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땅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미술/전시]

<땅의 소리 : 김상영>展을 감상하며
글 입력 2021.06.0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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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ASMR이 인터넷 상에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원치 않는 생활 소음들로 가득해서일까. 들려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주변의 넘쳐나는 청각적 자극에 귀를 닫은 채 오롯이 본인이 원할 때에만 귀를 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혹시 당신도 이에 해당하며 인공성이 배제된 자연의 소리가 그립다면, 성북구립미술관에서 6월 27일까지 진행될 예정인 전시에 주목해보기를 바란다. 바로 본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땅의 소리 : 김승영>展이다.

설치 작가이자 미디어 작가인 김승영은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억'과 '흔적', '소통'과 '관계' 등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를 작품에 담아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근원적인 자연의 요소인 땅과 바람을 바탕으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초월적인 공간을 설정한 뒤 그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한다.
 
오감 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에게 내재하는 제 3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만큼, 불, 물, 빛 등의 자연적 요소에 가만히 스스로를 맡기며 편안하게 자극들 사이를 유영하는 게 핵심이다.
 
그는 조명의 색, 전시공간의 향, 소리 등을 섬세하게 조절하며 특정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첫 번째 전시공간의 경우 대체로 굉장히 어둡기 때문에 진입하기 전에 눈을 감고 셋을 센 다음 어둠에 눈이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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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층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창(窓)>(2003~2021)이라는 설치작품이 눈에 띈다.
 
노란색의 투명한 시트지가 붙여진 유리창 밖의 풍경은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김승영에게 노랑은 양가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느 색보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너무도 뾰족해서 불안하게 만들다가도 어느 순간엔 아득한 인상을 자아내며 행복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기억 속에 자리한 마냥 즐거웠던 옛 풍경 혹은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연상되었으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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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좁은 통로의 끝에는 영상 설치작품 <빛>(2021)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책자에는 허물어진 폐허의 공간 틈사이로 내리는 일렁이는 햇살과 새의 그림자가 마치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한다 적혀있었으나, 재생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지 영상에 등장하는 형체들을 서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상당히 아쉬웠다.
 
차라리 화면에 느리게 나타났다가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점진적으로 흐려졌더라면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긴 시간 기억될 만한 잔상이 남았을 텐데, 오래된 장소에 축적된 시간과 이야기를 파악할 수 없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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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가장 안쪽의 넓은 공간에는 작품 (2021)가 위치한다. 이 작품에서는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 속에서 소성되는 토기의 형상이 벽면을 가득 채우며, 그 앞에는 바닥에 눕혀진 문 위로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고요히 동심원을 만들어낸다.

물과 불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운 장작 타는 소리와 우드향은 '빛과 어둠', '과거와 현재',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자연의 근원적인 풍경을 상징한다. 관객들은 적어도 이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머릿속을 부유하는 무의미한 잡생각을 중단하고 일종의 ‘불-멍’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반복되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점에 작품의 본래적 의미가 무의식 중에 다소 옅어지더라도, 작가가 형성한 분위기 자체에 공감하고 온전히 빠져든다면 충분히 일정 수준의 ‘스투디움’이 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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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3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작품<뇌>(2016~2020)가 나타난다.
 
이는 생각하고 고뇌하는 인간, 감정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 인간이 지닌 삶의 굴레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쇠사슬로 뇌의 형상을 만들어 저울 위에 올려두었는데, 모든 존재의 삶은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교차한다.
 
견디기 한없이 어려우며 투박하고 무거운 사슬처럼 느껴지다가도 문득 깃털처럼, 때로는 구름 마냥 체감되는 삶의 무게가 일시적으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빛바랜 저울의 무게는 궁극적으로 '0'을 가리킨다. 인간의 감정과 삶의 무게는 쉽게 단정될 수 없으며 언제나 가변적인 주관성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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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들어온 파란 공간은 <쓸다>(2021)라는 작품으로, 공간 전체가 작품으로 기능한다.
 
지난 2010년에 제작되었던 사운드 설치작업 <쓸다>가 오직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소리였다면, 이번에는 당시의 사운드와 함께 오래된 책상과 의자, 스탠드, 쓰레기통 등의 일상적 소재들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한 후 종이향을 더했다.
 
작가에게 파랑은 꿈속처럼 비현실적이다. 이와 동시에 파랑은 휴식의 색, 즉 고요하며 정신적인 색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공간이 왠지 공포영화의 세트장처럼 느껴져 파랑을 지적인 색이라 간주한다는 작가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미적 체험의 만족도는 이 작품이 가장 높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관객이 책상에 놓여있는 종이 위에 자신이 비워내고 싶은 마음의 잔해들을 적고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를 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요새 마음이 이유없이 계속 불편해서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전시를 주로 보러다니는 편인데,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었고 불안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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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시실을 나와 계단 쪽으로 향하면 앞서 보았던 <쓸다>와 같은 제목의 영상이 틀어져 있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 스님께서 비질을 하시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있는 이 작품은 제작 시 녹음된 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대체보충의 미학’을 충족한다. 마치 종교적 수행을 실천하듯 일정한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며 마당의 흙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전 작품에서 한 행위가 혹시 진관사 스님과 동일하게 수행의 연장선은 아닌지 반추해볼 수 있다.

인간이 가진 불안함으로 자연은 늘 정복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가속화되어 멈출 줄 모르고 내면의 소리는 자연과 멀어지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팬데믹이 온 것이다.
인간에게 1년도 채 안 되는 잠시 멈춤의 시간이 주어졌다.
멈춤이 지속되자 흥미롭게도 자연은 살아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안정을 찾아가는 자연을 볼 수 있었다.
자생적으로 빠르게 회복되는 자연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자연의 등 뒤로 인간의 크고 검은 그림자를 본 것 같아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작가노트 中

기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과 자연에 대해 사유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효과가 혼합된 색다른 전시인 <김상영: 땅의 소리>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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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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