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착인형을 사랑하는 자의 기록 [사람]

곰돌이와 곰순이, 그리고 뭉뭉이
글 입력 2021.06.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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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빨아야겠다


 

인형들을 어떻게 씻겨야 할까. 예전에는 세탁기 안에 넣고 돌려버리면 됐는데 이젠 인형들이 너무 약해졌다. 곰돌이는 2003년에, 곰순이는 2005년에 나와 처음 만났다. 자그마치 15년, 17년 함께한 아이들이니 아직까지 탄력이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세탁기에 그냥 넣었다가는 이 인형들과 영영 안녕할 수도 있다. 그건 싫다.

 

아주 오랜만에 곰돌이와 곰순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하는 소리와 함께 샤워기를 튼다. 내 몸에는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흘러내린 물줄기는 욕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두 곰인형에게 떨어진다. 그날은 내 방에 새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내 몸과 방의 물건들에는 먼지가 휘날렸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고민을 했다. '그래. 버리지 않을거면 깨끗하게 손수 관리해야지.' 곰인형들을 데리고 욕조로 직행해 버렸다. 어릴 때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기 몸집만한 저 아이들을 끌고 들어갔겠지. 허나 지금은 꽤 심오하게 인생을 알아가는 나름대로 '성인'이란 말이다. 22살에 아직도 애착인형을 씻긴다는 것은 어이없을만큼 웃기는 일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 인형들을 발로 밟아본 적이 없다. 그만큼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은 이미 에너지가 다 빠진 상태라 손을 써서 빨래하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인형들에 샴푸를 뿌리고 발로 밟아주었다. 이불 빨래도 그냥 세탁기에 넣어서 하는 집안이라 발을 쓴 적이 손에 꼽는데, 이 날은 내가 소중한 인형을 밟을만큼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인형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오랜만이었다. 아무리 아직까지 사랑하는 애착인형이라지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나도 현실의 장에 완전히 뛰어드는 바람에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물에 젖은 곰인형들은 마치 인형계의 할머니, 할아버지같았다. 반면 물에 젖어도 아직까지 생생한 강아지 인형(2014년에 문화상품권으로 구매한 새 애착인형)은 손녀같았다. 세 인형을 보니 무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인형이란 그저 솜으로 구성된, 무생물의 '장난감'이 아닌가. 그런데 이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무엇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살아온 역사'였다.

 

 

 

너희와 함께라면 난 행복해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곰돌이 두 마리~ 

둘이 영원토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난 너를 사랑해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하늘에 해가 떠도 달이 떠도

너를 정말 사랑해

 

- 「귀여운 곰돌이 송」中에서

 

 

어렸을 때 이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노래의 스토리가 꼭 나의 곰돌이&곰순이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정말 오랜만에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신기하게도 이 노래의 가사대로 시간이 흘러왔음을 느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두 곰인형이 내 곁으로 왔고, 아직도 두 인형은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이 애착 인형들을 사랑한다!

 

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우리집에는 정말 많은 장난감과 인형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도 '오직' 곰인형만 사랑했다. 왜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생김새도 촉감도 모두 내 스타일이었다.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발현된 '취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곰인형 하나만 줄기차게 들고 다녔다. 엄마와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소풍을 갔을 때도 그 곰인형을 질질 끌고 밖을 돌아다녔다. 내 키는 곰돌이보다 아주 살짝 큰 정도였다. 그 아이가 바로 '곰돌이'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인형이다. 일단 색깔부터가 왼쪽 인형부터 훨씬 더 누렇고, 코도 완전히 벗겨진 수준이다. 무려 17년간 나와 함께한 인형이기에, 나의 수많은 뽀뽀와 허그를 감당해야만 했다.

 

 

 

곰돌이와 곰순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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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곰인형은 '곰순이'다. 곰돌이보다 약 2년 정도 늦게 만났다. 사실 곰순이 이전에 오리지날 곰순이가 있었는데, 택시에서 잃어버렸다.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치 세상을 잃은듯 슬퍼하고 엉엉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께서 '제 2의 곰순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신이 선물해주셨는지, 기적적으로 할머니 친구분의 손녀가 지금의 곰순이를 가지고 있었다. 쿨하게 곰인형 양도를 승락하신 할머니 친구분 덕분에, 아직까지 나와 함께 잘 살고 있다. 곰순이는 곰돌이보다 더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고, 솜도 아직 빵빵해서 어렸을 때의 느낌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인형이다. 또, 곰돌이는 너무 뽀뽀를 많이 해 입이 아예 없어져 버렸지만 곰순이는 나름 존중(?)해준 덕분인지 아직까지 입모양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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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곰인형들은 나의 어린 시절 전부였다. 다행히 나름대로 소중한걸 알아서 유치원까지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집에 오면 언제나 내 옆에 곰인형이 꼭 있어야했다. 사진처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갈 때도 나와 함께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다. 자세히 보니까 내가 곰순이를 아예 깔고 앉았다.

 

(+번외로 잠시 경이로운 사실을 하나 밝히자면 곰순이 옆에 있는 인형은 분명 내 인형이 아니었다. 아마 우리집에 놀러온 다른 친구가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4년에 아무 생각없이 이끌려서 산 강아지 인형이 저 인형과 완전히 동일하게 생겼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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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어 세배 인사를 드리러갈 때도 나는 곰돌이와 함께였다. 한복을 차려입는 정성도 모자라 곰인형도 세배를 드려야 한다며 다소 과한(?) 예의범절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매우 뿌듯해했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놀라운 일도 아니셨을 것이다. 저 사진에서도 한 손에는 장난감 뷰티 박스, 한 손에는 곰인형에 손을 올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손에 쥔 아이는 저렇게 해맑다. 옆에 같이 있는 콩순이도 꽤나 좋아했는데 털인형이 아니라서 애착이 그리 깊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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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가족이 함께 거제도로 여행을 갈 때도 곰순이를 챙겼다. 그리고 굳이 사진도 같이 찍어야 한다며 무릎을 구부리고 그 위에 곰순이를 앉혀 함께 촬영을 했다. 이 사진은 이사오기 전의 집에서 약 10년 넘게 책상 유리에 넣어둔 역사가 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다시보니 글의 초반에서 소개한 '살아온 역사'를 굵직하게 엿볼 수 있다. 보다시피 곰돌이와 곰순이가 곧 내 인생이었다. 두 인형을 구석에 둬본 적도 장난삼아 던진 적도 없었다. 극히 드문 케이스로, 아빠께서 장난삼아 침대에서 곰돌이를 휙- 던져버리셨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파 오열한 적이 있다. 아빠는 진지하게 슬퍼하며 우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셨는지 곧바로 다시 가져다 주셨다. 그때 딱 한번 곰인형이 던져진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막무가내로 다룬 기억이 없다.

 

왜 그렇게 지독하게 곰인형을 좋아했는지는 내 스스로 알 길이 없다. 곰인형을 아직까지 어릴 때처럼 병적으로 좋아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는 관심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그냥 '바라보면 좋은' 기분 정도였다. 그저 어린 날의 순수함, 깊은 애착의 대상, 무한한 사랑을 가져다주고 싶은 결정체가 두 곰인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이 강렬한 애착과 사랑의 경험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힘든 몸뚱아리를 이끌고 아직까지도 직접 인형 빨래를 하고 있다.

 

 

 

뭉뭉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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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이 나의 유아기와 아동기 중반까지 함께한 '동반자'라면, 위 사진의 강아지 인형(뭉뭉이)은 우연히 발견한 '힐링'이다. 청소년기부터 나와 함께했다.

 

때는 2014년으로, 질풍노도의 끝판왕을 스스로 증명하는 15살 중학교 2학년이었다. 기분 전환삼아 들린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만났다. 보자마자 눈길을 끄는 땡그란 눈과 볼록 솟은 코, 평온하면서도 귀여운 입모양에 시선을 뺏겼다. 아직까지 인형을 살 마지막 순수함이 남아있었는지 나는 갖고 있던 3만원 문화상품권으로 이 인형을 샀다.

 

이 인형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몽글몽글하게 좋아진다. 일단 표정 자체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이 글을 보는 문화애호가께서도 위의 사진을 보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실 것이다. 저렇게 정말 살아있는 강아지처럼 극강의 귀여움을 자랑한다. 뭉뭉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침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마찬가지다. 아주 많은 날들을 직접 안고 잤다. 이 인형을 내 피부에 맞대면 참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적잖이 내 피부에 문댔는지 두 곰인형과 마찬가지로 코가 거의 벗겨졌다. 내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인형이든 코를 조심해야한다.

 

 

 

인형을 다 빨았다


 

우여곡절 끝에 곰돌이와 곰순이, 뭉뭉이를 모두 다 빨았다. 발로 밟고 손으로 짜서 거품기를 모두 없앤 다음 세탁기에 3분동안 탈수했다. 건조대 위에 올려 이틀동안 말렸다. 이제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의 뽀송뽀송한 상태로 다시 내 방에 들여왔다. 이게 뭐라고 참 뿌듯하다. 애착인형 관리에 진심인 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 이틀이었다.

 

언제까지 이 인형들과 함께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난 계속해서 이 인형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 정말 한 톨의 아쉬움도 없이 이 아이들과 이별을 할 수 있을 때, 그때 떠나보내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내 인형들이 애틋하고, 좋고, 편하다.

 

이 인형들이 나의 '살아온 역사'를 넘어, '살아갈 역사'까지 함께 담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어디로, 어디까지 향할지 인형들이 그 역사를 담아줄 것이다. 먼 훗날 또다시 이 인형들을 보면 지나간 삶의 궤적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또 꺼내보겠지.

 

그때가 기대된다.

 

 

 

신지예.jp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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