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글 입력 2021.06.03 22:1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인간의아주깊은역사_표1.jpg

 

 

고등 생물의 대표로 언급되는 인간은 오래전부터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특별한 우위를 지니고 있다 여겨져왔다. 하지만 똑같이 숨을 쉬고 먹이를 먹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생(生)의 관점에서 인간이 진정 여타 동물들에 비해 특별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있다. 책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역시, 그 물음으로부터 시작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석사 과정 중, 처음으로 진화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이 있게 탐구해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의 난, 평소 좋아하던 교수님께서 진화심리학 수업을 여신다는 것을 듣고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수업에 참여했었더랬다. 진화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조차 몰랐던 내가 더듬더듬 진화라는 개념의 맛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싶었을 무렵 공교롭게도 수업이 마무리되었지만, 그래도 진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제는 어색하지는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수확이 있었다 생각한다.

 

책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는 진화 위에서 가지를 쳐나가는 책이었다. 생명의 시작, 그 깊은 뿌리에는 인간과 단세포 박테리아의 공통 조상이 존재했다. 즉, 비약에 비약을 더해보면 나라는 존재 역시 박테리아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과 같다. 박테리아와 인간은 어쩌면, 단지 진화의 과정에서 발현된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물론 진화란 어마어마한 과정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전제와 맞닿아있다. 인간이 결코 다른 생명체와 다른,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테리아에게도 생존과 재생산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자신에게 유익한 물질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고 해로운 물질로부터는 멀리 벗어나는 운동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포 내 적절한 양의 체액을 유지하기 위한 자동적 상호작용이 발현되기도 한다. 번식을 하고 소통할 뿐만 아니라 학습과 기억 역시 가능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단세포 유기체에서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세포 유기체에 대해서 그동안 너무나도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단세포, 단일한 세포로 구성된 유기체에서도 생(生)을 향한 역동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이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성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유성생식이 발현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종의 생존은 현재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는 물론, 환경이 변화하였을 때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따라서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낳게 되면 두 유기체의 유전자가 합쳐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유전적 변이성이 더 커져,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용한 형질이 나타날 가능성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개체마다의 고유한 유전자 조합이 계속 뒤섞이며 유익한 돌연변이가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pp.126-127)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에게는 성행위가 심리적 경험과 결부되어 있지만, 유성생식이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성행위란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이 세상에 더 오래, 더 잘 남기기 위한 선택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지적이 재미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책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전반에 걸쳐 자주 등장했던, 그래서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저자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저자는 인간 또한 그저 하나의 생물체로 봐야 한다는 견지가 뚜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 같은 때에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꽤나 진지하게,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위험한 접근 방식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동물을 넘어서 식물, 단세포 유기체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흔히 말해지듯 별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말하는 것 같다는 뉘앙스를 깊게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나로서는,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였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에서 시작하여 인지, 의식, 그리고 감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방대한 분야들을 탐색하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전부 소화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아는 것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늘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분야였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신기했고 놀라웠고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태계를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만족하려 한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에는 적어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일 테니!

 

 

[김규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