없는, 학업으로만 가득 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간에 큰 부침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큰 목표의식 자체는 변하지 않았고, 그렇게 또 대부분 그러하듯이 대학에 입학했다.

 

*


그래서, 시간이 흘러 이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지금은 어떠냐고? 다시 돌고 돌아, 나는 또다시 예술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됐다. 물론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역시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돌이켜보면 예술에 대한 내 머릿속의 쟁점은 주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자격’에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항상 예술가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를 테면 아우라 같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그들을 어려운 존재로 구분해버렸고, 그럼으로써 예술 역시 평범한 일상으로 대표되는 범인(凡人)들의 삶과는 다른, 어딘지 고아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방금까지의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예술의 속성이 사실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정확히 정반대에 있음을 그 누구보다 강조하는 사람이다. 예술을 의식주라는 삶의 필수 활동들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치부해버리는 목소리들에는 일단 화부터 치밀어 오르고, 공연과 전시 등을 자주 보러 다닌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자주 듣는 ‘교양 있네.’라는 소리에는 괜히 딴지를 걸고 싶을 정도로, 생활 속 예술을 강하게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는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설사 겉으로 밝히지 않은, 자신만의 내면의 생각일지라도. 특정 대상에 대한 의견을 이처럼 180도 뒤집어 버린 나에게는 예술이 정말 이토록 인간적이며, 내 옆에 있는 보통의, 일상적 활동이라고 함께 이야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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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책,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열정과 통찰>은 지금까지 매체나 무대, 그리고 짧은 인터뷰들에서는 잘 들을 수 없었던 26인의 예술가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혼자서는 변론하기 다소 어려웠던 예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방 안 한 구석에 걸려있는 훈장이나 트로피들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박제된 목소리가 아니다.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쟁취한 사람들로서의 자부심과 고고함만 드러내는 목소리 역시 아니다. 저자인 기자 박희아가 이끌어내는 차분한 물음을 따라,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씩 살아난다. 이들 예술가들 역시, 자주 흔들리고, 불안하고, 그래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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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불안감이 필요해요. 무대에 올라갈 때 너무 편하면 그게 오히려 실수를 불러요. 적당한 불안이 있어야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좋은 텐션이 나와요. (중략) 그래서 오늘도 불안할 예정입니다.”

 

- 배우 배나라 인터뷰 中, P.184

 

 

"저는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를 한다' 뭐 이런 걸 예상했는데, '불안함'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자기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불안 때문이라고요. (중략) 그래서 그때부터는 불안한 마음 상태 그대로 상대 배역을 만나는 연습을 했어요.

 

- 배우 강필석 인터뷰 中, P.321~322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극장에 들어서서 1막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5~10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정적은 언제 겪어도 낯설고 신선하다. 동시에 나는 그저 수많은 객석 중 한 자리에 앉은 관객에 불과할 뿐인데도,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 앉은 나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곧 무대에 등장해 연기를 할 배우들은 얼마나 더 떨릴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저절로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공연에서의 퍼포먼스, 즉 예술도 결국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배우 배나라와 강필석은 인터뷰에서 ‘프로’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또는 의도적으로 숨겨왔던 불안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 불안은 무대라는 한 공간에서만 20년 넘게 활동했던 배우의 가치관을 바꾸기도 했고, 20대 후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한 배우가 스스로 말하는 성장의 원동력, 그리고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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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겸 배우 이자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에 대한 더욱 ‘인간적인’ 이야기를 시도한다. 생활과 예술의 양립 가능성, 그리고 그러한 예술의 가치에 대한 목소리이다.


 

(중략) 그래서 저는 자꾸 예술이 돈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분리하는 사람을 보면 멱살을 잡고 “무슨 소리야!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고 있는 모두가, 이 모든 것이 우리라고!”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웃음) 예술이라고 혼자 고고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 배우 겸 음악가 이자람 인터뷰 中, P. 290

 

 

그래서 이제는 시스템을 좀 갖춰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더 피트(THE P.I.T)라는 회사도 만들었고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게, 국립이나 시립 같은 곳에서 지원을 받지 않으면 뮤지컬 오케스트라는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구조거든요. (중략) 저를 선두로 해서 연주자들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닦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우리끼리 얘기를 하면서 만들었어요.

 

- 음악감독 김문정 인터뷰 中, P. 333~334

 

 

음악감독 김문정 역시 생활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소위 말하는 ‘돈이 되지 않는 일’의 대표 주자로 널리 알려진 예술 직종의 이미지는, 세속적인 것과 분리될수록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이 직종 특유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예술에 자본과 생활이 개입되는 순간, 그 순수성이 퇴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예술, 또는 예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과 돈을 결부시키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 겸 음악가 이자람과 김문정 음악감독은 일상적인 생활이 영위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술 자체나 작품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가 아닌, 이 주변에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에 대한 인터뷰라니. 그 자체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이 책에 등장하는 26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랜 경력을 지닌 이 두 사람의 인터뷰에서 내가 찾은 키워드는 다름 아닌 평범함, 그리고 일상이었다.

 

*

 

매체, 무대, 그리고 자신의 작품 속 등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는 성찰과 분석 과정, 그리고 노력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빛나는 이들은 분명 누군가의 경외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에서의 이들은 이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놓지는 않는다. 보통의 직업인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이를 털어놓는다. 이 책의 제목, 그리고 인터뷰에 참여하는 인터뷰 참여자들이 매체와 무대를 통해 많이 보아왔던 얼굴들인 것을 제외하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을 법한 대화들도 많다. 반드시 예술 분야가 아니어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쟁취해냈던 모든 성공과 환희, 그리고 실패했던 좌절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있다. 이들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그렇게 점점 예술은 모두에게 문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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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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