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드 'V' 페라리 [영화]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
글 입력 2021.06.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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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속한 열등한 팀이 노력을 통해 성장하며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경쟁 팀을 꺾고 대회에서 우승한다.’ 스포츠물의 정석적인 전개다, 등장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자잘한 변주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스포츠가 대결을 통해 승패를 가리거나 순위를 매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이야기의 큰 틀은 위의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포츠물은 서사가 단순하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장르적 편견은 일정 부분 이런 특성에서 기인한다.

 

장르적 규칙은 장르물의 핵심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장르적 규칙의 창조적 계승이 해당 장르의 생명력을 결정하는데, 범죄물이나 공포물에서처럼 스포츠물에서도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꾸준히 있었다. 등장인물의 드라마를 강조한 <블라인드 사이드>(2009)나, 경기장의 뒤편에서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스포츠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머니볼>(2011)이 좋은 예다. 이런 시도는 평론과 흥행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나 인물의 드라마에 치중한 나머지 스포츠가 단순히 영화의 배경으로 소모된다는 장르적 측면의 비판도 있었다. 그렇다면 스포츠물은 무엇을 보여줘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제임스 맨골드의 <포드 V 페라리>는 치밀한 서사를 통해 스포츠물이 보여줘야 하는 장르적 쾌감은 물론, 개인과 사회를 둘러싼 복합적인 드라마까지 깊이 있게 그려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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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캐롤 셸비의 ‘르망 24’ 경기 장면으로 시작한다. 차에서 난 불이 몸에 옮겨붙어도 대수롭지 않게 꺼 버리고 경기에 집중하는 셸비의 모습은 레이싱에 대한 그의 집착과 열정을 드러낸다. 그는 영화 내에서 계속 언급될 레이싱의 초월적 경지인 7000rpm(속도는 빠르지만 차의 조정이 굉장히 어려워지는 상태)의 영역에 도달하며 세계 최고의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하지만, 대회 이후 발병한 심장 질환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은퇴 이후 그는 자동차 개조 사업을 운영하면서 본인의 욕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는데, 지병으로 호흡이 가빠 오는 순간에도 약을 먹을 때보다 운전석에 앉아 차체의 진동을 느낄 때 더 편안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레이싱에 대한 그의 열정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 켄 마일스가 등장하는 정비소로 향한다. 그는 본인이 운영하는 정비소에 찾아온 손님과 싸우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는 불만을 제기하는 손님에게 차는 그렇게 모는 게 아니라는 훈수까지 두는데, 레이싱과 가족 이외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화가 나서 정비소를 뛰쳐나가는 손님의 말마따나 그는 손님이 왕인 나라에서 살아남기엔 틀려먹은 인간이며,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포드주의적인 합리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초반부에서 두 장면을 연결하는 요소가 정비소에서 레이싱 트랙을 가지고 노는 마일스의 아들이라는 점은 꽤 흥미롭다. 포드주의적 질서를 체화하고 현실적 가치에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사는 셸비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최우선인 마일스의 성격은 상당히 다른 듯 보이지만, 영화는 레이싱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레이싱을 좋아하는 순수한 어린아이’를 장면 이동의 축으로 삼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셸비와 마일스는 이후 지역 레이싱 대회에서 만나게 되는데, 레이싱 디렉터로 참여해 많은 참가자 및 관계자와 넉살 좋게 인사를 나누는 셸비와 바뀐 경기 규정에 항의하며 스태프와 싸우는 켄 마일스의 대비되는 모습은 두 주인공의 차이를 다시 강조한다. 실격당하기 직전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가던 셸비의 도움을 받아 경기에 참여한 마일스는 대회에서 손쉽게 우승하지만, 레이싱 팀의 감독들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통제하기 힘든 성격 탓에 마일스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는 것을 꺼린다. 독불장군 같은 마일스의 성격은 결국 정비소에 오는 손님의 발길마저 끊기게 했고, 그는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정비소를 압류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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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상황을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영화는 헨리 포드 2세와 엔초 페라리를 등장시키며 이야기의 중심 소재와 핵심 가치를 제시한다. 커다란 기계가 늘어선 공장에서 수많은 직원을 내려다보며 수직의 구도로 등장하는 헨리 포드와 숙련된 소수의 장인들이 일하는 작업장 구석에서 수평의 구도로 등장하는 엔초 페라리의 대비는 조직과 효율, 합리를 중시하는 포드와 개인과 열정, 장인 정신을 중시하는 페라리의 가치 대립을 잘 보여준다. 두 가치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신념과 행동을 통해 치열하게 대립하고 뒤섞인다.


포드는 회사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레이싱 팀을 운영하기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파산 직전의 페라리 사를 인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엔초 페라리는 인수 제안을 거절하면서 포드 사와 헨리 포드 2세에게 폭언을 가한다. 포드는 흉한 차를 만드는 공장에 불과하며, 당신은 헨리 포드 ‘2세’지 헨리 포드가 아니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포드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페라리를 꺾기 위해 레이싱에 뛰어든다. 회사의 발전과 홍보라는 포드적 욕망이 페라리에 대한 승리라는 개인적 욕망으로 전도되는 순간, 헨리 포드의 욕망은 일정 부분 페라리적인 성격, 즉 마일스와 셸비의 내적 욕망과 비슷한 결을 지니게 된다. 이후 포드는 페라리를 이길 레이스팀을 만들기 위해 셸비와 접촉하는데, 페라리를 꺾고 르망에서 우승하겠다는 포드의 목표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 셸비는 포드의 팀에 마일스를 영입하자고 제안한다. 마일스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포드에서 개발한 엔진의 가능성을 보고 뒤늦게 팀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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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는 셸비와 함께 포드의 새로운 차를 만들며 르망 24를 준비하지만, 두 주인공의 상황은 레이싱 부서의 책임자이자 포드의 부사장 리오 비비로 인해 꼬이기 시작한다. 포드의 새로운 차를 공개하는 행사에서 마일스가 차의 구조를 지적해 망신을 주었던 일로 앙금이 생긴 그는 마일스처럼 제멋대로인 인물은 포드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설사 그가 르망에서 우승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포드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팀에서 빼라고 지시한다. 조직에 해가 되는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 포드주의의 극단을 상징하는 인물인 비비의 명령에 셸비는 어쩔 수 없이 마일스를 르망에 출전시키지 않지만, 포드의 새로운 차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마일스가 없는 팀은 르망에서 페라리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레이싱 팀이 해체될 수도 있는 상황, 르망 직후 열린 헨리 포드 2세와의 미팅에서 셸비는 관료주의, 집단주의로 대표되는 포드 체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레이싱 부서에 대한 모든 사항을 포드에게 직접 보고하게 만든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포드주의적 질서에 굴복했던 셸비 내면의 페라리적 가치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고, 그는 비로소 마일스와 한 팀이 될 준비를 마친다. 마일스를 다시 설득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한 셸비는 그에게 한 대 얻어맞고, 둘은 잔디밭에 엎어져 싸움을 벌인다. 다 큰 어른들이 유치한 몸싸움을 벌이는 이 장면은 영화의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셸비가 본인을 지배하고 있던 집단적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성을 회복하고 마일스와 다소 거친 방식으로 서로의 순수한 열정을 확인하는, 셸비에게 유의미한 가치의 변화가 생긴 장면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극적으로 의기투합한 둘은 다시 한번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지만, 리오 비비가 다시 팀의 운영 권한을 갖게 되며 마일스는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설상가상으로 테스트용 차의 브레이크 과열 때문에 사고가 나면서 두 주인공과 세계의 간극은 최대치에 이른다. 위기의 순간, 포드의 질서와 페라리적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던 셸비는 본인이 세운 자동차 개조 회사를 걸고 승부수를 둔다. 국내 대회인 데이토나에서 마일스가 우승하면 그를 르망에 보내 달라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순간, 양 극단을 바쁘게 오가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상황은 영화의 첫 번째 절정인 데이토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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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질서와 페라리적 욕망의 충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포드와 페라리의 첫 번째 대결은 아이러니하게도 포드의 내부에서 이뤄진다. 경기 전략, 팀 구성, 심지어 차의 속도(rpm)까지 철저하게 회사의 지시를 따르는 리오 비비의 팀은 조직력과 자금이라는, 포드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두 주인공을 몰아붙인다. 패색이 짙어지고 두 주인공의 차는 과열되어 한계에 가까워진 상황,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마일스의 말에 지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셸비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마일스의 능력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하고 7000rpm을 돌파하라는 사인을 보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일스가 7000rpm 이상으로 피치를 올리며 치열한 접전 끝에 비비의 팀을 꺾는 장면은 차곡차곡 쌓은 이야기와 속도감을 살린 촬영,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맞물리며 관객에게 엄청난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가 최종 목적지인 르망으로 향하기 전 잠시 템포를 늦출 때, 한 차례 카타르시스를 느낀 관객들은 영화가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한다. 데이토나에서 이미 극적으로 우승했기에 영화의 두 번째 절정도 단순히 우승으로 끝나면 재미가 떨어지고, 그렇다고 페라리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는 전개도 어색하다.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상상하는 사이, 감독은 영화의 핵심 소재인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 구도를 회사 차원의 외적인 대결과 이전부터 조금씩 암시해 온 가치관 차원의 내적 대결로 나눈 다음 앞에서 쌓아 온 설정과 암시를 총동원해 끝까지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포드 V 페라리>가 여타의 스포츠물과 차별화되는 점들은 대부분 이 두 번째 절정에서 나온다. 데이토나 경기 장면이 정통 스포츠물에서 다뤄 온 장르적 쾌감의 모범적인 계승이라면, 르망에서는 스포츠물이 장르적 쾌감 이외에 무엇을 더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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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포드 사와 페라리 사의 대결인 르망의 초반부는 앞선 데이토나 장면에서 다루지 않았던 레이싱의 요소와 돌발 상황을 이용해 관객의 흥미를 붙잡는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포드의 차에 예상치 못한 고장이 생기며 시종일관 시원한 속도감으로 제시되던 레이싱 경기 장면의 템포가 뒤틀리는데, 한껏 긴장감을 조성한 후 관객의 예상을 깨는 서사적 전략으로 영화의 두 번째 절정이 시작된다. 이외에도 대회 규정의 빈틈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전략, 전술과 갑자기 나빠진 기상 상황으로 고전하는 주인공, 한계까지 다다른 차와 씨름하는 정비 팀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며 르망에서는 속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페라리와의 정면승부 역시 단순한 속도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쌓아온 이야기의 설정들을 통해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지난 르망의 유일한 성과인 페라리의 속도를 뛰어넘은 엔진과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함을 보완한 브레이크 시스템은 르망이라는 공간적 배경의 주요 설정인 엄청나게 긴 직선 주로와 급격한 코너에서 그 성능을 제대로 보여준다. 초반의 예상치 못한 사고로 페라리보다 두 바퀴 뒤처진 마일스는 경기 중에 교체한 브레이크의 코너링으로 한 바퀴를, 이후 직선 주로에서의 최대 속도로 남은 한 바퀴를 따라잡는다. 직선 주로에서의 접전 끝에 뜻하지 않게 페라리의 차가 경기 불능이 되며, 마일스는 사실상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 페라리가 예상보다 일찍 탈락하면서 스포츠물의 장르적 절정이 마무리되고 페라리적 가치와 포드적 가치의 내적 대결이라는 영화의 극적 절정이 시작된다. 사실상 우승이 확정된 후 포드 사는 홍보를 위해 포드의 차 세 대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진을 남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마일스가 탄 차의 속도를 줄이라고 명령한다. 셸비를 통해 윗선의 명령을 전달받은 마일스는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다는 셸비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차에 올라타고, 조직의 명령과 개인의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포드적 질서와 페라리적 욕망의 대립이 최고조에 이른 선택의 순간, 마일스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갑자기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마일스는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짧게 언급했던 레이싱의 최고 경지인 ‘퍼펙트 랩(한 번의 실수도 없이 코스를 완벽하게 통과하는 것)’을 실현하고, 그동안 거대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욕망을 지지하고 함께 싸워 준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고집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마일스는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지키면서 대립하는 가치의 긍정적인 부분을 수용했고, 관객이 기대하던 주인공의 승리는 인물의 내적 본성의 변화를 통한 인간승리의 형태로 나타나며 관객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의 극적 쾌감을 준다.

 

대회 규칙상의 문제로 최종 1위라는 목표는 억울하게 뺏기고 말았지만, 속도를 줄이고 다른 차들과 함께 들어온 마일스의 선택에서 그의 내적 변화를 눈치채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그의 아내와 페라리의 차가 전부 탈락하여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남아 마일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엔초 페라리의 모습은 관객이 기대하던 것을 다른 방향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열정으로 성공 신화를 이룩한 자(엔초 페라리)가 본인과 대비되는 가치인 냉혹한 집단주의 속에서도 개인의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집약한다. 포드주의적 가치를 내려놓고 페라리적 열정을 회복한 셸비와 페라리적 열정의 극단에서 포드주의적 가치를 일부 수용한 두 주인공이 새로운 목표를 이야기하며 우승자를 축하하는 행렬을 거꾸로 거슬러 사라지는 르망의 마지막 장면은, 개인을 도구화하는 산업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끝까지 순수한 열정을 지향한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며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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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 새로운 차를 테스트하던 마일스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죽음으로 셸비는 레이싱에서 손을 떼고 본인의 사업을 운영하며 다시 포드적 질서를 체화하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꿈을 꾸던 사람을 그리워하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셸비는 차를 타고 멀리 사라진다. 영화의 시점으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포드를 아득하게 넘어선 효율과 합리에 지배당한다. 이 영화는 이제 역사가 되어버린, 체계의 안에서 체계의 밖을 추구하던 개인을 기리며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대결의 순간, 경기장 위에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효율성의 신화에 가려진 인간 존재를 극대화하며, 효율과 합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주는 쾌감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 쾌감이 바로 스포츠물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물의 드라마,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이전에 스포츠물은 관객이 열광할 수 있는 장면을 담아야 하고, 이것을 배제하고 스포츠물의 장르적 확장을 논할 수는 없다. <포드 V 페라리>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포드와 페라리’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V(대결)’를 누구보다 멋지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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