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대가 간직해온 그들의 얼굴 [전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글 입력 2021.05.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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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읽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그 사람이 살아왔던 생애가 적혀있는 전기를 읽거나, 그 사람에 대한 외모적 특징들이 나열된 것을 읽는 등 우리는 방대하게 기록된 문자들을 통해 인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문자를 읽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내면적인 면은 잘 안다는 듯한 느낌을 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되지는 못할 때가 있다.

 

글의 묘사는 아무리 다채로워도 결국 개인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는 단순한 필력의 문제가 아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빛, 분위기, 표정 등 그 사람 고유의 것은 아무리 문자로 자세히 묘사된다 해도 오롯이 전달되기는 어렵다. 오직 시각으로만 느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묘사할 때 은유와 비유를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은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들을 묘사해야 하지만 그것에 대한 완벽한 묘사를 이뤄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동물과 사물들을 빌려 사람들에게 그 오감을 최대한 비슷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관적인 해석이 주관적으로 선택된 단어와 문장들이 거쳐지며 결국 가공되어버린다는 의미와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진정한 모습의' 인물을 바라보고자 하는 욕구에서 문자가 채울 수 없는 결핍을 해소할 수 있을까? 바로 초상화다. 초상화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사람의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인 것처럼, 초상화는 오롯이 그림의 대상 인물 그 자체만을 담고 있다. 우리는 초상화를 보며 그 안에 숨겨진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찾지 않는다. 그 인물 고유의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는 비유와 은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저 초상화 속에 담겨 시간이 멈춘 채로 영원을 사는 그 사람의 혼을 마주하며, 화가의 눈을 빌려 화가가 느꼈던 그 사람에 대한 분위기와 표정, 눈빛 등의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게 된다.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적인 경험인 동시에 ‘그림 속 인물과 만나는’ 심리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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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과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함께 준비한 특별전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는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작되었던 초상화를 다섯 개의 분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흐름과 맥락, 초상화의 발전 과정, 그리고 인물의 배경 이야기 등을 고려해 다섯 개의 분야로 구성된 이 전시는 초상화 그 자체에서 시작해서 점점 초상화 속의 인물 내면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그저 초상화가 가진 의미에서 시작했던 전시는 어느새 인물의 당시 상황과 그 인물의 내부까지 깊이 이야기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당시 초상화가 가지고 있었던 의미와 무게를 이해함과 동시에 초상화 속 인물과 교류를 하게 된다. 결국 관람객들은 초상화 속 ‘낯선 이’를 마주하고 그들과 눈을 맞추며 문자와 설명으로 점철되지 않은 채 인물에 대한 ‘인상’을 스스로 남기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첫 번째 파트 ‘명성, 세상에 떨친 이름’은 명성과 초상화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초상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보라색으로 칠해진 벽면으로 ‘명성’이라는 단어를 부각시킨 이 파트는 초상화가 인물의 명성을 높여준 사례, 초상화 속 인물의 명성이 초상화가의 명성을 함께 높여준 사례, 그리고 초상화와 기존 인물의 명성이 서로를 높여준 사례 등등 초상화와 명성이 가지고 있는 긴밀한 관계를 설명한다. 초상화가 단순히 인물에 대한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초상화 그 자체가 사회에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초상화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세상에 영향력이 있었음에 대한 설명은 관람객들이 처음 초상화를 접하며 아직 초상화와 낯섦을 유지할 때, 초상화의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두 번째 파트 ‘권력,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초상화가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어떻게 ‘권력’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는지를 보여준다. 권력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어두운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면은 초상화가 어떻게 정치, 문화, 사회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위를 나타내었고, 그렇게 초상화에서 나타난 권위가 어떻게 대중들에게 작용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 파트에서 초상화 그 자체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것에서 더 들어가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힘과 초상화가 인물의 의도에 따라 꾸며 그려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관람객은 이 파트에서 다양한 권위를 가진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들이 스스로 느꼈던 초상화 속 인물에 대한 인상과 초상화가 제작되며 의도되었던 부분에 대해 비교해보며 자신이 초상화에서 느끼는 인상의 진실성에 대한 고민과 초상화와 권력의 관계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초상화와 그 속의 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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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파트 ‘사랑과 상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초상화 속 숨겨진 또 다른 배경을 이야기한다. 바로 직전에, 오직 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집중했던 '권력'적인 초상화와는 다르게 '사랑과 상실' 파트의 초상화는 인물들 간의 연인관계와 그들이 품고 있었던 사랑, 애절함, 그리고 그들의 이별에 집중한다. 푸른 계열의 벽면은 초상화 인물들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랑은 사람들의 가장 숨길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삶이 무너지기도 하고,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즉 이러한 다양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은 이제는 그저 오랜 고인일 뿐인 초상화의 주인공들의 사적인 부분들을 가장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초상화 인물들이 살아왔던 그들의 생활을 함께 마주하고, 그들과 더욱 감정적, 그리고 정신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네 번째 파트 ‘혁신, 진화하는 초상화’는 16세기 나무 패널화에서 홀로그램 초상화에 도달하기까지 이뤄진 초상화에서의 다양한 혁신을 이야기한다. 초상화가 겪어왔던 역사는 곧 초상화가 그려진 당시 시대를 살았던 인물과 초상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상화는 변화하고, 발전하고, 다양화되었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500년의 세월 속 역사와 그 시간의 인물들, 그리고 그동안의 미술사를 보았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파트는 이 모든 파트의 최종적인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바로 '정체성과 자화상'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화상을 사용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추구하는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혹은 자기 사진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자화상에 함께 포함시켰다. 이는 타인을 그렸던 다른 초상화보다 가장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이었고, 동시에 관람객들의 거울과 같았다. 새하얀 벽면들과 함께 오직 자화상이 있는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이 자화상들 사이에서 각 인물이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을 생각해보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분명 관람객들은 화가의 내면에서 자신의 내면도 함께 들여다봤을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자화상에서 함께 빗대며, 화가를 마주 보고 이 전시를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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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화해온 시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나, 어떤 이들을 담고 있었나, 어떤 의미가 있었나? 이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은 단순히 '옛날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힘과 의미, 그리고 그 내부에 잠재되어있는 인물의 시간을 마주한다. 이렇게 초상화에서 인물로, 더 나아가 자아까지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결국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외면과 내면을 모두 이해하고 500년이라는 시대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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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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