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은 [사람]

여전히 떠나보낼 수 없는 것
글 입력 2021.06.0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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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여전히 2000년대의 음악을 듣는다.

 

남들이 새로운 드라마에 열광할 때 나는 여전히 과거의 냄새가 물씬 나는 드라마를 보고 종종 과거 내가 좋아했던 순정 만화들을 찾아본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것들에 가슴 설렌다.


내 영화적 취향을 만들어준 건 단연하건대 왕가위 감독이다. 처음 제대로 된 영화를 보고 싶었던 나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보다는, 남들에게 말했을 때 창피하지 않은 정도의 영화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꽤 눈치를 보고 고른 영화는 내게 많은 걸 안겨주었다.


우선 영화의 순간순간이 이미지로 조각되는 게 신기했고, 그렇게 떠오른 심상이 영화 전체에 천천히 부유하며 내가 소화하길 기다려주는 게 좋았다.

 

때때로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영화에 비해 꼭꼭 씹어 넘길 수 있는 영화라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 모두가 어딘가 불안하거나 아니면 곧 불안해질 이들이라 좋았다.

 

그때 나는 긴 사춘기를 지내고 있었고 그럴 때 필요한 건 울상을 지은 얼굴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른 어떤 영화에 매혹되더라도 꼭 다시 그의 영화로 회귀하게 된다. 영화 자체를 보고 싶다면 무조건 그의 영화를 찾아본다, 이제는 조금 지겨워진 정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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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마찬가지이다.

 

SG워너비, 태연, 빅마마, 거미가 연이어 절절한 발라드를 내던 시기에 자란 나는 아직도 그들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새로 나온 트렌디한 비트가 곁들여진 이해할 수 없는 가사들이 즐비한 음악은, 이상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냥 나를 흘러갈 뿐, 언제나 내가 다시 찾게 되는 건 머릿속에 뮤직비디오 한 편이 그려지는 과거의 음악들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을 계속해서 뒤돌아볼 때가 있다. 아마 내가 과거의 것들을 계속 들춰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그 영화에 빠져 있던 나, 순수한 열망으로 스크린 너머를 오랫동안 응시하던 내가 그리워서. 한때 음악을 들으며 이런 세계도 존재하는구나 하고 그 경계에서 기웃거리던 내가 그리워서. 과거의 내가 촘촘히 쌓여 있는 것들을 못내 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오늘도 아마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오래전 냄새가 가득한 발라드를 들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이젠 없지만, 그걸 그리워할 수는 있을 테니까.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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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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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간 것을 낭만화하지 말라지만, 지나간 것을 단지 지나간 것으로만 여기는 것도 쉽지 않죠 현재의 나를 만든 건 과거의 나고 현재의 내가 나아갈 곳은 미래의 나이기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소중한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적절한 그리움과 적절한 열정, 적절한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현재의 에디터님을 존재하게 해 준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글로 미래를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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