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그 열림과 닫힘.

시네마가 마주한 진정한 위기?
글 입력 2021.06.2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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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이다. 판데믹은 사람 간 교류를 힘들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아마 언택트 사회의 도래일 것이다. 사회 공간은 비대면을 위주로 체제를 바꾸었고 사회 속의 개인은 단절을 준수하게 되었다. 타인을 향한 확장의 금지는 곧 사회의 닫힘을 낳았다. 판데믹 이후 사회는 다수의 만남을 장려하는 열린 공간의 지위와 사건 그 자체가 발생하는 열린 지평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현재 빠른 속도로 증가세를 보이며 29%에 달한 백신 접종률은 긍정적인 지표임이 분명하나, 여전히 사회가 닫힌 상태를 기본적으로 유지함을 부정할 순 없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맨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일이 기본적인 책임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여전히 사회는 폐쇄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닫혀있음, 폐쇄가 강조되는 상황 속,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부터 닫힌 공간이었기에, 조금 더 엄밀히 말해 그렇게 닫힌 것이 본질로서 여겨지기에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공간이 있다. 바로 영화의 지평 '시네마(Cinema)'다. 조금 더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표현하자면 극장 혹은 영화관일 것이다. 이 특수 공간은 다수의 관객을 한 장소에 모은 뒤 닫혀버리기에 판데믹과 함께 쇠락을 거듭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이 이를 증명할 것이다. 극장 관객은 전년 대비 73.7% 감소했고 매출액의 경우 73.3% 감소했다. 2019년과 달리 온라인을 활용해 축소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나 그 외 진행되지 못한 여러 영화제 역시 상황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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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의 모습, 영화의 전당 앞)

 

 

그렇다면, 현재 시네마가 마주한 위기 상황은 그저 질병으로 발생한 일시적 사건일까? 접종률이 상승하고 만일 판데믹이 해결된다면? 낙관적으로 보자면 시네마는 아마도 이전처럼 잘 굴러갈 것이다. 한 공간에 다수가 폐쇄된 상황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쉽사리 예상되고 기다림을 요구하는 한 해당 문제는 크게 언급될 이유를 잃는다. 시네마의 위기는 결국 우연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악재로 언젠가 자연스레 사건이 끝날 것이란 기다림만이 허락된다.


가다머의 말을 빌리자면 현 상황은 곧 장악할 수 없는 사태인 '생기'와 같다. 손바닥을 쭉 내밀며 "멈춰!"를 외친다고 판데믹이 파괴적 행보를 관두진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작금의 상황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 막을 수 없는 필연적 흐름인 셈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미디어 시장은 다른 것들로 영화의 빈자리를 쏠쏠하게 채워주고 있다.


OTT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넷플릭스는 한국에만 5,5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을 넘어 해외의 거대 OTT 업체들이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쿠팡 또한 참전을 선언했다. 심지어 가정용 미디어의 대표주자 TV의 이용률 역시 소폭이나마 상승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TV 이용률은 지난 10년간 하락세를 면치 못했으나, 코로나 여파에 힘입어 결국 2020년 전년 대비 3.2%(9.8분) 상승했다. 경기 침체 속 전체 종사자가 3만 7천여 명(1.3%) 증가한 점 또한 충분히 놀라운 사실이다.


이들은 심지어 시네마와 같은 특수한 공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침대에 편히 누워서, 즉 개별적으로 '닫힌' 상태에서 다수와의 접촉 없이, 안전하게 미디어를 향유한다. 어둡고 폐쇄된 공간과 고정되고 일방향적인 스크린은 더는 개인에게 강요되지 않는다. 이렇게만 보자면 영화와 시네마가 맞이한 위기는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이 위기가 개인에게는 역으로 이점을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대안'을 찾은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네마가 마주한 진정한 위기는 바로 이러한 대중들의 인식이다. OTT든 TV든 혹은 유튜브든 충분한 대안이 있으니,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더욱더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고가 바로 시네마의 위기이다. 시네마가 마주한 진정한 위기 상황은 단지 공간적 부재와 부정이 아니다. 시네마의 부재를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강렬한 위험이다. 이는 실상 영화적 고민의 부정이기도 하다. 이 부재의 본질은 시네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발 더 나아가 영화를 보는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고와 고민의 부재다. 다른 서비스가 진정 시네마를 대체할 수 있는지, 그를 통해 제공되는 영상물이 진정 전통적 영화를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의 상실이다.


이 문제는 시네마의 본질에 닫혀있음, 폐쇄와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사고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이전까지 허용되었던 폐쇄의 경험은 현재의 혼란 속에서 너무나 쉽게 거부당한다. 물론 시네마의 기본적인 특징인 닫혀있음과 폐쇄성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공간적인 표상이다. 이 공간적 미장셴(Mise-en-Scène)이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 진정 시네마를 향한 질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매우 당연한 말이겠지만, 관객은 영화를 보기 위해 시네마를 방문한다. 물론 깜깜한 어둠과 폐쇄성을 목적으로 영화를 수단 삼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영화를 보고자 시네마에 간다. 즉 시네마의 공간적 의미는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다. 그렇기에 시네마가 목표하는 닫힘은 근원적인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상영을 위한 일차적이고 도구적인 닫힘이다. 이는 곧 영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자 관객에게 강제되는 일차적 요건으로, 이 닫힘 속에는 관객을 향한 강력한 열림의 열망, 확장의 지향이 숨겨져 있다. 바로 영화 경험이다.


즉 시네마는 열림을 위해 우리에게 닫힘을 권하는 장소다. 영화 경험은 분명 열려있는 다수에게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정면의 '스크린'을 통해 대규모 관객에게 영사되며, 개별 관객은 이 한시적으로 열어젖혀진 '창'을 통해 새로운 시공간적 경험을 겪는다. 그리고 메시지를 원하든 즐거움을 원하든, 관객은 개개인의 해석 이전 감독이 전하는 하나의 '것'을 다수와 동시적으로 체험해야만 한다. 이렇게 시네마가 담고 있는 닫힘은 열림을 통해 열림을 목표하는 전제로서의 닫힘이 된다.


시네마 속에 담긴 열림과 닫힘의 관계가 복잡한 만큼 이 공간은 또한 아주 낯설고 특이한 곳이다. 열린 사고와 자유를 말하는 21세기 현대인의 관점이 쉽사리 허락하지 못할 것들이 산재해있는 까닭이다. 시네마는 영화 경험이란 진정한 목표를 위해 맹렬히 나아가나, 이 형태는 강압적이고 일관적이며 엄격하기 그지없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도 그러하다. 거대한 육면체 속 허용된 것은 오로지 단 하나의 면, '스크린'뿐이다. 그리고 모든 좌석은 스크린을 향한다. 관객은 좌석에 있어 앉는 행위 외 다른 것을 허용받지 못하며(음료나 간식 또한 앉아서 섭취해야만 한다) 앉음으로써 그들의 시선은 일방적으로 고정된다. 영화가 시작된 후 빛과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터부시된다.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스크린 속의 영화뿐이다. 그 외 어떤 것도 고정된 관객의 시선과 집중을 흩뜨릴 수 없다.


관객 모두의 개별적 시간은 스크린에서 흐르는 시간과 강제적으로 동화된다. 개인적 용무로 좌석을 벗어나는 순간 그는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가 관을 나서 사용한 시간과 스크린의 시간은 비례하지 않는다. 스크린의 1분은 10년이 될 수도 있고, 100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시네마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책임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 된다. 동시적이지만 상이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넘어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네마는 관객의 영화 경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분명한 하나, 영화 경험을 위해 전제되는 시네마의 폐쇄 경험이 너무나 특수하고 강제적인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관심은 폐쇄성과 닫힘이라는 일차적 경험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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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영화관의 모습)

 

 

시네마에 발 들인 순간 관객은 이미 이 특수한 공간에 갇혀 다수와 함께 하나의 콘텐츠를 관람할 것을 자발적으로 약속한다. 그리고 이 폐쇄성, 닫혀 있음을 향한 동의가 너무나 강렬히 관객을 제약하기에 우리는 관객 모두를 향해 확장되어 가는 최종 목표 곧 영화 경험을 우선 덮어둔 채 폐쇄성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곧 시네마의 특수성이다.


그렇다. 시네마의 공간적 폐쇄는 단적인 폐쇄 경험이 아니다. 이는 수백에 달하는 미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으로서 곧 시간의 공유이며 페쇄는 일차적이고 특수한 도구일 뿐이다. 영화가 매스 미디어로 분류되는 한 해당 미디어는 다수에게 여러 차례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는 분명한 사태이다. 실상 시네마가 욕망하는 것은 닫힘이나 폐쇄가 아닌 것, 단적으로 말하자면 열림일 것이다. 논리적 선후를 따져봐도 그러하다. 닫힘과 폐쇄를 수단으로 삼아 닫힘과 폐쇄를 얻고자 함은 모순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진 것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데믹 이전, 다자 간의 열린 관계를 허용하고 인정했던 사회는 이 기묘한 장소를 허용했다. 실상 시네마의 목적이 닫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이유이다. 그러나 이제 닫혀있음, 개인의 폐쇄성이 미덕으로 요구되는 비대면 사회가 도래하며 시네마는 거부되었다. 시네마의 본의가 닫힘이 아닌 열림을 지향하는 한 이는 당연한 결과다.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세 가지 선입견을 밝혔다. 그 중의 하나는 '존재자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이 존재적으로 가장 멀리 있음'이다. 이 문제는 익숙함에 기인한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물음의 제기 가능성조차 사라진다는 뜻이다. 영화라는 미디어, 그리고 그 지평으로서 시네마는 누구나 쉽사리 방문할 외출이 장소로서 오랜 시간 기능해왔다. 우리는 이 익숙함에 가리어 시네마라는 장소가 지니는 본의와 목적을 잊었다. 곧 통일된 시간 속의 다자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화의 상영이다.


시네마에 가는 것, 극장에 가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수용하는 것이, 즉 이 활동을 익숙한 우리의 체계와 논리로서 당연히 여기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시정되어야 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대형 스크린이 만국박람회에서 2만 5천 명을 끌어모은 지 121년이 흘렀고, 한국 최초의 극영화 '의리적 구토(1919, 김도산)'가 상영된지도 100년을 넘어섰다. 그 만큼 친숙하고, 익숙하여 질문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시네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네마가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서 영화가 마주한 문제의 핵심이다. 질문의 상실은 곧 대답의 부재를 내포한다. 단언컨대 현재 영화관이 줄어들고 있다는 장소적 문제와 스크린의 감소라는 물리적 문제는 시네마가 맞이한 본질적인 위기 사태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시네마가 무엇인지가 고민되지 않음이며, 이 기회마저 박탈당한 체 공간으로서 시네마가 해체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심지어 한국 최대의 영화 배급사인 CGV마저 작년 말 상영관의 30%를 축소할 것이라 밝혔으니 문제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정하기 힘든 시네마의 위기이자 퇴락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 그 풀이를 욕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는 시네마 속에서 상영되고 있다. 적어도 시네마 안 마지막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모습을 감추기 전까지는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시네마의 강제적인 대체는 독단이며 무력한 포기는 회의일 것이다. 선택은 본질적 고민을 내포해야만 의미를 지닌다. 시네마가 맞이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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