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간절함을 잊지는 말자 [사람]

혹시 몰라, 기적이 따라올 수도 있어
글 입력 2021.06.18 11: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간절히 원하면 기적처럼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명언이다. 명언이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 말하는 '기적' 또한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국어 사전에 따르면 기적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고,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말과 언어를 모두 '명언'이라 부를 수 없듯이,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적'이라 칭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언이 명언이고, 기적이 기적이다.

 

나는 이런 명언과 기적을 필요할 때만 마음에 담아두곤 했다. '기적'만을 바라면 현실에서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고, 그 기적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크게 낙심할 것 같아서. 그래서 현실에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보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하지는 말자는 태도로 삶에 임한다.

 

그런데 참 간사하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망이 생기면 태도가 달라진다. 기적이 아닌 다른 것은 원하지 않는다. 현실과 타협할 마음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내가 바라는 그것, 평범하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도 않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크기변환]balloons-1786430_1280.jpg

 

 

그런 기적은 지금까지 크게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동생이 태어난 일이다. 3년동안 소원을 빌었다. 동생이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외동딸로 8년 하고도 2개월을 산 어느날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내 팔뚝보다 작은 동생을 신생아실에서 처음 만난건 정말 경이로운 기적이었다. 두 번째는 전교회장이 된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3년 내내 부회장만 했다가 단 한번만이라도 학급 회장을 하고 싶었다. 6학년이 되기 전 겨울부터 선거 연설문을 썼다. 무슨 자신감인지 아직 회장도 되기 전인데 전교회장 출마 연설문도 써놨다. 과장하지 않고 100번 넘게 읽고, 외우고, 보았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내가 바란 모든 기적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경험한 기적은 오로지 '나' 위주였다. '나'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것, '나'를 위한 사건이길 바라는 것이다. 기적을 통한 결과는 냉철하게 말해 결국 나의 행복과 이익인 것이었다. 그러나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며 알게 되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바램, 나만을 위한 기적을 소원한다면 이 절실함의 영향력은 작은 곳에만 머문다는 것.


오랜만에 기적을 염원하게 되었다. 과거와 달리 현실성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기적을 바랬다. 그러나 이전과 달랐던 것은 그 기적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사랑하는 이의 건강 때문이었다. 그를 신디라 칭하겠다. 신디는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정말 강하다. 하지만 아픈 몸을 가지고 있다. 그가 지닌 능력과 덕목을 종종 잠재울 정도로 그의 몸은 무겁고, 힘겹다.

 

신디가 너무나도 아픈 날이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겠다는 구상도 없이 그를 위해 무작정 일기장을 폈다. 샤프에 샤프심을 넣을 정신도 없이 볼펜을 꺼내들었다. 나는 신디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신디가 힘들지 않게 편히 쉬게 해주고 싶다는 것을 적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조상신이 계시다면 그를 고통으로부터 건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에 하늘에서 돈이 떨어져 내려와 그를 기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썼다.

 

어김없이 오후에는 우두커니 앉아 인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시간 단위, 분 단위로 할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나에게는 시간이 금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신디에게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할 시간이 아닌데,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무언가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정말 바쁜 와중이었지만 받아야만 하는 전화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화기 넘어 들리는 신디의 얼떨떨하면서도 기쁜 어조는 나를 순식간에 각성하게 했다. 이윽고 신디의 소식을 들은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 거짓말같이 내가 쓴 일기의 마지막 줄이 현실에서 이뤄졌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있는 줄도 몰랐던 신디의 돈이 20년 사이에 30배가 불려져 어느날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옛날 계좌에 실수로 잘못 입금을 하여 다시 돈을 빼내고자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상담원이 너무나도 놀라면서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하늘에서 내 일기를 몰래 읽는건지, 이틀 전 쓴 나의 간절한 일기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따금씩 거짓말같은 기적이 찾아오면 삶이라는 여정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기적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평범하지 않다는 사건의 특성도 존재하겠지만 그 속에는 기적이라 부르는 이의 '간절함'이 숨어있기 때문 아닐까. 선택적으로만 품고 있었던 명언 '간절히 원하면 기적처럼 이루어진다'를 이제 잊지 말아야겠다. 언제, 어떻게 거짓말같은 기적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지예.jpg

 


[신지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