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글 입력 2021.06.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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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스페인어 엘과 이탈리아어 그레코가 만나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화가다.

 

사실 엘 그레코의 작품은 나로서는 퍽 생소한 것이었어서, 저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는 어떤 화가였을까를 상상하며 책을 통해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이콘화를 주로 그렸던 화가라 하여 일반적인 성화의 이미지를 떠올렸으나, 엘 그레코의 그림은 일반적이라고 하기엔 색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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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구글 이미지를 통해 보게 되었지만, 엘 그레코의 대표작인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주제만큼이나 강렬한 작품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그리스도를 그린 작품으로서, 당시에 상당한 반발을 자아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고 못에 박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시도는 왜인지 그리스도의 숭고한 희생이 가진 신성성을 침범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겠지. 따라서 이 같은 과감한 시도를 거침없이 행한 엘 그레코라는 인물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엘 그레코를 처음 만난 이후부터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엘 그레코와의 만남을 위해 기차역에서 발을 동동 굴렸을 만큼, 그를 향한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스페인 톨레도의 '엘 그레코 미술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물론 CCTV는 있지만) 오로지 엘 그레코와 함께 보낼 수 있는 하룻밤에 저자는 그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나아가 그의 일생을 곱씹으며 그의 작품과 눈을 맞춘다.

 

*

 

꽤 많은 그림들을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림을 읽어내는 것이 서툰 나로서는 한 명의 화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게도 분명 좋아하는 화가가 존재하지만, 그의 전부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작품이 좋았을 뿐, 그 감정이 화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 명의 예술가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인물을 토대로 작품을 써 내려가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 편이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달과 6펜스>인 것도, 그 작품에 녹아있는 고갱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생각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책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나에게 소통의 기록으로 다가왔다. 엘 그레코와 저자의 은밀한 대화, 그 기록인 것이다. 엘 그레코를 한 명의 사람으로, 여타의 도구 없이 있는 그대로 직면하며 그의 작품과 그의 인생을 나누는 저자의 문장 속에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 이상의 애정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

 

과거에 우연히, 조지 오웰의 일대기를 읽고 나서 그의 <1984>를 찾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읽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위인전과 오버래핑되어 다소 보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던 책이기에 껄끄러운 마음을 다독이며 책장을 넘겼더랬다.

 

하지만 책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나에게 조지 오웰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의 삶을, 그의 작품을 더욱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그를 알고 나서 접했던 <1984>의 폭풍이 엄청났을 수밖에. 책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나의 그 당시를 떠올리게 만든 책이었다.

 

작품과 작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잇는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매력적인 기회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기회 역시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 나 또한 언젠가 열렬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긴다면, 그를 기리는 하루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조용히,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시간을.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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